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은 없고 종료만 있는 디지털 전환 정책”. 시민사회 단체들이 지상파 디지털 전환의 총체적 문제를 정면으로 지적하고 나섰다. 한국여성민우회, 서울YMCA 등은 DTV전환감시시청자연대를 지난 6일 발족했다.

시민사회 단체들이 나선 것은 내년 12월31일 진행되는 디지털 전환이 심각한 상황에 빠졌다는 진단 때문이다. 우선, 제주 등에서 아날로그 방송 종료 시범사업 결과 방송이 중단되는 사태가 벌어졌고, 유료방송에 가입하지 않고 지상파 방송을 직접 수신하는 비율이 5%도 채 안 됐다. 

결국, 방송통신위원회와 지상파 방송이 ‘홍보’하는 것과 달리 디지털 전환이 이뤄져도 ‘난시청 해소’는 요원한 일인 셈이다. 또 시청자들은 채널이 제대로 잡히지 않은 디지털 지상파를 보거나, 디지털 TV 수상기를 구입하고도 아날로그 케이블 TV 상품에 가입할 수밖에 없어 고화질 방송을 보기 힘든 상황까지 우려되고 있다.

시민단체들은 “유료방송 중심의 소극적 디지털 전환정책을 주도하고 있는 방통위와 일관되게 지상파 직접 수신 환경 구축을 외면해 온 지상파 방송”으로 인해 “디지털 전환에 대한 충분한 정보를 제공받지 못한 국민들이 케이블의 ‘혹세무민’ 영업방식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석현 서울 YMCA 시청자시민운동본부 팀장은 11일 인터뷰에서 “디지털 전환은 사업자가 아니라 시청자가 혜택을 받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며 “우선 시청자의 알권리부터 보장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한석현 팀장과의 인터뷰 내용이다.

   
▲ 한석현 서울 YMCA 시청자시민운동본부 팀장. 최훈길 기자 chamnamu@mediatoday.co.kr
 
- 지금처럼 디지털 전환이 진행될 경우 내년 말에 시청자에게 무슨 문제가 생기는가.

“우선 지상파를 직접 수신하는 가구에 영향이 있다. 기술적인 문제로 방송이 중단될 수 있다. 아날로그 방송을 종료한 제주 등에서는 수천 명이 방송을 못 보는 사태가 벌어졌다. ‘서울에선 방송 중단이 일어날 가능성이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사실 지상파 직접 수신 범위가 전국적으로 어느 정도인지 제대로 파악된 게 없다. 그러다 보니 방통위가 직접 수신이 취약한 가구에 보조를 하더라도 구멍이 생길 수밖에 없다. 정부 지원을 받는 취약 계층 이외의 직접 수신 가구에서 컨버터나 안테나 등을 자체 구비하지 않을 경우 TV를 못 볼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방통위는 지상파 직접 수신율이 10%에 불과하고 대다수가 유료방송 수신이어서 사실상 방송 중단 사태는 없을 것이라고 장담한다. 물론, 방통위 말대로 현재 유료방송 시스템에서 방송 중단으로 인한 피해가 많지 않을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국가 정책의 ‘모순’이 발생한다. 내년 말에 지상파 디지털 전환이 이뤄져도 90% 국민은 현재처럼 SD급의 유료 방송을 그대로 볼 뿐, 디지털 전환의 수혜자가 아닌 셈이다. 그런데도 마치 방통위가 전 국민에게 혜택이 돌아오는 것처럼 디지털 전환을 홍보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 방통위는 내년 12월 31일 4시간 만에 전국적으로 디지털 전환이 이뤄진다고 홍보하고 있다.

“당장 TV를 못 보게 되는 일이 일어날 수 있다. 직접 수신율 이외에도 기술적으로 봐도 그렇다. 당일 단 시간에 기술자 수천 명이 송신탑에 올라가 디지털 전환을 하는 것은 무리다. 예측 못했던 기술적 문제들이 발생될 수 있다. 그래서 외국에서는 지역별로 순차적, 단계적으로 디지털 전환을 하고 있는데, 우리는 밀어붙이고 있는 것이다.” 

- 지상파도 디지털 전환을 대비하며, 홍보에 나서고 있지 않나.

“홍보가 잘 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게 문제다. 직접 DTV코리아에 전화해 ‘케이블 약정이 2년 남아 있는데 디지털 전환을 앞두고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묻자, ‘위약금을 지불하든지 2년을 기다리라’는 답변이 왔다. 지상파 직접 수신 환경이 제대로 구축되지 않아 디지털 전환이 돼도 금전적 손해를 보면서까지 유료방송을 시청할 수밖에 없는 시청자가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도 지상파는 직접 수신율을 높이기 위한 활동을 제대로 하지 않고 있다.”

   
▲ ⓒDTV코리아
 
- 왜 국가적인 디지털 전환 정책에 국민은 소외되는 결과를 낳게 된 것인가.

“이해 관계자와 정책 당국 모두 현재의 방송 틀을 깨기 싫어하기 때문이다. 수년 전부터 아날로그 수상기로 디지털 방송을 볼 수 없다고 해 디지털 수상기가 많이 팔렸다. 하지만 디지털 수상기를 갖고도 여전히 시청자들은 수혜를 받지 못했고, 그동안 이익은 가전사-방송사-케이블이 나눠 가져 갔다. 이번에도 시청자들의 이익은 뒷전으로 밀려 났다.”

- 그렇다면 디지털 전환을 어떻게 준비해야 하나?

“디지털 전환은 사업자가 아니라 시청자가 혜택을 받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90% 국민이 소외되는 현 방식에서 탈피해야 한다. 현재 가장 중요한 것은 정확한 정보를 시청자에게 제공하는 것이다. 디지털 전환시 시청자가 어떻게 하면 혜택을 더 많이 받을 수 있는지, 화질이 어떤지, 수상기를 교체할지 판단할 근거가 제공돼야 한다. 지상파만 시청하는 사람이 매달 2만 원, 매년 20여만 원씩 유료방송에 돈을 계속 지불할지, 2만 원 가량의 안테나만 설치하고 끝날지 선택할 수 있게 해야 한다. 통신사의 다양한 요금제처럼 골라 쓸 수 있게 해야 한다. 그 다음으로 디지털 전환을 일본처럼 지역별로 단계적, 순차적으로 진행해야 한다. 또 현재처럼 화질 개선에 매몰된 디지털 전환이 아니라 다채널 서비스와 취약 계층을 고려한 디지털 전환으로 다양한 전환 효과를 얻어야 한다. 이렇게 알려야 할 게 많은데 9시 뉴스에서 왜 이런 뉴스가 없는지 의아 할 뿐이다.”

- 현재는 유료방송을 통한 시청이 일반화 돼 있는데, 얼마나 시청자들이 지상파 직접 수신에 관심을 가질지 의문이다.

“그게 문제다. 많은 전월세 거주자들이 2년마다 이사를 가다보니, 한 시청자가 직접 수신을 통해 지상파를 지속적으로 보기 힘든 상황이다. 결국 대다수 시청자들은 이사 간 곳에서 유료방송을 신청하는 손쉬운 선택을 하게 된다. 하지만 현실이 그렇다 하더라도 디지털 TV 수상기에 안테나만 달면 직접 수신을 할 수 있는데, 이에 대한 홍보가 거의 안 돼 있다. 직접 수신에 대한 홍보만 제대로 돼도 시청자들이 유료방송 시청에 고착화 되는 것에서 탈피할 여지가 있다.”

- 향후 어떤 사업을 할 계획인가?

“우선 시청자의 알권리부터 보장돼야 한다. 시청자들을 위한 디지털 전환 가이드라인이 세워져야 한다. 또 시청자들이 어떤 시청 형태를 선택할 수 있는지 정확하게 알려줘야 한다. 국민의 매체 선택권을 침해한 방통위를 상대로 한 행정소송도 검토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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