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왜 우리한테 텔레비젼 보지 말라면서 엄마는 매일 텔레비젼만 봐요.”

국민학교 3학년인 여래와 유치원에 다니는 효원이는 요즘 엄마한테 불만이 많다. 엄마가 같이 놀아주지도 않고 매일 텔레비젼만 보는 것 같기 때문이다.

YMCA 좋은 방송을 위한 시청자 모임에 있는 류향렬(33세)씨, 그녀는 요즘 두 아이의 불만을 살 정도로 TV앞에 붙어 산다. 6·27 4대지방선거방송 모니터 활동에 온 신경을 써야하기 때문이다.
6살난 효원이를 유치원에 데려다주고 오면 보통 10시, 그때부터 그녀는 전날 보면서 녹화해 둔 9시 뉴스를 3-4번은 돌려본다. 전체 흐름을 파악한 후 보도기사 순서, 뉴스길이, 제목 등을 체크하며 다시한번 본다.

그리고 아이템별 내용을 분석하기 위해 앞뒤로 테이프를 돌려가며 집중적으로 뉴스를 본 후 ‘TV뉴스분석 코드북’을 작성하고 나면 보통 2-3시. 그러면 어느새 효원이가 유치원에서 돌아올 시간이다.

그러나 모니터 요원들끼리 모임이 있는 날이면 아이에게는 미안하지만 며칠간 작성한 ‘코드북’을 들고 집을 나서야 한다. 체크한 내용들을 서로 비교하고 조정을 해야하기 때문이다. 모니터 요원들이 모여 각자가 작성한 코드북을 토대로 토론을 하면서 보고서를 작성하고 나면 3~4시간이 훌쩍 가버린다.
집에 돌아오면 이것저것 밀린 집안일을 하고 일찌감치 저녁을 먹는다. 9시부터는 그야말로 또 ‘전시체제’로 돌입한다.

정신이 없다. 그냥 TV를 보는 것이 아니라 ‘감시’를 위해 신경을 곤두 세우고 몇번씩 반복해서 뉴스를 보자니 몹시 피곤하기도 하다.

“저는 MBC뉴스데스크를 모니터 하는데 요즘 우리끼리 MBC는 파업 안 하느냐는 농담도 합니다. 그만큼 다들 뉴스를 보는데 지쳐 있어요.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려서 집안일 하며 모니터를 하려니 피곤한 이유도 있지만 예나 지금이나 변한것 없이 구태의연한 뉴스를 몇번씩 돌려가며 보자니 짜증이 나는거죠.”
그녀가 ‘YMCA 좋은 방송을 위한 시청자 운동단체’에서 일을 시작한지는 사실 얼마되지 않는다.
아이들에게 좋은 비디오를 골라주기 위해 YMCA 자료회원으로 활동하다 지난해 12월 뉴스제작단에서 활동하기 시작하면서 본격적으로 선거방송 모니터에 뛰어 들었다.

“실제 ‘아현동 가스폭발’ ‘쓰레기 종량제’ 등을 취재하고 뉴스를 제작해봤어요. 지금은 선거감시가 중요하기 때문에 모든 회원들이 분과별 활동은 하지 않고 있지만 잠깐이라도 뉴스를 제작해 본게 모니터 하는데도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사실 그녀는 정치에 냉소적인 편이어서 지자제선거에 대해서도 별 관심이 없었다고 한다. 그러다 대구가스폭발 사건에 공보처가 개입한 것이나 방송사가 교묘하게 편파보도를 하는 것을 보고는 생각이 많이 달라졌다고 한다.

“방송들이 지자제의 장점 보다는 문제점을 집중적으로 부각, 정치적 냉소주의를 유포시키고 한편에서는 선거때마다 안보위기를 부추기기 위해 단골 메뉴로 등장하는 북한관련 보도 등을 보면 지난 대선때와 달라진게 별로 없다는 생각입니다. 모니터를 하다 보면 어느땐 정말 화가나요”

그녀는 시민들의 의식은 예전같지 않은데 보도태도는 여전한 것 같다고 말한다.
그래서 이렇게 시민들이 나서서 선거보도를 감시하고 있는 것 아니냐고 반문도 한다. 그러나 자신을 비롯한 많은 모니터요원들이 생활의 상당부분을 희생해가며 선거보도가 제대로 되게하기 위해 애를 쓰지만 실제로 성과가 얼마나 있을지 자신하지 못한다고 말한다.

언론사에서 시민단체들이 내는 모니터보고서를 제대로 보기나 하는지 모르겠다는 것이 그녀의 솔직한 심정이다.

전문성이 떨어지는 것은 차치하고라도 시민들의 생각을 반영하려는 노력조차 없는게 우리 방송사들의 태도가 아니냐고 불만을 터트리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래도 그녀는 이 일을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다고 한다. 당장은 큰 성과가 없더라도 최소한 시민들이 끊임없이 선거보도를 감시하고 있다는 사실만이라도 언론사가 알 수 있도록 해야겠다는 뜻에서다.

국민의 눈을 무서워 하는 언론. 그녀가 지금 이 시간에도 TV앞에 앉아 모니터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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