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조사라는 게 참 묘하다. 수치를 들이대면서 “이것이 여론이다”라고 강조하지만, 맹신은 금물이다. 여론조사 수치는 민심을 정확히 반영하는 거울이라고 단정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여론조사의 방법에 따라, 조사주체의 의도에 따라 수치는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국민들도 언론보도를 ‘100% 수용’ 하기보다는 참고자료 정도로 바라보는 자세가 필요하다. 한국 언론의 여론조사 보도는 과거에 비해 많이 나아졌다. 정치 여론조사와 관련해 ‘기본’을 지키지 않는 언론도 적지 않았지만, 이제는 ‘기본’은 지키려 노력하고 있다.

바람직한 일이다. 그러나 여전히 갈 길은 멀다. 여론조사 보도의 기본 중 기본을 여전히 지키지 않는 언론도 있다. 몰라서일까. 의도적일까. 몰라서라면 무식함을 드러낸 것이고 의도적이라면 더 나쁜 행동이다.

   
동아일보 6월 16일자 8면.
 
동아일보는 6월 16일자 8면에 <“북 소행”  답변 46%(작년 4월)→32.5%(작년 7월)→83.6%(작년 12월)→80%(올해 2월)>라는 기사를 실었다. 동아일보가 기사를 내보낸 까닭은 정동영 민주당 최고위원이 KBS 라디오 인터뷰를 통해 천안함 사건에 밝힌 내용을 비판하려는 목적이 담겨 있다.

정동영 최고위원은 “정부 발표를 믿지 않는다는 사람이 믿는다는 국민보다 더 많아졌지 않느냐”라고 말했다. 동아일보는 중간 제목을 <여론조사선 반대로 나타나>라고 뽑았다. 정동영 최고위원 주장과 달리 정부의 천안함 발표를 믿는 국민이 더 늘어났다는 주장이다.

실제로 기사 제목도 그렇다. 지난해 4월, 7월, 12월, 올해 2월 천안함 여론조사 자료를 전하면서 작년 중반만 해도 30~40% 수준에 머물던 ‘북한 소행’이라는 답변이 지난해 12월 이후 80%대로 늘어난 것처럼 전했다.

정말 그럴까. 그렇게 믿어야 할까. 동아일보 여론조사 보도의 비밀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동아일보는 지난해 4월 조사에서는 GH코리아 자료를, 5월 조사에서는 코리아리서치센터 자료를, 7월 조사에서는 한국갤럽 자료를, 12월 조사에서는 디오피니언 자료를, 올해 2월 조사에서는 한길리서치 자료를 인용했다.

시간대별로 여론조사 결과의 차이점을 들어 기사에 담긴 주장의 정당성을 전하려는 목적이다. 그러나 이러한 방법은 여론조사 보도의 기본을 어긴 것이다. 각기 다른 여론조사 기관의 각기 다른 여론조사 문항을 토대로 한 결과를 시간 순서에 따라 나열해 흐름을 살펴볼 경우 심각한 오류가 발생한다.

우선 서로 다른 여론조사 기관의 각기 다른 문항을 단순 비교해 여론이 이렇게 변했다고 하는 것 자체가 오류이다. 더욱 큰 문제점은 기자가 여러 천안함 관련 여론조사 가운데 취사선택한 결과를 토대로 천안함 여론 흐름의 변화 곡선을 그릴 경우 동아일보가 보도한 것처럼 상승곡선을 그릴 수도 있지만, 거꾸로 하락곡선을 그릴 수도 있다.

천안함 여론조사 결과 가운데 사건 초기에는 정부 발표를 믿는 여론이 높은 여론조사 결과를 인용하고 시간이 갈수록 수치가 줄어드는 여론조사 결과들을 취사선택하게 된다면 동아일보와는 정반대의 흐름이 가능한 것이다.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언론이 각기 다른 여론조사 기관의 각기 다른 조사문항을 근거로 한 결과를 토대로 여론의 흐름이 이렇게 변하고 있다고 보도하는 행위를 자제할 것을 요구한다. 이는 여론의 흐름을 보여준다기 보다는 기자가 원하는 대로 여론의 방향을 조정하는 행위일 수 있기 때문이다.

동아일보 여론조사 보도가 주장의 정당성을 얻으려면 같은 여론조사 기관의 정기 여론조사 결과를 토대로 천안함 관련 정부 발표에 대한 국민 여론의 변화를 전했어야 했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