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유력지인 아사히신문은 6월14일 이례적인 사설을 냈다. 제목은 “고노씨에게 사죄합니다”라는 것이었다.

이 제목에서 언급된 고노씨는 지난해 6월 발생한 마쓰모도시의 사린가스 사건의 용의자로 꼽혔던 인물이다. 당시 고노씨는 이 사린살포 사건을 경찰에 처음으로 제보한 인물이었으나 오히려 집안에 있던 몇가지 약품이 문제가 돼 용의자로 몰려 곤욕을 치렀다. 그러나 1년후 옴진리교의 지하철 사린가스 살포사건이 터지면서 이 사건도 옴진리교에 의한 조직적인 범행이었음이 드러났다. 일본 언론은 이같은 경찰수사에 의존, 확인과정없이 고노씨가 마치 범인인 것처럼 보도했다.

바로 이 잘못을 아사히가 ‘신문의 얼굴’인 사설을 통해 공개적으로 사과한 것이다. 비록 잘못은 했지만 이를 솔직히 인정하는 정직함은 오보 인정에 인색한 우리 언론과 좋은 대조를 보인다.
이 사설의 주요내용을 옮긴다. <편집자>


나가노현 마쓰모도시의 주택가에서 약 1년전에 일어난 마쓰모도 사린 가스 살포 사건도 옴진리교에 의한 조직적인 범행이라는 의혹이 강해지고 있다.

우리는 사건의 첫번째 용의자였던 고노씨와 그 가족에게 괴로움을 끼친 것을 솔직하게 사죄한다. 당초 고노씨가 농약을 제조하는 과정에서 잘못해 유독가스를 발생시킨 것은 아닌가 하고 보도, 독자들에게 잘못된 인상을 심어준 것이다.

7명이 죽고 약 6백명이 부상을 입은 이 사건과 관련, 고노씨 집 부근에 가스가 끼어있다는 주변 주민들의 제보가 있었다. 수사당국은 다음날 저녁, 용의점이 확실하지 않은 상태에서 고노씨의 집을 수색했다. 고노씨가 때마침 약품지식을 갖고 있고 자택에 약품류가 있다는 ‘불행한 우연’도 있었다. 이때까지는 당연한 측면이 있다고 볼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후 “농약을 제조하는 과정에서 독가스가 발생했다”는 근거없는 소문이 나돌기 시작했다. 가택수색이나 경찰정보도 고노씨가 용의자는 아닌가하는 선입관을 갖게 했다. 그리고 언론은 이를 확인없이 마치 사실인 것처럼 보도해 버리고 말았다.

보도는 시간과의 승부이고 사건의 전개를 1분이라도 빠르게 전달하는 것은 미디어의 역할이다. 그러나 사실확인을 소홀히해도 좋다는 것은 아니다. 이번 보도에서 우리는 선입견에 얽매이지 않고 진실을 파헤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의 중요함을 새삼 통감하고 있다.

두번째 반성할 점은 좀더 과학적인 눈으로 사건과 수사를 검증했어야 했다는 것이다. 사건 발생 당시 “화학병기의 일종인 사린가스를 사용한 무차별 테러다” 라고 추측한 사람은 왜 없었을까.

예전에 경험한 적이 없는 독가스 사건이었기 때문에 초기 단계부터 과학자 등 전문가의 도움을 빌려서 냉정하고 과학적인 보도를 해야 했다.

수사당국의 심각한 반성도 요구된다. 보도가 잘못된 데에는 경찰이 고노씨를 사실상 범인 취급을 한 것도 영향이 있다. 특히 퇴원후 확실한 증거도 없이 장시간의 조사를 하고 이제까지 고노씨의 동향을 철저하게 감시하고 있는 것도 문제다.

고노씨 집에서 압수된 약품류로는 사린 제조가 불가능하고 사린가스가 집에서 간단하게 제작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이런 점에서 빨리 냉정을 되찾았다면 예단이나 편견에 얽매이지 않고 사건을 해결할 수도 있었다.

경찰은 고노씨에게 유감을 표명했지만 한번 실추된 명예나 프라이버시를 완전하게 회복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부인은 아직 의식불명으로 입원한 상태다.

수사의 잘못은 고노씨만을 상처입힌 것이 아니다. 결과적으로 옴진리교를 체포하는 것이 늦어졌고 그후의 사건발생을 막지못한 것으로 연결됐다. 옴진리교가 좀 더 일찍 수사망에 잡혔다면 지하철 사린 살포사건의 피해자는 나타나지 않았을 것이다.

도쿄도지사 우편물 폭탄테러 사건, 신주쿠역의 청산가스살포사건도 옴진리교 신도에 의한 범행의혹이 크다. 또 교단내에서는 집단폭행에 의한 살인도 있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세계범죄 사상 유례없는 이번 사건에 대한 철저한 수사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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