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비로즈’에서 시작된 파워 블로거의 상업화 파장이 좀처럼 잦아들지 않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미 생활화된 인터넷 세상에서 이 문제는 제도를 부분적으로 고친다고 근절될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이에 대해 앞으로는 협찬 사실을 명기해서 홍보성 정보임을 밝히도록 강제할 것으로 알려졌다. 제대로만 시행될 수 있다면 일단 응급처방으로는 그 이상의 대책을 바로 생각해 내기 어려울 것 같다.

그러나 새로운 미디어로 칭송받던 ‘파워 블로거’가 ‘파워 브로커’로까지 비하되는 현상이 그러한 조치로 쉽게 교정될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이 문제는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신뢰의 위기를 고스란히 담고 있기 때문이다.

믿음 배반한 파워 블로거·저축은행사건

대체로 소비자들은 제품을 구입할 때 세 가지의 길을 통해 정보를 얻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하나는 공급자가 제공하는 정보이고 두 번째는 같은 동료 소비자들이 평가하는 의견이다. 세 번째는 언론이나 정부와 같은 제3의, 공정할 것이라고 믿는 기관에서 알려주는 정보이다.

많은 연구 결과를 통해 볼 때 신뢰의 강도는 여기에서 나열한 것과 반대의 순서이다. 공급자의 정보는 이해관계가 강하게 반영돼 있을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신뢰도가 낮고 같은 소비자들의 평가는 그보다 설득력이 높지만 주관적이고 편향될 가능성이 있어서 공적 기관의 평가보다는 낮다. 공적 기관의 정보가 신뢰를 확보하는 이유는 이해관계에서 벗어나 있으면서 편향되지도 않을 것이란 믿음 때문이다.

수많은 일반 블로거 중에 일부가 ‘파워’의 지위를 획득한 것은 같은 소비자의 입장이란 전제 위에 전문성과 균형감에 대한 믿음을 대중 소비자들로부터 얻었다는 것이다. 간단하게 말하면 이해관계의 측면에서는 내 친구이고, 그 친구가 객관적으로 설명해 줄 수 있는 전문성까지 가지고 있다고 믿는 것이다. ‘파워’의 정도는 바로 믿음의 강도이다. 따라서 홍보성 정보를 명기할 때 믿음은 성립하지 않는다. 이와 함께 ‘파워’도 생성되기 어려울 것이다.

우리는 이미 마치 계획됐던 시리즈처럼 연쇄적인 신뢰의 붕괴를 경험하고 있다. 지난 5월 초에 공개된 영화 ‘트루맛쇼’에서 소비자들은 이미 만만치 않은 상실감을 맛봤다. 논란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지만 영화가 담고 있는 장면은 정말 사실적이다. 거대 방송사도 욕을 먹었고 식당도 비난을 받았다. 소비자들 역시 그러한 현상에 보조적인 역할을 했다고 책임 추궁을 당했다.

   
불량품 공동구매로 논란이 되었던 '베비로즈의 작은 부엌' 블로그
 
모두 일리가 있는 얘기들이다. 모든 사회 현상에는 마치 영화처럼 주연과 조연과 소품이 있기 마련이다. 참여도에 따른 부문별 책임도 따져야 할 일이지만 이 현상이 총체적으로 던진 질문은 이제 “누구를 믿어야 할까?”라는 것이다. 상품 정보에 대해 일반적으로 가장 설득력이 높은 것으로 간주돼 왔던 제3의 기관이 공정성과 전문성에 대한 전통적 신뢰를 내팽개친 것이다.

시간상으로 앞서 있지만 가장 큰 배반감을 안겨 주었고 아직도 파장이 가라앉지 않고 있는 사건은 부실 저축은행과 금융 감독기구의 담합 사건이다. 국가 기관에 대한 신뢰는 이미 떨어질 대로 떨어져 있지만 그래도 포기할 수 없는 것은 국가를 대체할만한 공익기구를 역사에서 아직 찾아 볼 수 없다는 사실에 근거한다. 믿음을 선뜻 주지 못하면서도 여전히 심판이니 판관이니 하며 국가 기관에 공정성을 요구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신뢰를 갈구하는 소비자들은 그러나 그렇게까지 할 줄은 상상도 못했던 일을 당하고야 말았다. 사회 전반에 대한 기본적인 규약을 만들고 약속의 이행을 관리하도록 위임했기 때문에 국가 기관의 업무를 공무라고 한다. 공익을 위해 그 일을 하는 사람들은 공무원이다. 위임에는 신뢰가 철칙으로 수반된다. 그런데 공무가 ‘사무’가 됐고 공무원은 ‘사무원’이 됐다.

 기본 신뢰 깨질 땐 사회 거래비용 ‘끔찍’ 

   
이종현 경원대학교 경영학과 조교수
 
한 때 사회자본(Social capital)이란 말이 유행했다. 많은 사람들이 사회자본의 핵심 항목으로 신뢰(Trust)를 말했다. 도덕적 훈도처럼 들렸던 이 말은 그러나, 발전은 차치하고 사회가 생존하기 위한 최소한의 요건이다.

기본적인 신뢰 체계가 붕괴됐을 때 사람들은 믿을 만한 정보를 얻기 위해 엄청난 비용을 들여야 한다. 물건 하나를 사기 위해, 사회적 규약이 지켜지는지 알기 위해, 사람들은 만인을 의심하며 스스로 확인해야 한다. 이른바 거래비용(Transaction cost)은 계측할 수 없을 만큼 높아질 것이다. 정글법칙이 주도하는 시장이라 해도 기본적인 신뢰가 없으면 그 조차 유지되지 않는다.

바람직한 사회를 구상해 보자는 것이 아니다. 신뢰의 붕괴는 ‘바람직’ 근처에도 가지 않은 근원적 두려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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