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자체 선거 이후 정계개편과 관련된 기사가 언론의 커다란 주목을 받고 있다. 정계개편 논의를 좋게 해석하려고 노력하면 현재의 정치구조를 보다 바람직한 방향으로 바꿔나가고자 하는 행위로 볼 수 있다. 그러나 다른 각도로 바라보면 유권자들의 선택을 소수 정치 지도자들이 자신들의 권력 장악을 위해 제멋대로 왜곡하는 것이라 말할 수 있다.

어떤 시각을 가지고 있는지와 무관하게 현재 정계개편 논의는 정치권의 실세 논의이며 따라서 조만간 기존의 정당 구조는 변화를 겪을 것으로 보인다.

최근의 정계개편 관련 기사를 보노라면 솔직히 답답함을 숨길 수 없다. 3김씨를 중심으로 한 제정파의 정치적 이해관계와 그들의 추종자 분석을 통한 세력 싸움이 기사의 대부분이다.

무엇을 위한, 누구를 위한 정계 개편인가 하는 마땅히 제기되어야 할 의문은 보이지 않는다. 한번쯤은 현실 정치판에서 벗어나 이 사회와 민족의 미래의 비전에 빗대어 현재의 논의가 얼마나 초라하고 비생산적인가 하는 점도 아프게 짚어주는 언론의 모습을 보고 싶다.

그러나 그런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왜 그럴까.

본지가 최근 실시한 여론 조사 결과는 이에 대한 의미 있는 단서를 제공해 준다. 정계 개편 과정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집단을 묻는 질문에 일반 유권자는 유권자(35.4%), 언론(26.2%), 3김씨(15.7%) 순으로 응답했으나 현직 정치부 기자들의 대답은 이와 전혀 다르다.

정치부 기자들은 3김씨(79.5%)를 압도적 1순위로 보고 있으며 일반 유권자(10.3%), 언론(5.1%) 순으로 보고 있다.

정치부 기자들과 유권자들의 이같은 커다란 시각 차이는 우리에게 중요한 점을 시사해 준다. 일선 기자들이 압도적 영향력을 행사한다고 믿는 3김씨를 중심으로 기사를 쓰는 것은 당연하다고 볼 수 있겠다. 문제는 과연 그런가 하는 대목이다.

우리는 현대사의 중요한 정치적 고비마다 기존의 정치권과 언론이 전혀 예측치 못한 역사적 전환을 만들어 낸 국민들의 선택을 보아왔다. 언론으로서는 ‘이변’일지 몰라도 대중들에게는 선택의 승리일 뿐이었다. 역사의 흐름과 국민들의 속마음을 제대로 읽어내지 못한 결과이다.

79.5%와 15.7%의 괴리는 언론과 국민들 사이의 거리감을 상징적으로 드러내 준다. 이 간격을 좁혀나가기 위해서는 언론이 현상 유지적 시각을 극복하고 변화 모색적 시각으로 사물과 세계를 바라보려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현실 정치가 그 수준인데 언론인들 방법이 있겠느냐’는 언론인들의 발언은 일면적인 진술에 불과하다. 정치를 개인과 사회의 삶과 유리된 직업 정치가들만의 게임으로 본다면 그 시각은 그르지 않다.

그러나 우리 언론이 기존의 정치인과 정치판을 비판하면서 항상 강조해 마지 않던 것이 바로 국민과 사회의 요구를 제대로 조정해내지 못하고 미래의 비전을 생산해내지 못한다는 점이었다.

이제 그 비판의 화살이 언론을 향해 던져진다면 언론은 어떤 답변을 할 수 있을까. 국민들은 유권자들의 힘 다음으로 그리고 3김씨의 힘보다는 한참 위로 언론의 영향력을 꼽았다. 이를 현실 모르는 순진한 국민들의 시각으로 돌리지 말고 언론에 대한 국민의 믿음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그리고 정계개편이 소수 정치인들의 게임이 아니라 국민 모두에게 중요한 파급을 가져오는 대단히 중요한 우리 사회의 선택이라는 점이 공유될 수 있도록 보도에 힘써주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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