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산업문명에서 지식기반 문명으로 넘어가는 문명사적 대전환기다. 그리고 이 문명사적 대전환을 이끌고 있는 것은 컴퓨터와 뉴미디어의 눈부신 발전이다. 그에 따라 문화의 존재방식과 작동원리에도 혁명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문화의 멀티미디어화나 컴퓨터를 활용한 예술 생산, 컴퓨터통신을 통한 온라인상에서의 문화유통 등 시공간의 압축에 따른 사이버스페이스의 등장은 인간의 삶과 문화를 근본적으로 재구성하고 있다.

이때 무엇보다 기술의 운용주체, 문화의 형성주체인 인간의 창의성과 자발성, 그리고 도덕성이 전제돼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하이테크가 가능하게 하는 문화 생산과 유통의 새 양식들은 문화의 엔트로피를 증대시켜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물론 컴퓨터와 멀티미디어를 통해 기존의 문화예술 양식이 새롭게 확장되고발전할 수 있으며, 또한 전혀 새로운 양식이 개발될 수도 있다. 기존 오프라인 상에서의 제한된 유통구조로 인해 고립된 성에서 고고한 체하던 문화가 온라인이라는 새 환경을 통해 더욱 민주화되는 것도 분명 바람직한 일이다.

그러나 하이테크의 발전이 인간의 이기적 효율성만을 자극하고 사이버스페이스에 중독된 인간형을 양산할 위험성이나 정치와 문화, 또 생산적 문화와 소비적 놀이를 혼돈케 하여 공동체의 발전에 역행할 가능성에 대비해야 한다.

따라서 하이테크 시대의 새로운 문화운동이 절실히 요구된다. 이는 기존 문화운동의 연장에서 뉴미디어나 컴퓨터를 단순히 새 매체로 활용한다는 수준으로는 부족하다.

특히 탈근대 사회로의 변화과정 속에서 문화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는 지금 ‘예술’ 중심의 문화개념과 실천으로는 성과를 거둘 수 없다.

문화란 개인과 집단에 정체성을 부여하는 삶의 양식을 형성하고 정서와 가치를 창출하며 정보생산과 소통의 기본을 이루면서도 미적 표현과 교양, 여가의 프로그램 등 다양한 영역에 걸쳐 있다는 확대된 개념하에서 문명의 전환기에 걸맞는 이념적 지향성을 가진 실천을 모색해야 한다.

이를 위해 실천장르의 확대가 시급하다. 예컨대 디자인, 인테리어, 이벤트, 광고, 패션, 음향, 조명, 코디네이션, 그래픽, 일러스트, 게임, 레저, 관광 등 다양한 영역으로의 확대가 시급하다.

또한 공식문화영역(제도권), 매스미디어 영역, 제도교육의 영역에 진출해 연대와 경쟁을 통해 입지를 넓히는 한편, 새로운 매체와 가상현실 영역에도 진출하여 문화생산과 소통의 새로운 방식을 개발하고 그 속에서 새로운 문화양식을 창출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문화운동에도 ‘생산성’ 개념이 도입돼야 한다. 이를 위해선 조직형태가 기존의 수직·계열적 조직에서 수평·사업적 네트워크로 다변화돼야 하며, 문화정책과 문화산업에 대한 개입을 강화할 수 있는 연구역량과의 연대, 적시에 필요한 사업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기 위한 기획력과 업무추진력, 투자자본의 확보, 생산과 보급의 과정에 경영과 마케팅, 소비자 마인드의 도입 등이 필요하다.

문화운동의 중심이 생산(창작) 중심에서 기획, 정책, 경영, 마케팅, 교육 등으로 옮겨가야 한다는 뜻이다.

그밖에도 새로운 문화유통 구조를 위한 인터페이스의 개발과 생산물의 디지털화, 기존의 성과를 축적하고 소통시키기 위한 디베이스화, 정보 발신주파수와 코드의 표준화, 기존 하드웨어 운영체제와 소프트웨어의 업그레이드를 통한 편의성·세련성·확장성·호환성 부여라는 전혀 다른 차원의 과제에 대한 해결능력을 갖춰야 한다.

우선은 이른바 ‘정보화 마인드’가 형성돼야 하며 다음으로는 정보와 자료의 독점이 아닌 공유를 통한 상호 이익 증대라는 시각을 갖고 판권과 저작권 문제 등을 해결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필요한 경우에는 정보화시대에도 여전히 소통의 기본이 될 언어와 문자에 대한 기초교육, 정보접근과 해독에 관한 교육활동이 문화운동의 새로운 분야로 등장하게 될 수도 있다.

새로운 문화운동의 이념은 전생명적 공공선을 실현할 수 있는 새로운 삶의 양식과 사회구조의 형성을 지향하며, 그를 위한 커다란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진행하는 속에서 위의 과제들이 배치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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