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무상급식 주민투표에서도 강남의 결집은 여전했고 견고했다. 서초, 강남, 송파 등 강남 3구의 평균 투표율이 34%를 웃돌았다. 이에 강남은 '아이들 식판'에 대한 정책적 심판이 아닌 내년 총선·대선의 전초전 성격으로 전략적, 계급적 선택을 했다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또 보수의 위기감이 더욱 결집을 강화하는 현상은 내년 선거에서 야권의 복지이슈 선점 전략을 더욱 정밀하게 점검하지 않는 한 지난해 지방선거같은 일방적인 결과를 주지 않을 것이라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서울시 무상급식 주민투표가 개표 기준선인 33.3%를 넘기지 못해 무효처리됐지만 투표율을 평균 25.7%까지 끌어올린 데엔 서초·강남·송파구 등 강남 3구의 위력이 발휘됐다는 평가다. 적게는 30.6%(송파구)에서 많게는 36.2%(서초구)까지 기록하며 투표율이 저조한 곳(금천구-20.2%)과 비교할 경우 두배 가까이 차이가 나기도 했다. 강남구의 투표율도 35.4%로, 서초구와 함께 서울시내 25개 자치구 가운데 33%를 거뜬히 넘어섰다.

이번 강남의 투표율은 이번 투표를 보는 강남 주민들의 적극성을 나타냈다. 예의 선거에서 나타나는 강남권 투표율 보다도 높다는 분석이다. 단적으로 비교가 되는 것은 지난 2008년 서울시교육감 선거. 한여름, 평일 낮에 치러지는 선거였고, 교육감 선출과 무상급식이라는 ‘교육’ 관련 정책투표였다는 점에서 공통성을 갖는다. 하지만 2008년 교육감 선거의 전체 투표율은 15.4%에 그쳤다. 당시에도 서초구(19.6%), 강남구(19.1%), 송파구(16.6%) 등 강남 3구의 투표율이 높았다. 그러나 이번 강남 3구의 투표율은 평균(25.7%) 보다 3~9% 높았다. 홍형식 한길리서치 소장은 25일 “오세훈이 패배했지만 이번 무상급식 투표율은 3년 전 서울시교육감 선거와 비교할 때 서울시 전체적으로도 높지만 강남의 경우 더더욱 높게 나온 것”이라고 해석했다. 이인영 민주당 최고위원도 이날 라디오 프로에 나와 “애초 생각보다 투표율이 좀 높게 나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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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강남의 이같은 선택은 애초 정치권과 여론조사전문가 등이 예상했던 것을 훨씬 뛰어넘는 ‘결집도’를 드러낸 것이다. 지난달 말 쏟아진 폭우로 우면산 산사태 등 많은 피해를 낳은 곳은 다름아닌 서초구였다. 현 정부 들어 부동산 가격도 고급아파트를 중심으로 내렸다. 특히 이번에 투표의 대상이 된 무상급식이 전면 실시되면 어림잡아 9년간 아이들 급식비 수백만 원을 절약하는 ‘실리’도 따르는 일이었다. 그럼에도 강남은 이런 ‘분노’ 또는 ‘손해’를 감수하고도 서울시 투표율 평균을 크게 웃도는 주민들이 투표장을 찾았다.

이 같은 강남의 선택을 두고 정치권과 여론조사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우선 ‘내년 총선·대선을 앞둔 전략적 또는 계급적 투표를 한 것’이라는 평가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무상급식 자체의 의제 보다는 내년에 벌어질 총선의 전초전으로 보고, 보수 결집을 알리는 상징적인 결과라는 것이다.

윤희웅 한국사회여론연구소 조사분석실장은 25일 “계급에 의한 투표현상이 가장 뚜렷하게 나타나는 곳이 강남 3구”라며 “이곳에는 이전 정부의 종부세·부사증세·부동산 규제 등으로 경제적 손실을 입었다는 인식이 널리 퍼져있다”고 밝혔다. 윤 실장은 “교육이슈임에도 무상급식이 이뤄지면 이후 증세로 이어질 것이란 우려를 했던 것으로 판단된다”며 “더구나 대중의 정서가 복지확대 요구가 강해지는 시대적 흐름에 있기 때문에 이에 대한 위기감과 거부정서가 더욱 강화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윤 실장은 또한 “오시장이 사퇴하고 진보에 시장을 넘겨줬을 경우 스스로의 계급적 이익을 보장받지 못하리라는 판단이 작용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상돈 중앙대 교수도 강남의 높은 투표율에 대해 이날 아침 평화방송 라디오 <열린세상 오늘 오상도입니다>에 출연해 “강남 부유층들은 무상급식 문제 보다 이러다가 다음 시장,대통령이 민주당으로 가는 것 아니냐, 종부세 같은 게 나오는 것 아니냐 등의 일종의 종부세 트라우마 때문에 투표장에 많이 나온 게 아닌가 하다”고 분석했다.

강승규 한나라당 의원도 같은 방송에 출연해 “아무래도 복지와 관련해 보편적 복지냐 선택적 복지냐에 대한 시민들의 체감은 지역 여건에서 달라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같은 분석 외에 강남의 높은 투표율엔 ‘강남좌파’도 포함돼있는 것 아니냐는 해석도 조심스럽게 나왔다. 홍형식 한길리서치 소장은 “오세훈의 인기가 전만 못하고, 무상급식을 하면 급식비를 줄일 수 있다는 점에서 강남 3구 투표율이 매우 낮을 것으로 예상했지만 결과가 정반대로 나왔다”며 “이는 단순한 계급적 보호를 위한 투표층 뿐 아니라 이른바 이념적 진보성을 가진 ‘강남좌파’ 성향의 유권자도 상당부분 포함된 게 아닌가 한다”고 말했다.

강남의 높은 투표율은 오세훈의 몰락과 한나라당의 총선 대선 전략에 타격을 줄 것이라는 분석과 함께 민주당에 대한 경고의 의미도 담고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윤희웅 한국사회여론연구소 조사분석실장은 “야권이 총력을 다해 투표보이콧 운동을 했음에도 전체 투표율이 25.7%에다 강남의 경우 30%를 상회하는 결과가 나온 것은 보수가 위기감을 느껴 결집하고 있음을 뚜렷이 보여준 것”이라며 “이후 이런 현상은 더욱 강화돼 당장 내년 총선의 경우 지난해 지방선거와 같이 일방적인 결과가 나오지는 않을 것임을 예고한다는 의미가 있다”고 내다봤다.

홍형식 한길리서치 소장도 “민주당 입장에서 겉으론 승리의 여세를 몰아갈 수 있지만 내부적으로는 간담이 서늘한 결과일 것”이라며 “이미 (현 정부에서) 많은 재정을 소진한 마당에 마냥 복지이슈로만 끌고 가는 것도 부담이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홍 소장은 “지나친 낙관론은 더욱 보수층을 자극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이후 복지이슈 등 선거전략을 점검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해 이인영 최고위원은 이날 평화방송 라디오에 출연해 “강남과 강북 혹은 일부지역과 또 다른 지역간 차이가 나타난 것은 우리가 손가락이 다섯 개가 길이가 서로 다르지만 똑같이 하나의 손을 이루듯 다양한 차이, 다양성의 문제로 보고 시민 전체의 분열로 이어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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