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자제선거가 끝난 후 정계개편의 소리가 높다. 선거직후 “지자제 선거는 지자제 선거일 뿐‘선거패배에 대해’ 당정이 책임질 일이 없다. 따라서 선거직후 국정운영기조에 전혀 변화가 없을 것이다”라고 언명했던 민자당이 삼풍사태의 와중에도 불구하고 사무총장과 정무장관의 갑작스런 경질에 이어 민자당과 정부 및 청와대비서진까지 다 바꿀 것처럼 요란하다.

민주당도 “동교동 신당설”까지를 포함하는 온갖 종류의 시나리오를 다 내놓고 있으며, 자민련도 세불리기에 여념이 없다.

민자당의 경우 말로는 민심수습이라든가 세대교체를 내세우기도 하나 결국 따지고 보면 민주계와 민정계의 자리바꿈이거나 5, 6공 세력 끌어안기일 뿐이다. 민자당 당직개편과 정부개각만큼 “태산명동에 서일필”이란 말을 실감케 하는 일이 달리 없을 만큼 그 사람이 그 사람이다.

지금까지 당직과 정부요직을 몇번씩이나 맡는 과정에서 이미 그 무능과 부적격이 판명된 사람들이라 그들을 아무리 재구성해보았자 국민에게 신선한 희망을 줄 수 없으리라는 것은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일이다.

민주당의 경우에도 주류와 비주류 내지 동교동계와 이기택계의 싸움이든 김대중씨의 정계복귀와 신당창당이든 속들여다 보이는 일들이라 식상하기는 마찬가지이고, 자민련의 경우도 김영삼정부의 개혁에서 소외되었거나 민주계와 사이가 좋지 않은 5,6공 세력 구여권인사들을 끌어모으는 일에 여념이 없을 뿐이다.

그런데 근본적으로 현재 진행되고 있는 정계개편은 이념과 정책은 고사하고 원칙이나 인물됨과는 무관하게 오직 권력다툼과 정파적 이익을 위한 이합집산과 이전투구일 뿐이다. 여와 야의 구분이 없어진지는 이미 오래이고 수구세력과 개혁세력의 구분조차도 어렵게 됐다.

한마디로 아수라장이다. 정치권이 이전과 달리 아시아태평양시대의 도래로 민족이 도약할 수 있는 상황을 내놓아야 할 때에 시대착오적인 ‘나눠먹기’나 하고 있으니 나라사정이 엉망이고 국민의 정치혐오가 심화될 뿐이다.

그러면 이렇게 된 것은 누구의 책임이고 또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 것인가? 크게 보면 정치인 모두의 책임이고 또 국민 모두의 책임이기도 하다.

특히 정계를 마땅히 은퇴해야 할 3김씨의 정치주도를 비난하기도 하나 “새 것이 나타나지 않는 한 헌 것이 물러나지 않는다”는 사회원리에 비추어 볼 때 3김씨를 비난하기보다 필자처럼 새로운 정치세력을 만들어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도 그것을 이루어내지 못하는 사람들의 무능을 더 크게 탓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한국의 정치가 이런 상태에 놓여 있는데 대해 언론의 책임도 크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언론공화국’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무소불위의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언론이 3김씨를 중심으로 한 정치기득권세력의 움직임만을 집중적으로 보도하고 새로운 정치세력의 형성을 위한 움직임은 거의 외면하다시피 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게 하는 이유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언론이란 것이 사실보도의 기능만을 하는 것이 아니고 비판과 계도의 기능과 더불어 여론수렴과 여론형성의 기능까지를 해야 하는 것일진데 오늘의 한국언론은 지나치게 현실 안주적이고 현실영합적이라는 비난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오죽하면 개혁의 최대 방해세력이 언론이고 개혁이 가장 안 된 곳이 언론이라는 말이 나오겠는가?

특히 정치의 영역에서 언론이 갖는 영향력은 가히 절대적이다. 불리한 기사도 나지 않는 것보다는 낫다고 할 정도로 언론의 영향력이 큰 곳이 정치이다.

민주국가에서 언론은 ‘제4부’의 권력기관적 성격을 지니고 있고 동시에 헌법기관이라 할 수 있다.

그 책무가 큼은 물론이다. 언론인 또한 통상의 직업인이 아니다. 언론인은 사인이 아니라 공인일 수 밖에 없다. 더우기 언론인은 최고의 엘리트이자 지성인이다. 어쩌면 언론이 정부보다도 더 큰 힘을 가졌다고 볼 만하다.

이런 이유로 새로운 정치세력의 형성을 통한 의미있는 정계개편이 이루어지게 하는데 언론의 각별한 역할이 있을 것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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