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리는 시어미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

정치인들이 풍성한 말의 잔치를 벌이면서 어지럽게 돌아가는 이번 지자제 선거 과정을 언론을 통해 지켜 보면서 이 속담이 떠오르는 것은 왜일까? 중간평가, 지역등권주의, 내각제개헌, 세대교체론, 야권 공조 등등 신문을 보고 있노라면 정치권이 무언가 곧 터질 것만 같은 긴장감마저 감돈다.

신문들은 연일 이러한 재료로 성찬을 마련하면서 한편으로는 이번 선거에서 지역 현안이 파묻히고 쟁점이 실종된 채 정치판의 싸움이 되어 버렸다고 한탄하며 정치인들의 행태를 꾸짖었다.

이러한 현상의 1차적 원인은 물론 정치인들에게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 보자.

정치인들의 행태를 일일이 따라가면서 보도하는 언론의 잘못은 과연 없는가? 정치인들이 자신의 목적을 위해 무원칙하게 이합집산 하면서 식언을 일삼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어찌 보면 정치인들이 선거라는 정치 마당을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이용하려는 것은 충분히 예견할 수 있는 일일 것이다.

문제는 언론의 보도다. 정치인들이 이렇듯 무책임한 말과 행동을 일삼는 것은 이를 열심히 따라 다니면서 충직하게 보도해 주는 언론에도 적지 않은 책임이 있다. 언론없는 현대 정치는 생각할 수 없다. 정치인들의 행위는 언론이 이를 보도해 줌으로써 비로소 그 정치적 의미를 획득하는 것이다.

정치인의 말이라면 무엇이든지 기사화하고 조금만 묘한 뉘앙스를 풍기는 말이면 그 속내를 어림잡아 보려고 있는 안간힘을 쓰는게 우리 언론의 정치 보도다. 이렇게 지조없이 정치인의 말 한마디에 신문이 울고 웃다 보니 정치인들의 입장에서는 신문이 매우 유용한 도구가 되는 것이다.

정치인들은 고도의 언어게임을 구사하는 사람들로서 기자들의 속성을 잘 알고 있다. 그들은 기자들의 입맛에 딱 들어맞는 말들을 유효 적절하게 구사할 줄 아는 사람들이다. 정치인들은 정보를 밀고 당기면서 기자를 데리고 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기자들은 이러한 이전투구식의 정치판 싸움이 권력과 투쟁, 대립이라는 극적 요소들을 지니고 있어 많은 사람들의 흥미를 자아낼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열심히 보도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보도 태도가 갖는 정치적 의미는 매우 크다. 결과적으로 이번 선거의 본질적 의미는 변질되고 유권자들은 또 한판의 어지러운 싸움을 지켜 보면서 또다시 정치적 혐오를 되씹을 수 밖에 없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이번 선거의 의미가 변질된 데에는 언론의 책임도 적지 않다고 볼 수 있다. 언론이 아무런 원칙도 없이 정치인들의 꽁무니를 따라만 다니다 보니 결과적으로 그들에게 이용당하면서 전체적으로는 이번 선거의 성격마저 변질되고 말았다.

정치인들의 말 한마디에 가볍게 따라 다니지만 말고, 좀더 차분하고 냉철한 논조가 절실하다.
언론이 뚜렷한 원칙에 입각하여 비판적인 안목으로 정치에 접근한다면 정치인들도 지금처럼 언론을, 그리고 나아가서 국민을 손쉽게 자기 뜻대로 가지고 놀 수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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