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노현 서울시 교육감과 부산저축은행 로비스트 박태규씨에 대한 검찰과 일부 언론의 태도는 크게 다르다. 검찰은 곽 교육감에 대해 수사 과정을 중계방송 하 듯 피의사실을 공표하는 부적절한 태도를 취하는 반면 청와대 연루설 등이 끊이지 않는 박태규 씨에 대해서는 전혀 그렇지 않다. 일부 언론은 곽 교육감의 비리를 기정사실화하면서 왜 이런 상황에서 사표를 내지 않느냐 하는 식으로 몰아붙이는 여론 재판을 벌이고 있다.

검찰은 곽 교육감에 대해, 그 부인과 주변인물 또는 후보 단일화에 관련된 인물들에 대해서는 거의 낱낱이 공개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그러나 청와대 홍보수석이 박태규 씨와 가명으로 골프를 쳤고 수십 차례 전화를 했다는 사실, 검찰이 박태규 씨 귀국 일주일 전에 캐나다에서 만났다는 사실 등은 일부 언론에 의해서만이 폭로되었을 뿐이다. 검찰의 이런 판이한 모습은 정치 검찰이라는 비판을 자초하는 행위다.

   
곽노현 서울시 교육감.
@CBS노컷뉴스
 
곽 교육감에 대한 검찰의 수사 결과 흘리기가 꼬리를 이으면서 곽 교육감에 대한 사회적 비판 여론의 수위는 고공행진을 하고 있다. 곽 교육감의 이번 사건과 연관된 인물들이 구속 또는 구속 영장 청구 대상으로 몰리면서 곽 교육감의 입장은 더욱 궁색해지는 형국이다. 검찰과 일부 언론의 과도한 곽 교육감 때리기는 이런 사태 전개의 흐름 속에 고강도로 진행되고 있다.

여권과 보수 세력은 곽 교육감 당사자는 물론 진보진영 전체와, 이제 기초 작업 단계인 개혁적 성과에 대해 흠집 내기를 넘어 백지화에 몰두하고 있다. 야권도 '거리두기'로 입장을 정리하고 사퇴를 기정사실화 하는 분위기다. 진보적 사회단체까지 자진사퇴를 언급하고 있다. 곽 교육감이 교육 개혁의 깃발을 높이 들고 서릿발 같은 규범과 도덕성을 외쳤던 만큼, 또한 그 효력이 컸던 만큼 그에게 가해지는 공세와 비판의 칼날도 날카롭다.

곽 교육감을 지지하고 같은 배를 탔다는 일체감을 가졌던 진보세력의 충격은 대단하다. 진보세력의 무기 가운데 가장 큰 것이 도덕성이라 해왔는데 믿었던 도끼에 발등 찍힌 아픔을 겪고 있는 모습이다. 진보 개혁 세력이 이명박 정권 들어 악화되거나 짓눌린 민주화를 복원하고 일으켜 세우기 위해서 할 일이 많은데 덜컥 곽 교육감 사태가 불거진 것이다.

곽 서울시교육감에 대한 비난이 고조되면서 그와 연관된 교육 개혁의 상징들에 대한 공세의 강도가 높아지고 있다. 그가 추진하던 무상급식확대ㆍ학생인권조례 등은 좌초될 가능성이 높은 것처럼 정치권과 언론 등에서 언급되고, 심지어 교육감 직선제도 간선제로 바꿔야 한다느니 후보 단일화를 법으로 제한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언론 자유 시대라서 해볼 수는 있지만, 시대의 흐름에 무지하거나 역사의 시계 바늘을 거꾸로 돌리려는 무모한 발상이다.

학교에서의 보편적 급식은, 교육이 사회적 불평등 해소를 위한 가장 효율적인 복지의 방식의 하나이며 어린 학생들의 가슴에 부모의 빈부 차를 대물림해서는 안 된다는 상식적 철학이 담겨 있다. 학생인권 조례는 이미 반세기전에 유엔 등에서 학생에 대한 체벌을 금지한 사실에 비춰 당연히 도입해야 할 시급한 과제다. 학교에서 인격체로 대접받지 못한 채 매 맞고 자란 학생들이 진출하는 사회는 인권 후진국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명백히 깨달아야 할 것이다.

교육감 직선제는 교육이 정치에 예속되지 않게 하고 국민에게 최상의 중요성을 지닌 교육의 풀뿌리 민주주의를 실현하자는 취지다. 이를 임명제로 되돌리거나 정당 영역 속에 추락시키는 것은 세계가 비웃을 후진적 작태다. 후보 단일화를 법으로 제한하자는 발상은 21세기 민주주의의 핵심인 협치(governance)에 역행하는 것으로 이 또한 어리석은 발상이다.

현 정권 들어 심화된 양극화, 빈곤층 확산은 집단 자살이 꼬리를 물만큼 심각한 상태로 이에 대한 유일한 해결책은 합리적 복지뿐이다. 이런 중차대한 시대적 과제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중심에 서있던 관 교육감이 하루아침에 검찰 수사의 대상이 되면서 복지 논쟁은 진보 보수 논쟁으로 비화되고 있다. 검찰의 과도한 공개수사와 일부 여론 재판식 보도 행태는 시대적 흐름을 외면한 부적절한 행위다. 한국적 불평등 상황은 이제 위험 수위에 다다른 상태이고 그것은 복지 정책의 강화, 분배 정의의 확립 등에서 치유를 기대할 수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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