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비밀이 우선인가, 언론의 보도자유가 우선인가.

최근 대만에선 한 신문사의 ‘국가 비밀’ 특종보도를 둘러싸고 정부와 언론간의 샅바싸움이 치열하게 벌어졌다.

지난 3월 <연합보>가 96년 국방예산 관련기사를 특종보도한데 대해 국방부가 ‘국가비밀’ 누설이라며 발끈, 타이뻬이 고등검찰서(우리의 검찰청)에 사건조사를 요청하면서 검찰이 취재기자를 소환하는 사태가 발생하자 대만의 유수 언론사들이 크게 반발하고 나선 것이다.

국방부가 이처럼 강경입장을 취하고 나선 것은 <연합보 >가 ‘기밀’표시가 명시된 ‘중점구무기(重點購武器) 일람표’란 제목의 문서를 공개, 군이 구입을 계획한 무기들의 항목과 수량을 구체적으로 적시한데 따른 것이다. 유화겸 참모총장까지 나서서 ‘내통자’를 철저히 밝혀 줄 것을 요구했을 정도다.

이에 검찰이 해당기자를 소환, 뉴스 제공자, 해당문서의 기밀 인지여부, 게재 결정자 등을 집중 추궁했으나 기자는 “국방에 관심이 많은 입법위원(우리의 국회의원)으로부터 구두로 정보를 얻었다”고만 진술, 구체적인 뉴스 제공자를 밝히길 거부했다. 또 기자는 “외국의 경우 군이 구입하려는 군비항목과 수량은 기밀이 아니다”며 반론을 폈다.

이처럼 사건이 기자 소환 조사에까지 이르자 대만 신문사들은 일제히 반발하고 나섰다. <연합보>와 치열한 판매경쟁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중국시보>마저 이례적으로 ‘보도자유의 제한은 국가기밀을 지키기 위한 정당한 도리인가’라는 사설을 통해 정부의 태도를 비판했다. 사설은 “계엄령이 해제돼 헌정이 완전 정상화된 오늘날 이런 오래된 기밀관련 조항은 전면적으로 수정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취재원을 밝힐 수 없다는 기자의 태도에 대해 “언론의 자유는 발언하지 않을 자유도 포함한다. 매체에 뉴스 제공자 공개의무가 주어진다면 보도 자유의 기초가 흔들릴 것”이라고 옹호론을 펼쳤다.

평소 ‘언론 자유’ 문제를 적극적으로 제기해온 주간지 <신신문 >도 가세했다. 이 신문은 ‘기자를 소환한 것이 언론 자유를 침해했다고 볼 수 없다’는 검찰측 주장에 대해 “보도의 자유는 일종의 제도적 관리로서, 검찰이 기자를 소환한 것 자체가 문제”라며 “법 앞의 평등이란 미명아래 보도의 자유를 압박한 것은 용서되지 않는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신문은 또 “보도 자유의 확보가 일종의 전쟁이라면 언론은 이 전쟁에서 참호전을 펼치지 않으면 안된다”고 비장한 논조를 보였다.

결국 이같은 사태 진전은 대만의 현행 국가기밀 관련법이 시대에 뒤떨어진 구법이라는 비판여론을 형성하기에 이르렀다. 국가기밀 관련법이 가뜩이나 계엄령 해제 이전에 제정된 법규라 지금 상황에 적용하는 것 자체가 무리라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 왔던 만큼 언론의 집중 포화를 맞게 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공교롭게도 현재 대만의 입법원은 ‘국가기밀 보호법’을 심의중이다. 이번 보도관련 기자 소환 파문이 그 논의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치리란 것이 이곳 전문가들의 일반적인 분석이다.
우리의 상황과 유사한 점이 많다는 점에서 주목되는 사안이다.


이한웅(도쿄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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