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정부는 통신 시장 개방과 관련된 정책을 발표한 바 있다. 우리 언론은 정부의 정책이 가져올 적잖은 문제점들에 대한 분석없이 이를 보도했다.

코앞에 다가선 21세기가 ‘정보화사회’가 될 것이라는 미래학자들의 언사를 자주 접한다. 일일이 열거할 필요도 없이 우리의 일과 생활의 많은 부분이 정보통신과 연계돼 크게 바뀔 것이라는 생각에 이견을 내놓을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변화를 두고 누구보다 돈벌이에 민감한 기업의 움직임이 민첩하리라는 것은 자명하다. 민첩성은 국내기업들 못지 않게 외국기업들, 특히 미국기업들이 단연 앞선다.

정보통신부문에서 우리에 앞서 신기술과 새로운 서비스를 개발해 사업화에 성공한 미국 정보통신업체들은 급성장하고 있는 한국 통신시장을 초과수익을 올릴 수 있는 기회로 보고 미국정부를 통해 한국에 대한 시장개방압력을 행사해 왔다.

언제나 그렇듯이 한국 통신시장은 미국의 개방압력에 무력하게 무너져 버렸다. 부가통신서비스(VAN)를 중심으로 한 정보통신서비스는 거의 1백% 개방된 상태이고 통신부문 조달시장도 그 문호가 활짝 열리게 되었으며 이제 기본통신서비스의 개방이 목전에 다가왔다.

통신시장의 자유화(시장개방, 규제완화 및 민영화 등)가 세계적인 추세라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이와 더불어 각국간의 통신협상이 UR(지금은 WTO)을 통해서 그리고 미국을 축으로 한 쌍무협상으로 진행되어 왔는데, 한국의 경우 UR에서의 협상에 앞서 미국과의 쌍무적 협상을 통해 미리 시장을 내주는 등 통신협상에서 보잘 것없는 교섭력으로 자주적인 대응을 하지 못하고 말았다.

시장을 내주었다는 사실만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통신시장의 개방이 가속화되는 가운데 생긴 또 하나의 문제는 한국통신의 민영화 문제이다.

필자는 한국통신의 민영화는 보편적 서비스로서 값싼 통신서비스 제공, 또한 새로운 사회간접자본으로서 정보통신기반 구축, 한국통신 노동자의 고용문제 등을 준거로 매우 신중하게 처리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민영화 자체가 원천적으로 배제돼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민영화가 한국통신이 안고 있는 비효율성 문제를 해결하는 한가지 수단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통신산업이 독점적으로 보호된 가격으로 통신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땅짚고 헤엄치기’식으로 성장해 왔다는 점에서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것이 많은 학자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정부나 한국통신측 생각은 ‘시장개방 > 자유화(규제완화, 민영화) > 효율향상’이라는 논리적 연쇄를 설정하고 있는 것 같다. 우리를 우울하게 만드는 것은 민영화 문제가 한국 통신산업의 중장기적인 발전전망을 전제로 하기 보다는 미국의 시장개방 압력에 굴복한 공기업에 의한 독점체제의 해소문제로 왜곡되고 있다는 사실에 있다.

통신시장에 눈독을 들이는 자들은 국내에도 물론 다수 존재하는데 이 또한 한국통신의 민영화 문제를 ‘주인 찾아주기’나 재벌에 의한 ‘나눠갖기’식으로 왜곡시킬 수 있다.

물론 21세기에 대비한 한국재벌의 구조재편이 이뤄져야 한다고 할 때 정보통신산업이 이들의 새로운 활동 무대가 되지 않을 수 없다는 점에서 신규진입과 경쟁의 도입은 불가피하다.

다만 한국통신이 재벌의 손에 넘어가서는 안될 것이고 또한 통신시장이 전적으로 재벌에 의한 철저한 돈벌이 장으로 유린돼서도 안될 것이다.

이제라도 필요한 것은 머지 않은 장래에 한국산업의 핵심적인 인프러스트럭쳐로 역할하게 될 정보통신산업을 발전시켜갈 비전과 계획을 갖는 일이다. 최근 정부는 한국통신 민영화 문제에서 ‘정부투자기관법 적용에서 배제’ ‘정부지분 49% 이하로 조정’ 등의 입장으로 엉거주춤하고 있다. 대체 어쩌잔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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