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4일 자신의 '서울시장 출마설'과 관련한 '윤여준 배후론'에 대해 “윤 전 장관이 인터뷰에서 많은 말을 했는데 솔직히 이제는 더 말씀 말아달라고 부탁도 했다”면서 “모든 결정 책임은 내 몫이고 그분 말씀대로 될 것이라고 오해하지 말아주셨으면 한다”고 말했다.

안 원장은 이날 순천 문예회관에서 열린 '청춘 콘서트'에서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이 나의 멘토라고 하는데 내 멘토는 300명 정도이고 김제동 김여진 등등 멘토들이 다양한 조언을 해주고 있으나 결정은 결국 제몫이다. 신문에서 너무 앞서가 당혹스럽다"고 말했다. 안 원장의 이런 발언은 최근 윤 전 장관이 안 원장의 서울 시장 출마에 대해 ‘선거는 내가 책임지고 한다’고 언론을 통해 공개적으로 밝힌 것에 대해 제동을 건 것으로 해석된다.

한편 '시골의사' 박경철 원장도 3일 자신의 트위터에 올린 글을 통해 안 교수의 서울시장 출마설을 둘러싼 논란과 관련, "예상했지만, 안쌤 고민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마타도어가 난무하네요. 각종 설과 설.. 당파 있는 사람들이 위협을 느끼면 쓰는 전형적 수법"이라며 "특정인이 배후라는 마타도어도 마찬가지고요"라며 '윤여준 배후설'에 일침을 가했다(뷰스앤뉴스 3일).

안, 박 원장 두 사람이 안 원장의 서울 시장 출마에 대한 윤 전 장관의 발언에 제동을 건 모습인데 윤 전 장관이 향후 어떤 태도를 취할지 주목된다. 윤 전 장관이 안 원장의 서울 시장 출마와 관련해 판을 주도하는 식의 발언을 하거나 정치적 멘토를 자임하는 태도를 취한 것은 두 사람의 삶의 철학과 그 궤적이 너무 판이하다는 점에서 부자연스럽게 보인 것이 사실이다.

   
고승우 전문위원
 
윤 전장관은 군부 독재정권 시절부터 수구정치세력에 철저히 봉사해온 인물로 ‘영혼이 없는 선거 전문가’라 지칭되는데 비해, 안 원장은 젊은 시절부터 개인적 이익에 초연한 채 사회에 통 크게 봉사하는 이타적 인생철학의 전형을 보여준 인물이다. 안 원장의 시장 출마설이 신선한 충격을 준 것은 그의 남다른 인생철학과 실천 때문이었는데 윤 전장관이 배후 인물임을 자임하면서 부적절한 정치적 조합으로 비춰지기 시작했다.

안 원장은 윤 전 장관과는 전혀 다른 인생철학을 실천한 인물이다. 그는 의료인으로 활동하던 1988년 컴퓨터 바이러스를 발견해 대한민국 최초로 백신 프로그램 V1, V2와 V3를 만들어 무료로 제작·배포해 정보화 시대의 사회적 봉사, 기여의 모범이 되었다. 그 뿐 아니다. 그는 10년간 백신 사업의 CEO로 활동하다가 경영권을 파격적으로 직원들에게 넘긴 뒤 다시 학생으로 되돌아 공부를 계속하고 KAIST 석좌교수로 임용되어 ‘사회적 바이러스’ 퇴치 등에 대한 신선한 언행을 계속해 주목을 받아왔다.

한편 윤 전장관은 30- 40년 동안 박정희 독재, 전두환의 광주 학살, 김영삼의 3당 야합 등에 고민한 흔적이 전혀 없이 기회주의적 지식인의 삶을 살아왔다. 그는 군부 독재와 반민중적 정치세력의 집권을 위해 자신의 재능을 팔아 양지쪽만을 택해온 대표적 인물이다. 그는 동아일보, 경향신문을 거친 뒤 본격적으로 정치권에 입문해 전두환 전 대통령 시절 공보비서관을, 노태우 전 대통령 때는 정무비서관을 지냈고 김영삼 정부 시절에는 청와대 공보수석과 환경부 장관을 지냈다.

그는 이회창 대통령 후보 선거본부를 거쳐 탄핵 후폭풍에 휩싸였던 한나라당의 위기 시절 박근혜 대표를 도와 선대위 부본부장으로 활동해 한나라당을 수렁에서 벗어나게 했다. 그는 한나라당 여의도연구소 소장을 시작으로 2000년 16대 총선 총선기획단장, 2002년 대선 한나라당 기획위원장, 2004년 17대 총선에서는 중앙선거대책위원회 부본부장, 2006년에는 오세훈 서울시장 후보 선거대책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다.

그는 이명박 대통령과는 소원한 사이로 지난 수년간 권력구조외곽에서 집권층을 향해 간혹 쓴 소리를 했지만 이 또한 잘해보시라는 차원의 것이었다. 이처럼 윤 전 장관은 군부독재나 거기에 뿌리를 둔 정치 세력을 위해 충실하게 기여하는 지식인 머슴 역할을 했을 뿐이다. 그런 그가 민중의 투쟁과 희생으로 이만큼이라도 달성된 민주주의 속에서 약탈적 자본주의 흐름에 온몸으로 맞서 신선한 리더십을 실천해온 인물을 앞세워 정치권력 장악을 공공연히 언급한 것이다.

윤 전 장관이 제시한 서울 시장 선거 전략에는 선거 전문가의 방법론이 정치 공학적으로 소개되고 있을 뿐 정작 정치권력 장악이후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윤 전 장관에게 그런 것을 기대하는 것 자체가 무리일지 모른다. 그는 민주화를 진전시키거나 평화통일에 대한 고민 같은 것을 해본 것으로 비춰진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가 실천해온 정치 철학은 대승적 차원의 민주주의 발전이 아닌 수구기득권세력이 추구해온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지속적 권력 장악과 민주화 억압, 분단 고착화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공자가 말한 바와 같이 정치는 정직해야 한다. 하지만 윤 전 장관이 평생 봉사해온 정치 세력들은 정직한 정치를 해온 적이 거의 없다. 그런 그가 구상하는 미래 정치의 철학이 무엇인지는 상상키 어렵지 않다. 그가 어떤 과정을 거쳐 안 원장 등 신진 세대와의 관계를 정립했는지 알 수 없다. 윤 전 장관과 안 원장이 약탈적 재벌 경제 시대의 대중적 요구를 읽는데 동일했는지 모르겠으나 그것을 실천하는 방법론과 그 목표에서 과연 동일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

안 원장에 대한 사회적 지지가 높은 것은 그가 그에 합당한 삶을 살아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안 원장의 정치와 관련해 그림을 제시하는 윤 전 장관은 민주주의가 더 발전해야 하고 평화통일의 역사적 기틀을 마련해야 할 향후 수년 동안의 한국 정치에 필요한 인물은 결코 아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98년 평화적 정권 교체이후 10년 만에 정권탈환에 성공했지만 민주주의 역사의 시계바늘을 거꾸로 돌리는 일을 반복하면서 한나라당 소장파들의 극심한 반발에 직면해 있다. 이는 시대에 걸 맞는 정치적 철학이 빈곤한 정치 리더의 필연적 모습이다.

안 원장이 21세기의 사회적 기대에 부응해 역사 발전에 기여할 정치에 뜻이 있다면, 맑은 혼이 없거나 시대의 흐름을 정치적 이해관계로 읽을 뿐인 인물과 같은 배를 타는 것은 매우 부적절하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 하나, 올바른 길이 아니면 가지를 말라는 옛 가르침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안 원장이 윤 전 장관과 한 지붕아래 있는 모습을 계속 보인다면 그것은 목적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다는 비판을 자초하는 것이다. 향후 안 원장과 윤 전 장관의 행보가 주목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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