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해 6월 2일 지방선거에서 지옥과 천당을 오갔다. 언론은 선거 당일 아침까지만 해도 ‘결과는 이미 나온 것’처럼 ‘오세훈 당선’을 자신했지만, 방송사 출구조사 결과를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대다수 언론이 전망했던 오세훈 서울시장의 여유 있는 승리는 엉뚱한 예측이 돼 버렸고, 결과를 알 수 없는 초박빙 승부로 예측됐기 때문이다. 실제로 오세훈 서울시장 쪽과 한나라당 쪽에서는 패배할 지도 모른다는 극도의 긴장감 속에 개표 결과를 지켜봤다.

서울 25개구 가운데 17곳은 한명숙 당시 민주당 후보 우세로 나왔고, 8곳만이 오세훈 후보의 우세로 나왔다. 그러나 오세훈 시장은 강남구 서초구 송파구 등 ‘강남 3구’의 몰표 덕분에 한명숙 후보를 누르고 서울시장 재선에 성공했다. 말 그대로 기사회생이었다.

   
오세훈 서울시장 @연합뉴스
 
‘강남 몰표’의 기적은 오세훈 시장을 수렁에서 구해냈다. 특히 강남구는 오세훈 시장에게 59.9%, 서초구는 59.1%의 몰표를 안겨줬다. 한명숙 후보는 이곳에서 35% 안팎의 득표에 그쳤고, 이곳의 큰 격차가 서울시장 낙선의 주된 원인 중 하나였다.

서울시장 재선에 성공했던 오세훈 시장은 이제 자신의 정치인생에서 가장 중요할지도 모르는 ‘무상급식 주민투표’ 승부수를 띄웠다. 서울이 최악의 물난리를 겪으면서 정치적 논란을 무릅쓰고 주민투표를 강행하기 어려울 것이란 관측과는 달리, 서울시장의 기자회견도 없이, 결과에 따른 정치적 책임에 대한 언급도 없이, 주민투표는 조용히 발의됐다. 

서울시교육청을 비롯해 야당과 시민사회는 이번 주민투표가 ‘불법’이라고 주장하면서 사법부에 판단을 의뢰했다. 법원이 오세훈표 주민투표의 손을 들어줄 것인지, 제동을 걸 것인지 주목되는 대목이다.

우여곡절 끝에 주민투표가 실시될 경우 오세훈 시장은 원하는 결과를 얻어낼 수 있을까. 관건은 투표율 33.3%라는 법적 개표요건을 채울 수 있느냐다. 투표 예정일인 8월 24일(수)은 평일로서 서울시 유권자들이 투표에 참여하려면 평소보다 아침 일찍 일어나 투표에 참여하고 출근하거나 퇴근을 서둘러서 투표에 참여해야 한다.

재보선에 준하는 투표 방법 때문에 적극적인 투표 의지가 있어야 무상급식 주민투표에 참여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야당과 시민사회는 ‘투표 보이콧’ 움직임을 본격화하고 있다. 이번 투표는 준비과정부터 내용, 투표 문구까지 불법 편법 탈법의 연속이라는 주장이다.

이용섭 민주당 대변인은 “민주당은 서울시당을 중심으로 법원에 집행정지 가처분신청을 내는 한편, 일고의 가치도 없는 주민투표에 불참하는 운동을 포함해서 시민들과 함께 효율적인 대응방안을 강구해 갈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당 등 야당이 투표보이콧에 나설 경우 투표율 33.3% 돌파는 힘겨운 일이 될 수밖에 없다. 오세훈 시장이 믿을 곳은 다시 서울 강남일까. 문제는 이번 서울 수해의 진원지가 바로 서울 강남이라는 점이다.

서울 강남구와 서초구는 이번 수해로 큰 피해를 입었다. 수십명이 목숨을 잃었고, 수많은 차량이 물에 잠기는 등 엄청난 재산 피해도 입었다. 서울시 허술한 수방대책이 논란의 초점이 되면서 여론도 악화된 상황이다.

오세훈 시장은 이번 수해 때문에 강남 ‘무상급水’ 시장이라는 입방아에 오르기도 했다. 무상급식을 해달라고 했더니 ‘무상급水’를 안겨줬다는 패러디였다.

이런 상황에서 오세훈 서울시장은 무상급식 주민투표라는 승부수를 던졌다. 이번 승부수가 대선레이스에 가속 페달을 밟아줄 묘수가 될지, 대선레이스에서 일찌감치 탈락하는 ‘자충수’가 될지는 투표율에 달렸고, 강남 3구의 몰표 여부에 달렸다.

김기현 한나라당 대변인은 “한나라당은 이번 주민투표가 민주와 지방자치를 한층 성숙시키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며, 서울시민의 현명하고 올바른 선택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서울 강남에서 다시 ‘오세훈 몰표’를 선택할 경우 33.3% 돌파의 결과를 이뤄낼 가능성도 없지는 않다. 강남 주민들은 이번에도 적극적인 투표로 다시 한 번 오세훈 시장의 구세주가 될까. 아니면 정반대의 결과로 오세훈 시장에게 쓰라린 패배를 안겨줄까.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