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최고위원 회의실(당대표실) 도청 의혹사건에 KBS 기자가 연루됐다는 잇단 의혹에 대해 KBS가 당시 회의내용 가운데 자체적으로 자세히 정리한 발언록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 발언록에는 한선교 한나라당 의원이 문방위 전체회의에서 공개한 최고위원의 발언도 포함돼있다고 밝혀 주목된다.

다만 KBS는 자신들이 정리한 발언록과 한 의원이 갖고 있는 발언과 일치하는지는 알 수 없으며, 자신들이 발언록을 마이크를 대는 등의 방법으로 작성했는지에 대해서도 사실이라고 확정해 말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강덕 KBS 정치부장은 30일 아침 미디어오늘과 전화통화에서 '민주당 당직자들이 사건 당일(23일) 당대표실에 KBS 기자가 오간 것을 목격했다고 진술했다'는 조선일보 등의 보도에 대해 “우리는 기본적으로 취재하러 오간 것이며, 수신료 문제 당사자이기도 했기 때문”이라며 “상황이 돌아가는 것을 귀를 쫑긋 세우고 파악해야 했다. 그날 회의도 파악해놓은 게 있다”고 말했다.

   
지난 28일 오후 KBS 수신료 인상안 날치기에 반대하며 국회 문방위 회의장을 점거한 민주당 의원들에 질문공세를 펴고 있는 KBS 취재진.
이치열 기자 truth710@
 
이 부장은 "KBS가 수신료 인상안 문제에 대해 각당 의원 쪽과 협의하고 논의하는 것은 상식적인 일"이라면서도 “우리가 취재하는 과정에서 얻은 것(발언록)과 지금 민주당에서 얘기하는 게(도청을 통한 녹취록) 같은 것인지 다른 것인지는 따져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 부장은 KBS 취재진이 팍악한 발언록에 대해 “(우리로서는)중요한 내용이고 알아야 하기 때문에 꽤 상세하게 파악하고 기록한 것도 있고, 대충 정리해놓은 것도 있다”며 “우리가 자체적으로 파악한 것(발언록)과 한 의원이 입수했다는 녹취록과의 비교는 (도청의혹으로) 정치적 논란이 벌어졌기 때문에 자세히 알려하지 않았다. 또한 한 의원 본인도 적극적으로 말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이 부장은 기자들이 자세한 발언내용을 어떻게 파악했는지에 대해 “당 대표실이 평소에는 비어 있고, (비교적) 오픈된 공간이기 때문에 비공개회의라고 해도…현장에서 얼마든지 적극적으로 취재하는 방법이 있지 않느냐. 귀대는 것도 있고. 기자로서 할 수 있는 온갖 적극적 방법 동원해 취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KBS 기자가 무선 마이크를 놓고 나온뒤 이를 회수한 것 아니냐는 의혹에 대해서는 “회의야 (앞머리만) 공개회의였고, (회의)하다가 나가달라고 한 것”이라면서도 “마이크를 통해서 했다는 것이 내가 볼 때 사실이라고 확정해줄 수는 없다. 꼭 그렇게 하지 않고도 (발언 내용을) 파악할 수도 있다. 문도 많고 열린 문틈도 많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한선교 의원이 공개한 내용도 KBS가 자체적으로 파악한 발언록에 있느냐는 질문에 이 부장은 “한선교 의원이 (국회에서) 공개한 내용은, 그런 정도는 우리가 파악한 것에도 들어 있다”고 답했다.

KBS가 그렇게 적극적으로 정보수집에 나선 배경에 대해 이 부장은 “우리야 언론기관이면서도 (수신료 인상안 문제의) 당사자로서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이는 행위야 당연히 있는 것인데, 우리의 노력이 정치권에서 부정적으로 얘기하는 도청과는 무관하다”며 “수신료 문제를 해결해야 하기 때문에 정치권에서 돌아가는 상황을 적극 파악하는 과정에서 한나라당과 민주당, KBS는 긴밀히 협의해왔다. 민주당이 제기한 선결조건에 대한 10쪽 분량의 답변도 전달해줬고, 토론도 많이 했다”고 말했다.

앞서 조선일보는 30일자 기사에서 "민주당 당직자들이 최근 발생한 민주당 당 대표실 ‘도청사건’과 관련한 경찰 조사에서 '비공개 회의장 주변에서 거동이 수상한 사람을 목격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29일 알려졌다"고 보도했다. 조선일보는 민주당의 한 관계자 말을 빌어 “KBS 기자가 비공개 회의 때 회의실인 당대표실 주변을 서성이다 회의가 끝나자 당대표실에 들어갔다 나오는 것을 목격한 사람이 여럿 있다”며 “이런 내용을 경찰에서 진술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한겨레도 이날 3면 머리기사에서 복수의 민주당 핵심 당직자들이 익명을 전제로 “KBS 기자가 도청을 했으며 이를 한나라당에 전달했다는 사실이 ‘제3자’를 통해 민주당에 전달됐다”고 말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동아일보와 경향신문도 민주당 핵심관계자 또는 핵심당직자의 입을 빌어 민주당이 제보를 받아 경찰에 통보한 내용도 ‘KBS 문건이 한선교 의원에게 흘러갔다’는 것이라고 보도했다.

한편, 김인규 KBS 사장은 지난 27일 밤 야당 추천 KBS 이사들과 만나 "도청 의혹과 관련해 KBS 취재내용이 한나라당 쪽으로 흘러들어간 게 아닌지 걱정된다"는 취지로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영호 KBS 이사는 “그날(27일) 밤 야당 이사들끼리 오랜만에 모여 술자리를 가졌는데 10시쯤 어떻게 알았는지 김인규 사장이 자리에 합석했다”며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 김 사장이 (도청 의혹과 관련해) ‘한선교 의원이 (제시)한 것이 혹시 우리가 취재한 게 그쪽으로 흘러가 전달된 게 아닌가 걱정된다’고 한마디한 게 전부”라고 설명했다.

이창현 KBS 이사도 “김 사장이 KBS가 도청한 것이 아니다’라고 강조하는 취지의 언급을 했다”며 “김 사장과 이사들의 사적인 발언이 공개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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