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자체선거 기간동안 TV카메라 기자들은 올빼미였다. 새벽 일찍 나와 밤별을 보고 들어가기 일쑤였다. MBC 카메라취재부 주원극기자도 예외는 아니었다. 선거 열기가 한창 뜨거웠던 22일 주기자를 비롯한 민주당 서울시장 후보 취재팀은 새벽6시 봉천동 조순후보의 집을 향해 출발했다. 당선가능성이 높다는 이른바 빅 3에 대해서 당선확정 뒤에 내보낼 스케치 자료화면을 만들어 두기로 했기 때문이다.

조후보의 이날 일정은 오전에 국민학생 등하교 지도와 버스전용차선 단속반을 격려하는 것이다. 그리고 KBS에 가서 방송연설 녹음을 한 뒤 오후에는 강남에서 집중적인 유세를 갖는다. 저녁에는 TV토론을 준비한다. 이 정도면 비교적 여유 있는 일정에 해당한다. 그러나 이날 일정은 시작부터 삐걱거렸다.

조후보가 유세를 위해 집을 나서는 장면부터 취재하려고 집밖에서 1시간을 기다렸다. 하지만 결과는 조후보의 비서로부터 선거유세 방송원고 수정을 위해 오전 일정을 취소했다고 전해들은 것 뿐. 허탈한 표정속에서도 오랜만에 생긴 여유를 만끽하려는 주기자에게 카메라기자가 본 지자체보도의 문제라는
명제를 들이댔다.시청자들은 왜 빅3만 보도하느냐고 묻습니다. 일리가 있다는 생각은 들지만 당선가능성이라는 것이 있지 않습니까.

문제는 역시 시간입니다. 제한된 뉴스시간중에 모든 후보의 유세를 다 다루다보면 보도가 제대로 되겠습니까선거방송이 후보자의 자질 검증보다 전력시비에 급급하고 정책대결로 이끄는데 실패하고 있다는 지적에 대해 주기자도 일단 긍정을 표한다. 하지만 현실은 여전히 유세를 따라다니는데 급급하게 만들 뿐 기획 취재할 시간을 허락하지 않는다는게 그의 해명이다.

선뜻 아이템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위에서 지시가 내려오지 않은 바에야 취재했다고 해서 다뤄준다는 보장도 없기 때문에 기획취재를 하는 것이 결코 쉽지는 않다.일부에서는 기자들이 후보들과 지나치게 밀착한다는 지적을 합니다. 사실 한 후보와 오랜시간 같이 있다보면 자연스럽게 친밀감을 느끼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래서 보도를 할때는 균형을 갖추려고 더욱 노력합니다

오후가 되자 주기자는 다시 유세 취재에 나섰다. 고속버스터미날이었다. 스케치 화면을 찍고 있으려니 조순후보가 등장했다. 주기자의 몸놀림이 빨라졌다. 순식간에 연단은 아수라장이 되고 치열한 취재경쟁이 시작됐다. 그전까지 서로 농담을 주고받으며 지낸 동료들이라고는 전혀 생각되지 않을 정도였다.
주기자는 선거기간 내내 그렇게 전쟁을 치르고 회사로 들어가 녹화테이프를 넘기고 내일의 전쟁을 준비하는 숨막히는 일상을 치렀다.

여느 기자들도 그랬지만.그는 카메라기자 생활 10년동안 큰 선거는 다 겪어봤다. 지난 87년 대선 때는 전날 MBC 보도에 화가 난 청중들에 둘러쌓여 곤욕을 치루기도 했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요즘은 취재 분위기가 많이 좋아진 편이다.

그래도 그 때를 생각해서 늘 공정보도를 염두에 두고 취재에 임했다고 한다. 그래도 선거때만 되면 공정성 시비가 나오는 것이 안타깝다고 한다. 실제로 과거에 비해 양적균형은 많이 나아졌지만 질적인 면에선 여전히 시비가 있다고 말했다. 요즘은 등시간 원칙을 잘 지키기 위해 편집도 한사람이 합니다. 때문에 양적편파는 사라졌습니다.

그런데 여전히 편파보도 문제는 가라앉질 않고 있는 것을 보면 문제는 여전하다는 생각입니다

보도는 공정성과 객관성이 생명인데 사실 주관을 완전히 배제하기란 쉽지가 않다 어떤 사안을 키우고 죽이고 하는 것은 이미 카메라 기자의 손을 떠난 문제다 등등 그가 하는 말 한마디 한마디는 어쩌면 방송 카메라 기자들의 입장을 대변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만큼 우리 언론의 선거보도는 문제가 적지않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그날 저녁 MBC 뉴스데스크에 자신이 하루종일 고생해서 찍은 화면이 한 컷도 나가지 않은 것을 보고 주기자가 가진 심정은 어떠했을지 선거가 끝난 지금까지도 몹시 궁금하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