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파 백선엽씨를 6.25 전쟁영웅으로 둔갑시켜 방송한 KBS를 규탄하는 사회 원로들에 대해 KBS가 경찰력까지 동원해 강압적인 모습을 보이며 막아 공분을 사고 있다.

사월혁명회 등 83개 독립운동 및 현대사 관련단체와 언론단체로 구성된 ‘친일·독재찬양 방송 저지 비상대책위원회’는 비가 쏟아지는 악천후 속에서도 29일 오전 11시 서울 여의도 KBS 본관앞에서 KBS 사죄와 독재자 이승만 방송 중단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가졌다.

기자회견이 끝난 직후 비대위 원로들이 김인규 사장이 항의서한을 전달하기 위해 KBS 본관으로 들어가려 하자 KBS 청원경찰이 막아섰다. 그럼에도 이들이 올라가려 했지만 청경들은 아예 문을 걸어 잠궜다. 이어 경찰 병력 1개 중대가 본관 정문앞을 막고, 원로들을 에워싸는 등 위압적인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

   
29일 친일파 백선엽 찬양 방송 사죄 촉구 기자회견에서 사회 원로들을 막고 있는 경찰병력. ⓒ민언련
 
   
29일 친일파 백선엽 찬양 방송 사죄 촉구 기자회견에서 사회 원로들을 막고 있는 경찰병력. ⓒ민언련
 
30분간 실랑이를 벌이다 이들 원로 대표단은 KBS 총무국장(김인규 사장은 자리에 없고, 책임 있는 사람)을 만나 국장실에 가서 항의서한을 전달했다.

앞서 이들은 기자회견에서 스스로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는 사람들이라며 이젠 KBS가 피눈물을 흘리게 될 것이라 목놓아 성토했다.

정동익 사월혁명회 상임의장은 이날 “공영방송이 친일파를 찬양한 것은 있을 수 없는 민족반역행위이며 도저히 묵과할 수 없다”며 “무슨 나라가 이리 흉악하게 변할 수 있느냐. 김인규 사장이 양심이 있다면 사죄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정 의장은 “독립운동가와 전쟁 유가족의 가슴에 대못을 박은 짓에 대해 무릎꿇고 사죄해야 한다”며 “KBS가 사죄하지 않고, 또한 8월 이승만 방송을 강행한다면 우리는 김인규 퇴진투쟁과 시청료 거부운동에 나설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밖에도 2011년 대한민국 각지에서 벌어지고 있는 각종 친일파 영웅만들기 사업에 대한 성토도 쏟아졌다. 방학진 민족문제연구소 사무처장은 “고대직원이 인촌로 건설을 반대하는 내용이 담긴 현수막을 기습 철거해, 지금 경찰이 수사중”이라며 “곳곳에 친일파가 도사리고 있다”고 개탄했다.

   
29일 오전 KBS 본관 앞에서 열린 '친일파 찬양방송 사죄 촉구 규탄 기자회견'에서 등장한 일제 만주군 모형. ⓒ민언련
 
방 처장은 “KBS가 백선엽 특집을 통해 수구기득권에 과잉충성하는 바람에 오히려 역효과가 생기고 있다”며 “‘이래서 수신료 인상이 안된다’는 여론이 확산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파주시의 백선엽 동상도 도마에 올랐다. 이재희 민주노동당 파주시위원장은 “파주시가 6월 25일 오전 10시 백씨를 주인공으로하는 찬양비를 끝내 세우고 말았다”며 “평화의 상징, 남북교류의 길목 임진각에 15m짜리 긴 찬양비가 세워졌고, 그 가운데에 백선엽이 주먹을 불끈 쥐고 권총을 들고 북진하는 모습이 담겨져 있다”고 설명했다.

이 위원장은 “우리는 지난 6개월 동안 이를 막고자 노력했지만 못막은 점 죄송하게 생각한다. 이 모든 일은 중앙일보 기사 하나로 인해 이뤄졌다”면서도 KBS의 백선엽 방송을 계기로 다시 듫끓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시청자 게시판에 ‘국민 세금으로 역사를 왜곡하고 헌정질서를 파괴하는 일이 웬말이냐’는 내용이 줄을 잇고 있다”며 “김인규 사장이 여세를 몰아 이승만 방송까지 강행한다면 KBS를 규탄하고 김인규를 쫓아내는데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친일·독재 찬양방송 저지 비대위는 이날 기자회견문을 통해 “우리는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다. 한국전쟁 피학살자 유족들은 눈 앞에서 가족이 무참히 살해당하는 것도 봤다. 더러운 연좌제에 걸려 제대로 된 사회생활도 하지 못했다. 피해자는 숨죽이고 가해자가 오히려 떵떵거리며 사는 세상을 지금까지 목도해왔다”면서 “우리의 요구는 단순한 싸움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비대위는 특히 KBS의 독재자 이승만씨 미화 방송 예정에 대해 “대한민국의 헌법정신을 송두리째 부정하는 것”이라며 “오는 7월 6일까지 ‘백선엽 영웅 방송한 것에 대해 시청자에 사과’ ‘친일파 비호, 민주주의 탄압한 독재자 이승만 5부작 특집 제작 즉각 중단’이라는 우리의 요구가 관철되지 않는다면 만주 벌판에서 독립운동하는 심정으로 온몸을 던져 결사항전할 것”이라고 역설했다.

이들은 “우리를 피눈물나게 하면 KBS도 피눈물 흘리게 된다는 것을 똑똑히 확인시켜 줄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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