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성기업 노동자들이 최근 5명이나 숨졌다는 건 유성기업 노조가 밝힌 내용이었다. 내가 그 사실을 직접 확인하지는 않았지만, 유성기업 사태와 관련해 주요 당사자인 노조의 주장이었기에 인용했다. 이 과정에서 관련 주장을 한 주체가 노조라는 걸 밝혔고, 5명 모두 과로로 사망했다고 단정하지도 않았다. 이명박 대통령은 어땠나. 유성기업 노동자들의 평균 임금이 5700만원이라는 게 이미 밝혀졌는데도 KBS 주례연설에서 ‘연봉 7천만 원 받는 근로자들의 불법파업’이라고, 마치 자기가 확인한 것처럼 말했다. 방통심의위가 진짜 심의를 하려면 허위 사실을 마치 자신이 확인한 것처럼 방송에서 말한 이명박 대통령과 이를 그대로 내보낸 KBS를 문제삼아야 할 것이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위원장 박만)가 지난 7일 유성기업 파업 사태를 다룬 라디오 프로그램에 대해 권고 결정을 내리자 제정임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 교수는 “방통심의위가 공정성과 객관성 개념을 잘못 이해하고 있다”며 강한 유감을 표명했다. MBC <손에 잡히는 경제 홍기빈입니다> ‘경제뉴스 따라잡기’와 KBS <박경철의 경제포커스> ‘생생토크’ 코너에 고정 게스트로 출연중인 제 교수는 지난 5월 두 방송에서 유성기업 노조가 파업에 돌입한 이유, 노조의 요구, ‘연봉 7천만 원’의 진실 등을 짚었다. 방통심의위가 ‘권고’ 결정을 내린 사실상의 당사자인 셈이다.

8일 오전 서울 여의도 KBS 본관 앞에서 제 교수를 만났다. 9일 방송될 <박경철의 경제포커스> ‘생생토크’ 녹음을 막 마친 시간이었다. 방통심의위 결정에 따른 프로그램 하차 등 ‘불이익’은 아직 없다고 했다.

방통심의위는 이번 권고 결정의 배경으로 “두 프로그램이 (노사간)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사안에 대해 양쪽 주장을 균등하게 싣지 않고 노동자 쪽 의견만 여과 없이 실었다”고 밝혔다. “두 프로그램의 유성기업 파업 사태 관련 내용 가운데 일부는 사실에 부합하지 않았다”는 점도 지적됐다. 방통심의위 일부 위원들은 전체회의에 앞서 진행된 제작진 의견청취 과정에서 해당 프로그램 제작진에게 ‘왜 사측 입장을 균형있게 전하지 않고 노조 입장만 방송했느냐. 관련 내용은 모두 사실 확인을 했느냐’고 몰아세웠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한 제 교수의 입장은 분명했다. 방통심의위가 ‘공정성’의 잣대를 잘못 적용해 ‘언론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를 위협하는 결정을 내렸다는 것이다.

제 교수는 먼저 권혁부 방통심의위 부위원장이 7일 회의에서 ‘유성기업 노동자 5명이 과로로 숨졌다고 했는데 조사해 보니 1명은 자는 도중 심근경색으로, 1명은 술에 취해 무단횡단하다 교통사고로 죽었고, 1명은 집에서 자살, 1명은 족구하다 넘어져 머리를 부딪혀 죽었다고 한다. 이들 중 산재를 인정할 만한 사람은 한 명도 없었는데 마치 모두 과로로 죽은 것처럼 사실을 왜곡했다’고 주장한 부분부터 반박했다.

   
▲ 제정임 세명대 교수
 

“학생들에게 저널리즘에 대해 가르칠 때 자신이 직접 확인한 사실은 분명하게 ‘밝혀졌다’고 하고, 내가 확인하진 않았지만 주요 당사자가 주장한 내용이라면 ‘누가 ~라고 주장했다’라고 구분해서 전달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내가 출연하고 있는 프로그램이 보도 프로그램은 아니지만, 나 역시 그렇게 한다. 지난 5월 <손에 잡히는 경제>에서도 나는 ‘유성기업 노조는 야간근무에 잔업 등 노동 강도가 세지면서 지난 1년 반 동안 아산공장 350여 노조원 중 5명이 과로 등으로 숨졌다고 밝혔다’고 했다. 해당 주장을 한 주체를 밝혔고, ‘모두 과로로 사망했다’가 아니라 ‘과로 등으로 숨졌다’고 하는 등 확인된 사실과 아닌 것을 구분해서 전달했다.”

권 부위원장이 ‘유성기업이 재무제표를 마사지한다는 것도 알아보니, 그런 얘기가 있어 확인해 봤는데 찾아볼 수 없었다고 한다.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은 사실을 얘기해 투자자와 기업에 피해를 입히는 것은 안 된다’고 주장한 데 대해서도 제 교수는 “이미 복수의 언론이 보도했던 내용이고, 방송 시점까지 이를 반박하는 믿을 만한 자료나 기사는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원청인 현대차가 사상 최대의 흑자 행진을 기록하고 있는데 납품업체인 유성기업이 3년 연속 적자가 나는 이유를 짚으면서 첫 번째로 현대차의 남품단가 후려치기를 들었고 두 번째로 이른바 ‘재무제표 마사지’를 언급했다. 당시 방송에선 ‘유성이 조금이라도 흑자를 내면 현대차가 납품 단가를 더 깎기 때문에, 이른바 재무제표 마사지 즉 조작을 해서 서류상 적자를 만들었다는 관측도 증시에서 나오고 있다. 유성기업은 몇 개 자회사가 있는데, 이들 기업과 합친 연결재무제표로는 당기순이익이 지난해 100억 원 이상 났다. 자회사간 거래를 통해 본사의 영업이익을 서류상 적자로 만들었다는 의혹이 있는 것’이라고 했다. 당시 일부 경제 매체들이 유성기업의 ‘재무제표 마사지 의혹’을 보도했고, 내가 개별적으로 만난 금융 전문가들도 한국의 납품 구조를 볼 때 그럴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내 백그라운드와 언론 보도를 인용해 간접 인용으로 얘기한 것이다. 만약, 회사쪽이 재무제표 마사지나 노동자 사망 등에 대해 ‘근거가 없다’며 정정보도를 요청하든지 했다면 관련 내용을 함께 얘기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인용한 기사에 대해 반론이 있다거나 회사가 다른 자료를 내놨다는 기사를 본 적이 없다. 내가 논평을 위해 동원한 사실에 정확성과 객관성 모두 문제가 없었다고 본다.”

제 교수는 이어 “방송 출연자는 자신이 직접 확인한 것만 말할 수 있고, 그렇지 않은 것은 인용조차 해선 안된다는 주장은 저널리즘의 기본적인 원칙과 상식을 무시한 억지고 코미디다. 만약 그런 논리라면, 관 뚜껑을 열어 확인하기 전에 모든 언론은 오사마 빈 라덴이 죽었다는 뉴스를 전해서는 안 되는 것 아니냐”고 방통심의위 논리를 꼬집기도 했다.

‘양적 균형’을 맞추지 않았다는 방통심의위 주장에 대한 제 교수의 입장은 더욱 분명했다. ‘양적 균형’에 매몰돼 ‘질적 균형’을 갖추지 못하는 것은 진실을 호도하는 잘못된 저널리즘이라는 것이다.

“언론에 있어 공정성은 한 보도문 안에서 양쪽의 입장을 5대 5로 하라는 게 아니다. A는 찬성하고 B는 반대하니 양쪽을 똑같이 반씩 맞추라는 건 양적 균형인데, 이런 논리는 보도기사에도 요구되지 않는 개념이다. 저널리즘이 추구해야 할 공정성은 질적 균형이다. 언론인의 식견과 양심에 따라 진실에 가까운 내용이라고 판단하면 90대 10 정도로 보도할 수 있는 게 질적 균형이다. 진실 규명을 위한 질적 균형이 진정한 의미의 공정성인 것이다. 방통심의위는 사용자나 정부 입장이 너무 적게 나갔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 방송에 앞서 기성 언론들이 한 보도를 보라. 유성기업 노조가 왜 파업을 하고 있고 요구 사항이 뭔지에 대한 내용은 없고, 연봉 7천만원을 받는 귀족노조라든지, 유성기업 파업이 완성차 전체의 생산 차질로 이어질 우려가 있다는 등 사용자 편향적 보도 일색이다.

질적 균형에서 본다면 내가 노조 입장을 더 많이 전한 건 당연하다. 진실 규명을 위해 나는 사용자나 정부 논리가 아니라 지금까지의 보도에서 드러나지 않은 것들, 노조의 요구가 뭐고 보도된 연봉 수준은 맞는지, 근무 환경은 어떤지, 고임금은 파업하면 안 되는지 등을 얘기한 것이다. 논평 프로그램에서 내가 취할 수 있는 가장 양심적인 질적 균형이었다.”

제 교수의 이러한 주장에 언론학자들은 대체로 동의한다. 지난달 29일 인터넷선거보도심의위원회 주최로 열린 토론회에서 김영욱 한국언론진흥재단 연구위원은 “개별 기사와 프로그램에서 균형성을 요구하는 것은 지나친 언론 자유의 제약”이라며 독일의 사례를 들었다.

독일 공영방송 ARD의 회원사인 WDR에 대한 법적 근거인 ‘WDR법’은 제5조에 프로그램이 지켜야 할 기본적인 원칙을 명시했다. 눈에 띄는 건 공정성과 관련한 대목이다. 당시 김 위원의 발제문에 수록된 내용을 보자.

“WDR을 다음을 지킨다. 1) 전체 프로그램에서 의견의 다양성과 세계관, 정치적, 학문적, 예술적 방향의 다양성이 최대한 광범위하고 빠짐없이 반영된다. 2) 방송 지역의 중요한 사회적 세력들의 발언이 전체 프로그램에서 반영되어야 한다. 3) 전체 프로그램이 일방적으로 한 정당, 한 집단, 한 이익집단, 한 종교 혹은 한 세계관에 기여해서는 안 된다. WDR은 보도에서 사회적으로 중요한 논쟁이 되는 주제에 대해 적절한 시간을 할애해야 한다. 평가하고 분석하는 개별 방송은 저널리즘적인 공정성(Fairness)에 상응해야 한다. 보도의 목적은 광범위한 정보 제공이다.”

김 위원은 “(이 조항은)‘전체’ 프로그램에서 균형성을 규정하고 있다”며 “이것은 개별 프로그램에서는 일정한 불균형성(혹은 당파성)을 허용한다고 해석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독일의 또다른 공영방송인 ZDF 역시 마찬가지다. ZDF의 프로그램 가이드라인 III-5는“방송사는 불편부당해야할 의무가 있다. 그러나 전체 프로그램의 균형성이 개별 방송 프로그램의 균형성을 요구하는 것은 아니다. 논쟁 중인 문제에서 특정한 입장만 혹은 대체로 특정한 입장만 강조하는 경우에는 그에 상응하는 균형이 필요하다. 만약 개별 방송 프로그램에서 특정한 의견이 대변될 경우, 가능하면 그를 보완하는 다른 프로그램에 대해 안내해 줄 필요가 있다”고 돼 있다.

제 교수는 ‘양적 균형’이 얼마나 진실을 왜곡할 수 있는지 예를 들어 설명했다.

"언론학자들은 언론의 공정성을 얘기할 때 지구 온난화를 예로 많이 든다. 대부분의 과학자들이 지구 온난화의 위험을 경고하는 가운데 ‘유럽이 재생 에너지를 팔기 위한 사기’라고 하는 소수 과학자들도 있다. 하지만 그들 중 일부는 지구 온난화 대책으로 규제가 강화될 경우 불이익을 보는 정유회사 등 기업으로부터 후원을 받아 연구하는 사람도 있다. 이 경우 지구 온난화를 걱정하는 주장과 사기라는 주장을 5대 5로 보도해야 하나. 그렇게 한다면 언론은 ‘지구 온난화가 여전히 논쟁중인 사안이구나. 아직 에너지 절약 등 온난화에 대비하는 정책을 만들 필요는 없겠다’고 대중을 오도할 수 있다. ‘양적 균형’에 갇혔던 미국이 대표적이다. 기계적 균형을 강조했던 미국은 지금 지구 온난화에 대한 대비가 가장 늦은 곳이다. 일부 다른 의견이 있다고 양적으로 5대 5를 맞추라는 건 진실 왜곡일 뿐이다.”

그는 또 “백 번 양보해 기계적 균형이 중요하다고 치자. 방통심의위는 그 잣대라도 공정하게 들이댔는가”라고 반문했다. “그 동안 노조 입장을 빼고 사용자와 정부 입장만 전했던 보도에 대해 방통심의위는 왜 한 건도 제재하지 않았느냐”는 것이다. 제 교수는 “정부가 얘기하는 산업 피해, 유성기업을 귀족노조인 것처럼 비치게 한 기사 등 노조의 입장을 무시한 보도들에 대해선 왜 아무 얘기도 하지 않나. 거기엔 10%가 아니라 제로에 가깝게 노조 입장이 배제됐다”라며 “심의위는 ‘모든 프로그램을 다 심의할 수 없어 민원이 제기된 것만 심의한다’고 하는데, 사용자 편향적 보도에 대해 민원이 제기됐을 때도 과연 지금과 같은 잣대로 제재를 가할 것인가”라고 물었다.

제 교수는 방송법의 ‘공정성과 공익성’ 조항에도 주목했다. 법 제6조5항은 “방송은 상대적으로 소수이거나 이익추구의 실현에 불리한 집단이나 계층의 이익을 충실하게 반영하도록 노력하여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노사 관계에서 노조는 당연히 약자일 수밖에 없다. 기득권층인 정부나 자본(기업)은 잘 훈련된 홍보 조직이 있고, 동원할 수 있는 자원(광고, 인맥 등)이 있기 때문에 그들이 원하는 내용을 언제든, 여러 방법으로, 충분히 개진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노동자, 빈곤층 등 소수자의 입장이나 의견 다양하게 대변될 수 있도록 주의를 기울이도록 한 것이다. 방통심의위가 방송법을 부정하지 않는다면, 심의위는 방송이 기업과 사용자 입장을 늘 얘기하면서 왜 노동자 입장에 대한 상세한 보도는 없는지에 대해 이의제기를 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제 교수는 “‘공정성’은 결과적으로 어느 한 편에 유리하거나 불리한 보도나 논평이 됐다고 훼손되는 게 아니라, 그러한 결론을 이끌어내는 과정에서 관련 정보를 정직하고 투명하게 활용했는가, 합리적인 추론을 했는가 하는 ‘진실성의 원칙’ ‘투명성의 원칙’에 좌우된다는 것이 언론윤리학계의 지배적 의견”이라며 “나는 이 원칙에 충실했다”고 강조했다.

또, “방통심의위는 한국 방송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좌표를 설정해야 하는 곳”이라며 “이념이나 계층적 이해관계에 의해 공정성이 오락가락해서는 언론과 표현의 자유가 결정적으로 침해받을 수 밖에 없다는 점을 기억하고 공정성에 대한 개념을 좀 더 성찰적으로 연구했으면 한다”고 일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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