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7 선거는 지역 감정의 돌풍이 나은 새로운 3김 시대의 개막’이라는 것이 모든 언론의 분석이다. 언론은 이 가운데에서도 김대중 아태재단 이사장의 전면적인 유세 참여가 돌풍의 핵심에 있는 것으로 설명하고 있다.

이같은 분석이 틀린 것은 아니겠지만 충분한 것도 아니다. 지역 감정이라는 엄연한 현실이 아직도 굳게 버티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부산, 전북 호남 등 일부 지역에서 보여준 유권자들의 투표 결과는 이같은 현상이 눈에 띄게 줄어들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부산의 경우 대선 당시 YS 지지율이 72%였으나 이번 시장 선거에서는 50% 수준에 그치고 있다. 전북의 경우도 DJ의 대선 득표율이 88%에 달했으나 이번 선거에서는 60%를 넘어선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전남의 경우도 91%의 유권자가 DJ를 압도적으로 지지했으나 이번 선거의 득표율은 70% 수준이었다.

광역단체장 선거와 대통령 선거를 단순 비교하는 것은 문제가 없지는 않겠지만 지역 문제가 점차 희석되는 조짐으로 보는데에는 큰 무리가 없을 것으로 판단된다.

물론 이같은 현상을 과도하게 일반화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지역 분할 구도라는 우리 정치의 고질적인 병폐를 극복하는 과정의 일단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는 부분으로 보인다.

문제는 이같은 적지만 의미있는 변화의 움직임에 우리 언론이 주목하지 않고 현상 고착적인 해설과 전망을 양산함으로써 많은 국민들에게 이를 어쩔 수 없는 현실로 받아들이라는 암묵적인 ‘지시’를 하고 있다는 점이다.

유권자들의 정치적 선택에 지역 감정이 크게 영향을 주지 않았다(70%)는 조사 결과나 선거 이후 향후의 주요 해결 과제를 지역 감정으로 꼽은 수가 30% 수준이라는 조사는 지역 감정의 문제가 우리 사회에서 실제보다 과장된 채 의제화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을 갖게 해주는 대목이다.

이와 관련 최장집 고대 교수는 “이번 선거 결과를 지역 분할 구도의 현실화로 볼 수 있는 측면은 있으나 보다 중요한 것은 지역 문제를 넘어서 현 정권에 대한 사회 각 계층의 불만이 표출된 점이다. 특히 현정부의 노동정책을 비롯한 보수적 성격에 대한 유권자들의 심판이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언론이 이번 결과를 지역문제로만 몰고가려는 것은 문제가 있다. 지역 문제의 경우도 이번 선거에서는 큰 변화가 있었다. 부산, 포항, 호남 등 일부 지역에서 보여준 유권자의 선택이 이를 말해준다”고 강조했다.

이번 선거에 불어온 바람이라면 지역 감정보다는 오히려 반민자당 기류의 거대한 흐름을 우선적으로 꼽아야 할 것으로 보인다.

김영삼 정부의 출범 직후 국민들이 보여준 압도적인 지지와 대비해 볼 때 이번 선거 결과를 지역 감정으로만 책임을 돌리는 것은 공정하지 못할 뿐 아니라 사실과도 부합되지 않는다고 볼 수 있다. 현정부가 보여준 국가 경영의 난맥상에 대한 유권자들의 심판이라는 측면이 우선 강조되지 않는 다양한 해석과 분석들은 주요한 핵심을 놓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오히려 문제는 이같은 유권자들의 문제 의식을 담아낼 수 있는 마땅한 정치적 대표체가 존재하지 않는 우리 현실에서 찾아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유권자들이 후보를 뽑는 데는 기존의 정치 구도에 쫓아간 측면이 있는 것은 분명하나 이들의 정당 지지율은 여전히 낮은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는 사실은 시사해주는 바가 적지 않다.

정당이 정당으로서의 기능을 수행하기보다는 특정 보스를 중심으로 형성되는 붕당적 기능을 행사하는 현실이 극복되지 않는 한 유권자들의 정치적 선택은 항상 왜곡돼 해석될 여지가 있는 것이다.
향후의 정국이 YS의 대통령 중심제하의 세대교체론과 DJ-JP연합의 지역 등권론을 바탕으로 한 내각제와의 한판 승부라는 식의 해석은 기존의 정치틀에서 한발도 벗어나지 않은 정치 평론일 수 밖에 없다. 그같은 접근이 현실정치를 반영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새로운 흐름을 예감케 하는 징후에 주목하고 이를 고무하는 사회적 노력, 특히 언론의 선도적 역할이 없다면 문제의 해결 고리는 찾아지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한승헌 변호사는 이와 관련 “그동안 언론이 은연중에 친여적 보도를 한 것은 사실이다. 언론이 국민들로 하여금 올바른 정치적 선택을 하도록 도와줘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같은 기능을 수행하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언론은 6·27 선거 결과를 놓고 일제히 ‘새로운 3김 시대 돌입’이라는 평가를 내렸다. 그러나 유권자들이 새로운 3김 시대를 원치 않고 있다는 사실은 그동안의 각종 조사나 사례를 통해 나타난 바 있다.
‘출구없는 유권자들의 고민’이 또다시 원치 않는 3김 시대를 낳고 말았다면 이는 ‘3김 시대의 실질적 종말의 시작’이라고 봐도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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