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이 해야 할 일이 있다. 태풍과 장마로인한 피해, 특히 4대강 사업지에 대한 피해 현장 상황을 생생하게 전할 필요가 있다. 천문학적 예산이 들어가는 이명박 정부 최대 국책사업의 ‘허와 실’이 드러나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KBS 수신료’ 비공개회의 도청 의혹 사건을 둘러싼 논란은 다시 가열되고 있다. 언론 보도를 종합해보면 사건의 실체도 조금씩 드러나고 있다. 그리 어렵지도 않은 수사인데, 경찰이 ‘엉뚱한 마음’을 먹지 않고 제대로만 수사한다면 실체는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검찰의 집단 반발이 언론의 뭇매를 맞았다. 집단 사표를 내겠다면 다 수리해 버리라는 한나라당 인사의 발언이 조선일보 기사제목으로 뽑혔다. 검찰을 조폭에 비유한 언론도 있다. 조폭 수사를 맡겼더니 조폭을 닮아가는 검찰에 여론의 시선은 싸늘해지고 있다.

다음은 1일자 전국단위 아침신문 1면 기사다.

경향신문 <한진중 필리핀 조선소도 노동조건 열악>
국민일보 <버스.지하철 요금 줄줄이 오른다>
동아일보 <김준규 "물러나겠다"…MB "임기 채워라">
서울신문 <정치권, 검을 치다>
세계일보 <한자 알아야 한글 살린다>
조선일보 <삼성, 8월초 '서늘한 인사태풍' 분다>
중앙일보 <'조용환 표결' 길 잃은 한나라>
한겨레 <"검찰권력 분산이 인권 측면서 옳다">
한국일보 <"정부 각본 들러리 싫다">

국회, 검찰의 오만을 단칼에 제압

   
서울신문 7월 1일자 1면.
 
검찰은 자신감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검찰인데, 우리가 마음만 먹으면 나는 새도 떨어뜨릴 수 있는데 감히 국회의원 정도가…”라는 생각을 가졌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국회는 지난달 30일 본회의에서 검찰의 오만과 독선을 단칼에 제압했다.

한나라당과 민주당 모두 검경수사권 조정안에 대한 국회 표결에서 압도적 찬성표를 던졌다. 국회 본회의장 전광판에 나온 표결 결과는 찬성 175명, 반대 10명이다. 일부 언론은 찬성 174명, 반대 10명으로 보도했다.

검찰 수사권 조정에 대한 내용은 ‘법무부령’이 아닌 ‘대통령령’으로 결정하게 됐다. 일반인 입장에서는 이 문제가 얼마나 대단하기에 전직 대통령 서거 사건이 터졌을 때도 하지 않던 검찰의 ‘줄사표’가 이어졌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검찰은 경찰에 대한 수사지휘권이 흔들릴 수 있다고 우려한다. 그러나 ‘법무부령’은 되고 ‘대통령령’은 안 된다는 주장에 얼마나 많은 국민이 검찰의 손을 들어주겠는가. 언론의 대체적인 시각도 검찰의 선택에 싸늘한 반응을 보였다.

조선일보 "화난 여야 '검찰 줄사표, 모두 수리해버려라'"

   
조선일보 7월 1일자 1면.
 
서울신문은 1일자 <검엔 제 밥그릇만 보이고 국민은 안 보이나>라는 사설에서 “국민은 안중에도 없고 조직 이기주의와 기득권, 즉 밥그릇을 지키려는 '조폭과 같은' 몸부림으로 비쳐지기 때문”이라고 비판했다.

조선일보는 1면 <화난 여야 "검찰 줄사표, 모두 수리해버려라">라는 기사에서 ‘(한나라당) 원내 핵심 의원은 '회의에서 검찰의 오만이 극에 달했다’ ‘검찰 수뇌부가 줄사표를 냈다니 이참에 모두 수리해 버리라는 말이 쏟아졌다'고 전했다”고 보도했다.

조선일보는 5면 <청와대 "사표 난리치는 검·경 간부들, 정치판에 얼굴 내밀 것">이라는 기사에서 “청와대와 여당 등 여권 전체가 검.경 수사권 조정과 관련된 검찰의 태도에 불쾌한 감정을 숨기지 않고 있다”면서 “청와대에선 일부 검사장들이 정치권에 진출하거나, 어차피 승진이 안 될 것으로 보고 변호사 개업 이후를 생각해 후배들에게 점수 따기를 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여권 핵심부에서 검찰의 행동을 충정이나 진정성이 담긴 선택으로 보는 게 아니라 일신영달을 꿈꾸기 위한 의도된 행동으로 본다는 시각이다. 검찰이 집단행동을 두고 장고에 들어갔다는 분석도 있다. 김준규 검찰총장의 사퇴로 일단락 지을 것이란 해석도 있다.

김준규 사퇴결심? 어차피 임기 한 달 남았는데

   
경향신문 7월 1일자 사설.
 
경향신문은 3면 <'대통령령' 그대로 형소법 통과…검찰 일단 '침묵'>이라는 기사에서 “전날 대검 간부들이 줄사표를 내는 등 강하게 반발했던 검찰은 이날 국회 표결 결과를 보고 깊은 침묵에 빠져들었다. 자신들이 반대한 형사소송법 개정안에 의원들이 압도적으로 찬성표를 던졌기 때문”이라며 “'검란'으로 비화할 조짐을 보이던 검찰의 집단반발은 오는 4일 김준규 검찰총장이 사퇴 의사를 표명하는 것으로 일단락될 것으로 관측된다”고 보도했다.  

동아일보는 1면 <김준규 "물러나겠다"…MB "임기 채워라">라는 기사에서 “김준규 총장도 이날 오후 입장자료를 통해 '합의가 깨지거나 약속이 안 지켜지면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밝혀 사퇴 결심을 내비쳤다”고 보도했다.

김준규 검찰총장이 조직의 대표로서 책임을 지고 물러나는 모양새를 취하려는 것일까. 이를 바라보는 시각도 차이가 있다. 엄청난 결단을 하는 것처럼 평가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시각도 있다. 

경향신문은 이날 사설에서 “임기가 한 달 밖에 남지 않은 김준규 검찰총장이 내는 사표에 얼마나 절박함과 진정성이 깃들어 있다고 보는가”라면서 “어쩌면 이렇게 국민을 무시하는 행동을 서슴지 않는지 검찰 지휘부의 양식이 의심스럽다”고 지적했다.

언론, 검찰 행동은 싸늘한 시선…국민일보 세계일보는 검찰 변론

   
국민일보 7월 1일자 사설.
 
임기 한 달 밖에 남지 않은 검찰총장이 “나 사표 낼 수도 있다”고 여론을 압박하는 것은 참 민망한 장면이다. 검찰의 행동에 대한 언론 평가는 대체로 부정적이다. 한겨레는 <밥그릇 챙기겠다고 '사표시위' 벌이는 검찰>이라는 사설에서 “대검 간부들이 사표를 던지고 대검 차장이 이를 잡아 두고 있는 것은 사실상 조직적인 '사표시위'”라며 “검찰의 이런 움직임은 한마디로 조직이기주의의 극치요, 국민은 안중에도 없는 오만하기 짝이 없는 행태”라고 비판했다.

한국일보는 이날 사설에서 “검사장급 고위검사들의 집단사표는 부정적 여론을 더욱 악화시킬 뿐이다. 스폰서검사 사건 등 정말 수치스러워야 할 일에 언제 검사들이 그처럼 단호하게 처신한 적이 있던가”라고 반문했다.

검찰도 외롭지만은 않았다. 검찰 쪽에 서서 편을 들어준 언론도 없지 않았다. 세계일보는 사설에서 “검·경의 자책사유가 여간 크지 않다. 하지만 가장 책임이 큰 쪽은 입법부다. 여야는 앞으로 전개될 '수사권 화재'의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국민일보도 사설을 통해 “검찰의 집단행동은 바람직하지 않다. 하지만 빌미를 제공한 국회에 더 큰 책임이 있다”면서 “검찰을 무력화하거나 정치권력의 휘하에 두려는 고도의 노림수가 있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들 정도”라고 지적했다.

조중동 "검찰이 반성해야"

   
동아일보 7월 1일자 사설.
 
하지만 국민일보와 세계일보의 시각은 언론에서도 소수다. 이번 사건은 진보와 보수의 대결도 여야의 대결도 아니다. 주요 보수언론들이 검찰의 자성을 촉구한 것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조선일보는 <검찰, 어떻게 국민 편에 설 수 있나를 과제로 삼으라>라는 사설에서 “검찰은 국민이 수사권 조정을 둘러싼 검찰과 경찰의 지루한 줄다리기를 권력기관 사이의 권한 다툼으로 받아들여 왔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 다툼이란 비리와 부패를 척결해 살기 좋은 사회를 만들고 억울한 사람을 도와주기 위한 다툼이 아니라 누가 더 국민 위에 군림해 국민을 옥죄는 힘을 갖느냐 하는 다툼”이라고 지적했다.

동아일보는 사설에서 “최고의 엘리트 집단이라는 검찰마저 경찰에 수사개시권을 부여하는 문제를 놓고 오로지 조직 이익만 관철하기 위해 행동한다면 스스로 권위를 떨어뜨리고 국민의 신뢰로부터도 멀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중앙일보는 사설을 통해 “그동안의 수사권 조정 논의는 검찰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국민에게 신뢰를 주지 못했다는 점을 뼈아프게 반성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KBS 해명 나왔지만 더욱 커진 의문

   
경향신문 7월 1일자 1면.
 
KBS가 도청 의혹에 대해 해명했다. “민주당이 주장하는 식의 도청을 한 적이 없다”는 해명이었다. 민주당이 주장하는 식의 도청이 과연 무엇인지가 궁금한 대목이다. 그런 식이 아니라면 다른 식의 어떤 행동은 했다는 것인지도 궁금하다. 해명이 나왔지만 의문은 더욱 커지고 있다.

경향신문은 1면 라는 기사에서 “지난 23일 민주당의 'KBS 수신료' 대책회의를 도청한 의혹을 받고 있는 KBS에 대해 진실규명 요구와 책임론이 분출하고 있다. KBS는 30일 '민주당이 주장하는 식의 도청을 한 적이 없다'는 입장을 내놨다”고 보도했다.

KBS 쪽에서 해명한 것은 또 있다. ‘벽치기’에 대한 언급이 나왔다. ‘벽치기’란 기자들이 회의 내용을 엿듣고자 문에 귀를 대는 행동을 의미한다. 한겨레는 6면에  라는 기사를 내보냈다.

한겨레는 “한국방송이 도청 의혹을 부인한 직후 이강덕 한국방송 정치외교부장은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회사에 중요한 사안이어서 귀를 쫑긋 세우고 취재한 것은 당연하다.(취재 과정에서) 이런저런 방법을 다 동원했다’고 밝혔다. 그는 ‘(최고위원회의가 없었던) 당대표실을 가보면 알겠지만 굉장히 넓다. 당시 우리 기자들은 귀대기를 할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고 보도했다.

KBS 기자들은 소머즈의 귀를 지녔나

   
한겨레 7월 1일자 6면.
 
분명히 해둘 점이 있다. KBS가 주장하는 벽치기가 이번 논란의 해명이 될 수 있는 지다. 두 가지 측면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비공개 회의가 진행되는 동안 벽치기가 실제로 있었는 지와 벽치기를 하면 실제 회의내용을 파악할 수 있는지 여부이다.

미디어오늘이 민주당 대변인실 관계자에게 확인한 결과 “KBS 기자들이 벽치기를 하려고 하자 당직자들이 못하게 말렸다”면서 “김인규 KBS 사장은 기자들이 실제로 벽치기를 했는지도 파악하지 않은 모양”이라고 주장했다.

6월 23일 민주당 KBS 수신료 전략회의는 비공개로 이뤄졌다. 민주당 대표실에는 당직자들이 상주하고 있다. 당직자 눈을 피해서 회의 기간 내내 벽에 귀를 대고 있기는 어렵다.

또 벽치기를 하면 회의내용을 알 수 있을까도 의문이다. 회의장에서 큰 소리로 얘기한다면 벽치기를 통해 대화 내용 일부를 파악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민주당 대표실의 회의 내용은 벽치기가 아니라 회의 현장에 직접 들어가 취재를 하더라도 발언의 대부분을 옮기는 게 쉽지 않다. 게다가 이날 회의는 비공개로 진행됐다.

중앙일보 "KBS 기자가 '무선마이크' 회의 마친 후 찾아가"

   
중앙일보 7월 1일자 5면.
 
KBS 기자들이 ‘600만불의 사나이’에 버금가는 소머즈의 귀를 가지지 않았다면 벽치기로 회의내용을, 그것도 토씨하나 틀리지 않고 숨소리까지 옮겨 적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이와 관련 중앙일보는 5면 <민주당 '당 대표실 도청 의혹' 한선교 고발>이라는 기사에서 “민주당 핵심 인사는 '비공개 회의 초반에 KBS 기자가 무선 마이크를 회의실에 두고 회의를 마친 후 찾아갔다는 제보를 받았다'며 '무선 마이크는 동영상 카메라가 있어야 녹음이 가능해 1명이 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했다”고 보도했다.

“KBS 기자가 무선 마이크를 회의실에 두고 회의를 마친 후 찾아갔다”는 언급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경찰도 KBS도 이 주장의 진위를 파악해야 한다. 그 주장이 사실이라면 의문의 실타래는 의외로 쉽게 풀릴 수 있다.

결정적인 제보일 수도 있는 내용을 대충 뭉개려 한다면 경찰의 수사의지에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KBS도 마찬가지다. 국민이 궁금해 하는 것은 ‘도청’ 의혹의 실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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