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야 안보여.” “그만 내려와.” “나오지도 않는 걸 찍어서 뭐해.”

지난 13일 저녁 공권력 투입에 항의해 2차 시국미사가 열리고 있던 명동성당. 2만여명의 신자와 시민들이 참가한 이날 시국미사가 끝나갈 무렵 사제단이 ‘명동성당 난입한 현정권은 사죄하라’는 플래카드를 펼쳐들고 성당입구로 내려오자 수십명의 사진기자들이 사제단 앞에 자리를 잡고 플래시를 터트리며 취재에 열을 올렸다.

사제단의 침묵시위속에 요란한 카메라 셔터소리와 플래시의 섬광이 계속되자 어느사이엔가 시민들의 고성이 하나둘 터져 나왔다. 계속되는 기자들의 촬영 때문에 앞의 시야를 뺏긴 신자들과 시민들이 짜증과 불만을 참지 못하고 사진기자들을 나무라기 시작한 것이다.

그때였다. ㅈ일보 사진기자가 자사 이름이 박힌 카메라를 메고 사다리에서 내려오자 갑자기 분위기가 험악해졌다. 한 시민이 격앙된 표정으로 “사진 찍으면 뭐하냐”는 식으로 기자를 힐책하자 여기저기서 거친말들이 거의 동시에 터져나왔다.

순간 그 기자는 당혹스런 표정이 역력했지만 가까스로 자신의 감정을 억제했다. “아저씨 저하고 얘기 좀 합시다. 저도 할 말이…”라고 말문을 열었다. 그러자 시민들 사이에서 바로 “무슨 할 말이 있다고 그래”하는 고성이 터져나왔다. “싸워도 될 걸 왜 말로 해” “나둬, 쟤들도 밥먹고 살아야 하잖아”하는 비아냥도 뒤따랐다.

심상찮은 분위기속에서 속이 상한듯 그 기자는 장비를 챙기면서도 처음 말을 꺼낸 시민을 계속 응시했다. 또다시 험한 말이 이어졌다. “왜, 당신은 괜찮은데 윗대가리들이 잘못이라고 말하려고. 다 똑같으니까 있는 것 아냐. 더러우면 사표 쓰면 될 것 아냐.” 거칠은 표현이긴 하나 언론에 대한 시민들의 불만 수준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결국 견디다 못한 기자는 사라졌고 시민들도 침묵시위속으로 빠져 들어갔다. 그러나 그 와중에 한 시민이 내뱉은 말은 여운처럼 명동성당의 입구를 휘감았다. “실리지 않는 것만도 다행이야. 왜곡보도는 못할 거 아냐.”

이날 명동에서 한국언론은 참담함과 돌이킬 수 없는 불신의 이름을 얻은 ‘양치는 소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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