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15회째를 맞는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이하 부천영화제)는 그 ‘판타스틱’이라는 이름만큼이나 한국 내 영화제들 중에서 독특한 위상을 갖고 있는 영화제이다. 한국 일반 관객들에게는 생소한 호러나 SF, 스릴러 등 고전적인 ‘장르’의 의미에 충실한 영화들을 10년 넘게 한국 관객들에게 소개하고 있으며 상영되는 프로그램에 걸맞는, ‘광란적이고 에너제틱한’ 영화제 분위기로도 유명하다. 그렇다고 ‘피칠갑에 팔다리가 떨어져 나가는’ 영화들만 소개되는 것도 아니다. ‘패밀리판타’나 ‘애니판다’ 섹션은 ‘환상적인 영화축제’라는 위상에 걸맞는 가족 관객들을 위한 부천영화제의 또다른 선물이다.

7월 14일 개막, 전세계 장르영화들 중에서 추리고 추린 221편의 영화들

영화제에서 프로그래머의 역할은 영화에서 감독만큼이나 중요하다. 상영작 들을 선정하는 가장 1차적인 업무부터 시작, 감독 초청부터 상영에 관한 기술적 문제 조율까지 프로그래머의 손이 안닿는 부분이 없기 때문이다. 지난 4~5년간 계속된 세계 장르영화의 풍년으로 그 어떤 해보다 영화 선정에 ‘행복한 비명’을 질렀다는 판타스틱영화제 5년차 프로그래머 박진형씨를 만나 올해 부천영화제의 면모를 살짝 엿본다.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박진형 프로그래머
이치열 기자 truth710@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는 국내 많은 영화제 들 중에도 유독 ‘판타스틱’이라는 형용사를 붙이는 특징이 있어요.

-부천 이전에도 시체스, 브뤼셀영화제 등 판타스틱영화제는 있었어요. 어떻게 보면 기존 국제영화제들에 대한 대항마의 역할이라는 입장도 있죠. 칸, 베를린, 베니스 등 유럽 중심의 영화제들이 예술영화나 아트하우스 중심의 영화인데 반해, 아주 상업적 성공을 한 것은 아니지만 미학적 가치가 있고 그럼에도 쉽게 접하기 힘들었던, 이른바 ‘저질영화’로 자리매김해왔던 영화들이 우리의 주요 관심사라 할 수 있죠. 역사적으로 뱀파이어가 등장하는 고딕소설부터 판타스틱 장르는 두터운 팬층을 갖고 있었어요. 그런데 이런 문화를 음지에 숨어서 즐기는 것이 아니라, 보다 적극적으로 이런 엄청난 에너지를 함유하고 있는 영화들을 온전히 즐길 수 있게 하는 것이 우리의 할 일이죠.

-영화제가 많아지면서 각 영화제들 간의 교집합이 많이 생기고 있는 것 같은데요. 부천영화제만의 차별성을 어떻게 유지하는지 궁금합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부천영화제가 그 고민에서 제일 자유롭죠. 경쟁섹션, 부천영화제의 경우는 ‘부천초이스’인데 부산영화제나 전주영화제 모두 중요하게 생각하는 섹션이 있어요. 그 부분에서는 차별적으로 색깔이 보여지죠. 그 부분이 그 영화제들이 관객들이 주목해야한다고 말하는 섹션이라 할 수 있죠. 부천영화제의 경우 다른 영화제에서 ‘미드나잇’이나 ‘불면의 밤’ 등 섹션으로 만들어놓는 것들이 부천영화제에서는 경쟁 프로그램이죠. 가장 기준이 명확해요. 물론 200편이나 되는 영화들의 경우 다른 영화제랑 교집합이 생길 수 밖에 없어요. 하지만 하루 3~4편 보는 사람들이 매번 호러나 스릴러만 볼 수는 없으니.(웃음) 프로그래밍에서 그런 관객들을 위해 균형감각을 잡는 것이 중요한 부분인거 같아요. 보다 많은 관객들의 만족을 위해 공공적인 역할들 또한 고민이 되어야 하거든요. 부천팬들의 장르영화 고집, 부천시민들의 참여라는 두가지 목적을 위해 사려깊은 균형 또한 필요하죠.

-장르영화들이 세계적으로 많이 만들어지고 있나요?

아주 많이 만들어지고 있어요. 사실 SF같은 장르에 돈을 많이 들이면 블록버스터 잖아요. 흔히 말하는 케이블TV용, 비디오용 영화들은 장르성이 강한데 그런 영화들이 또 은근히 팬층이 두텁거든요. 그렇게 저평가된 영화들은 많아요. 판타스틱영화제가 그렇게 저평가된 영화들에 대한 재평가 기회를 제공하고 있는 거죠.

-세계적으로 한국영화들에 대한 평가는 어떠한가요?

한국영화들이 해외판타스틱영화제에 나가면 ‘J(일본)-호러’, ‘태국 액션’이라는 식으로 ‘코리안 스릴러’라는 식으로 주목받고 있어요. 어찌보면 한국영화를 대표하고 있는 감독들이 장르영화 감독들이잖아요. 박찬욱, 봉준호 감독들은 해외에서 ‘장르영화 감독’이라는 카테고리에서 평가되고 있어요. 그런 감독들의 작품들이 한국에서 세계에서 주류로 부상하면서 판타스틱, 장르영화에서 한국의 위상이 강화되고 있는 추세예요.

-경쟁이 치열한 영화제에서 ‘월드프리미어’(전세계 최초상영)는 중요하다고 알고 있어요. 그런 의미에서 프로그래머는 만들어‘진’ 영화보다는 만들어‘질’ 영화에 대한 정보와 ‘선점’도 중요하다고 보는데요.

-최초상영이 중요하지만, 본질은 그 영화를 부천에서 상영하는게 좋은가예요. 부천에서 상영된다면 이 영화의 인생에, 영화의 역사에 좋은가. 그런게 있어야 설득할 수 있어요. 부천영화제는 영화, 영화제의 에너지가 더 중요해요. 이미 상영되었어도 영화제를 뜨겁게 만들 수 있느냐, 의미가 있다면 상영하지 않을 이유가 없죠. 영화에 도움이 되지 않는데, 그리고 관객들이 준비가 되지 않았는데 무리하게 최초상영이라는 형식에 집착하는 것은 영화나 영화제에, 관객들에게 좋지 않다고 봐요.

-장르영화들에 대해 사람들이 갖고 있는 생각이 선입견일 수 있지만 저예산영화, 작은영화란 생각인데, 부천영화제에서 주로 상영하는 그런 영화들이 우리나라에서는 잘 만들어지고 있지 않은 것 같아요.

해외에서는 그런 영화들을 영화제에서만 즐길 수 있는게 아니라 영화를 볼 수 있는 시스템이나 산업적 부분들이 잘 유지되고 있어요. 한두개 상영관에서라도 볼 수 있고. DVD로도 발매되고 매체에도 잘 소개되고 있어요. 그래서 팬층이 사라지지 않고 두터워지고 있죠. 그런 이들의 요구가 모여서 산업적으로도 일종의 틈새시장으로 유지되고 있는거구요. 한국은 해외에 비해 그 기반이 약해서 산업적 환경에 따라 부침이 심하죠. 어떻게 보면 극장에서 보여지고 있지 않는 이런 영화들을 볼 수 있다는게 부천영화제만의 매력이기도 해요. 그렇게 “저예산호러 재밌다”라는 식의 의견이 모이면 그런 영화들이 계속 만들어지며 두터워질 수 있지 않을까 해요. 그래서 부천영화제에서는 출판, 시네마테크 등의 상시적 사업 또한 준비하고 있죠. 그럼에도 한국 독립 저예산 장르영화들이 증가하고 있는 추세라는 점은 고무적이예요. 장르영화를 저예산으로 찍는게 어렵지만 지난 4~5년간 그런 시도들이 계속되고 있고, 그런 영화들을 소개할 수 있는 창구로 부천영화제가 있다는 사실이 좋죠.

-부천의 경쟁 부문인 ‘부천초이스’ 초청작들에 대해 설명해주신다면?

-열손가락 깨물면 다 아프지만 덜 아픈 손가락은 있어요.(웃음) 경쟁부문인 ‘부천초이스’는 이미 이름이 알려진 감독들보다는 이제 막 장르영화의 에너지와 감독으로서의 감수성을 독특하게 잡아낼 줄 아는 젊은 감독들 위주로 선정됐어요. 올해의 경우. 짜릿할 정도로 기쁨을 줬던 영화들이죠. 장르의 전형을 따라가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장르 근본에 대한 재해석이나 센스, 스타일 등이 능수능란한데다 대중성을 갖고 있어서 일반 관객들도 완전히 즐길 수 있는 그런 작품들이라 할 수 있어요.

- 마지막으로 본인이 직접 선정한거라 모두 애정이 있겠지만, “관객들이 이건 꼭 보셨으면 좋겠다.”는 섹션이 있나요?

-올해 회고전 부문이 어떨까요. 지난 영화제에서 <코드네임 도란스>라는 배우 박노식씨의 작품을 상영한 적이 있었는데, 반응이 아주 열광적이었어요. 영화를 보시면 아마 “아니, 이런 B급 감수성이 있을 수 있다니”라면서 놀라실꺼예요.(웃음) 그리고 우여곡절 끝에 프린트를 입수한 ‘여성 야쿠자 영화’라는 특이한 장르의 ‘붉은 모란’ 시리즈도 영화 <킬빌>에 영감을 줬을 정도로 훌륭한 작품들이죠. 대중성에 있어서도 나무랄데가 없을 정도고, 일본의 근대적 감수성, 여성-야쿠자라는 이질적 소재가 만난 아주 흥미로운 작품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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