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삼 대통령의 실언소동이 계속되고 있다. 그것도 통지권자로서 가장 세심하게 고려해야 할 관련 법률들의 틀을 벗어나는 ‘초법적’인 발언들이 되풀이되고 있는 것이다.

김대통령은 지난 5일 민자당의 당직자들과 의원들을 초청, 조찬을 나누는 자리에서 “(삼풍사고와 관련된) 책임자들을 살인죄로 다스려야 한다”는 단호한 입장을 보였다. 더불어 “현행 법률로는 안되므로 법정 최고형으로 처벌할 수 있도록 이번 임시국회 회기중에 개정법안을 통과시켜야 한다”고 참석자들에 주문했다는 것이다.

김대통령의 이같은 발언은 민자당 대변인실에서 배포한 보도자료에 그대로 담겨있는 내용이다. 이날 석간신문들은 ‘살인죄로 다스려야… 법 고쳐서라도 엄벌’(국민일보) 등으로 보도했다. 그러나 이날 오후에 민자당 대변인실은 급히 수정한 보도자료를 다시 배포했다.

수정된 보도자료에선 김대통령이 “살인죄로 다스려야 한다”고 강조했던 발언은 사라졌다. 대신 “살인죄로 다스려야 한다는 국민의 심정을 정부는 이해하고 있다”는 내용이 삽입됐다. 삼풍사태 관련자들에 대한 살인죄 적용의지가 김대통령의 단호한 입장에서 국민들의 감정으로 둔갑한 것이다.

초판을 낸 직후 내외경제는 급하게 바뀐 대통령의 발언내용을 끼워넣기 위해 다음판 제작시간이 다소 늦어지는 등 애를 먹었다. 물론 다른 매체들은 ‘수정’된 보도자료에 따라 보도를 했다.

김대통령의 발언이 민자당에 의해 잘못 전달된 것인지 아니면 초법적인 발언이 가져다줄 파문이 우려돼 급히 보도자료를 수정한 것인지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고 있다.

그러나 보도자료를 건네받은 기자들은 대통령의 실언을 실무진이 급하게 윤색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있다. 기자들이 이런 판단쪽에 무게를 두는 것은 김대통령이 취임후 보여준 전력 때문이다.

김대통령은 지난 4월26일 기자들과의 간담회 자리에서 “15대 총선에서 민자당 총재자격으로 지원유세에 나서겠다”고 밝혀 커다란 물의를 빚은 적이 있다. 정무직 공무원은 선거운동을 못하도록 못박아 놓은 현행 선거법을 대통령이 스스로 어기겠다는 뜻이었기 때문이다.

북한 쌀지원이 본격화되던 지난 달 17일엔 “우리가 가진 쌀이 없으면 외국에서 사서라도 주겠다”고 언급, 수입쌀문제로 정부와 마찰을 빚고 있는 농민과 농민단체들의 반발을 사기도 했다.

김대통령은 이날 “외국쌀값은 우리의 3분의 1이며 우리가 그런 돈을 갖고 있다”고 해 매년 추곡수매가를 놓고 재정상 어려움을 호소했던 농민의 불만을 전혀 고려치 않은 발언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대통령의 이같은 의지에 따라 서둘러 진행된 북한쌀 무상지원 문제가 역시 실정법을 어겼다는 야권의 공세를 받기도 했다. 자민련 김종필 총재가 한 유세장에서 “(이미 확정된) 예산외에 국가에 부담이 될 계약을 체결할 때엔 국회의 의결을 거쳐야 한다”며 문제를 삼은 것이다.

현정부의 통치관이 ‘법치’보다는 ‘인치’에 기울어있어 후진성을 면치 못하고 있다는 비판은 이렇듯 김대통령이 스스로 행한 언행에서 비롯되고 있다는 게 중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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