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3년 대학생으로 제1회 GEO-OLYMPUS PHOTOGRAPHY AWARDS 대상을 수상해 신선한 화제를 일으켰던 사진가 '김흥구'가 그 때의 수상작 <좀녜('해녀'의 제주방언)>의 10년의 기록을 담아 사진전을 열고 있다. 사진가 김흥구는 사진학과 학생이었던 지난 2002년부터 수업이 끝나면 배를 타고 제주도로 가 주말을 꼬박 해녀들과 생활하며 그녀들의 삶을 기록했다. 물과 볕에 그을리고 주름진 얼굴로 젊은 날의 사진 앞에 선 비양동의 할망 해녀부터, 비 오는 날에도 테왁을 들고 바다로 나가는 서천진동의 해녀 무리, 물안경을 쓰고 해산물을 건져 올리는 온평리의 해녀에 이르기까지, 김흥구는 꾸준히 좀녜들을 기록해 왔다. 바다 속 삶을 기록하기 위해 그는 스킨스쿠버 다이빙을 배웠고, 원정나간 해녀들을 찾아 일본을 드나들기도 했고 한 해녀의 수양아들이 되기에 이르렀다. 그렇게 10년이 흐르고 세월의 흐름을 피할 수 없는 몇몇 해녀는 세상을 떠났다. 

 

   
제주, 사계리 김유순(94) 김흥구
 

이제 삼십대 초반이 된 사진가는 여전히 바다에서 삶을 이어가는 그녀들의 사진으로 처음 관객들과 갤러리에서 만나고 있다. 사진전 <좀녜-사라져가는 해녀, 10년의 기록>은 갤러리 류가헌(서울 종로구 통의동 7-10)에서 7일부터 26일까지 열린다.

 

다음은 송수정 사진기획자의 전시소개글이다.

 <아무렇지 않아서 서러운>

정말 사라질까. 김흥구가 ‘좀녜’ 작업을 처음 선보인 10년 전 바다에서 물질하는 어머니들이 곧 사라질 거라는 말이 나돌았다. 좀녜는 해녀를 부르는 제주도 말이다. 고된 물질을 대 이으려는 사람이 없다보니, 한 세대 정도가 지나고 나면 좀녜를 만나기 어려울 거라는 얘기는 아마 사실일 거다. 좀녜도 고령화 사회의 운명을 빗겨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러나 그 무수한 풍문의 바다를 건너 김흥구가 뭍에 소개하는 ‘좀녜’는 마지막 세대를 향한 슬픈 찬가가 아니다. 거기에는 세상 말들에는 관심도 없이, 물때를 기다려 바다에 들어갔다가, 나와서는 다시 밭을 매러 나가는 제주 여인들의 무심한 하루가 담겨 있다. 수압을 견뎌내느라 삭신은 고장 나고, 이미 오래 전 세상을 떠난 남편에 대한 기억 따위는 청승이라 넘겨 버리는 여인들이 선명한 주름으로 웃고 있을 뿐이다.

   
제주, 우도 비양동 김재정(92) 김흥구
 

처음 좀녜를 만나러 떠났을 때 김흥구는 아직 사진을 전공하는 청년이었다. 누가 뭐라 한 것도 아닌데, 어머니들이 물 위로 오르기만을 기다려 셔터나 눌러대는 자신이 부끄러워 어쩔 줄 몰라 하는 여린 마음의 소유자기도 했다. 멀리 뭍에서부터 달랑 차비만 들고 찾아오는 이 대책 없는 청년을 품어준 건 어머니들이었다. 심지어 비양도의 공명산 할머니는 이 숱기조차 없는 젊은이를 아예 수양아들로 삼아 올 때마다 거둬주었다.

그 정 때문일까. 그는 여전히 이 작업으로부터 도망치지 못하고 있다. 자신의 사진을 평가하는 일이 감히 제주 여인의 삶에 점수를 매기는 일이라도 되는 냥 엄숙하기만 하던 그도 그 10년 사이 청년의 티를 벗고 가장이 되었다. 진한 성장통 끝에 철 든 아들이 듬직한 모습으로 돌아오듯, 그의 좀녜에 대한 태도도 훨씬 다부지게 변했다. 최근 그는 사진 촬영과 함께 한명 한명의 사연을 채록해 가면서, 좀녜만의 풍습이며 그들을 만들어낸 제주의 역사까지를 아우르는 현장감을 더해가고 있다. 원정 물질을 떠나온 좀녜를 기록하기 위해 촬영 반경도 일본으로까지 넓혔다.

   
제주, 우도 서천진동 2002. 김흥구
 
   
제주, 온평리 2003. 김흥구
 

김흥구의 ‘좀녜’는 물질하는 여인에 대한 기록이 아니라, 작가의 길 앞에서 주저하던 청년을 사진가로 길러낸 어머니들에 대한 이야기다. 그들은 기꺼이 작가가 자맥질할 수 있는 바다가 되어 주었다. 어머니들이 작가 앞에서 펼쳐낸 스스럼없는 일상들, 그 고단하고 따뜻하고 질펀한 그래서 결국에는 담담해 보이는 사진 속에서 덕분에 우리는 작가의 숨비소리도 함께 듣는다. 너무 아무렇지 않아 보여서 끝내는 우리를 서럽게 만드는 어머니들이 아직은 거기에 있다. 사라지지 않았다. 다행이다.

송수정_사진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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