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대 지방선거 개표방송에서 ‘투표자 전화 여론조사’를 실시, 보도를 함으로써 개표방송 초반에 시청자의 눈길을 잡는데 성공한 MBC는 이를 위해 지난 몇개월간 극비리에 치밀한 준비를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MBC는 한국 갤럽조사연구소와 공동으로 투표당일인 지난달 27일 투표를 마친 유권자들을 대상으로 투표자 조사를 실시해 오후 6시부터 개표방송 ‘선택95’에서 15개 시도별로 그 결과를 공표했다.

MBC가 투표자 여론조사를 계획한 것은 지난 2월말. 정치부기자들로 구성된 선거기획단(단장 고진·보도국 부국장)은 미국의 3대 네트워크와 일본의 TBS·NHK 등을 방문, 출구조사에 대한 연수를 받았다. 그리고 이곳에서 이미 KBS와 SBS가 다녀간 사실을 확인했다. 여론조사가 개표방송 경쟁의 초점이 되겠다고 판단한 선거기획단은 정보유출방지를 위해 보도국 주요간부조차 모르게 투표자 여론조사를 추진했다.

먼저 투표자 여론조사가 통합선거법에 저촉되느냐 하는 것이 문제였다. 선관위에 유권해석을 물을 경우 정보가 유출될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한 MBC는 통합선거법 입법과정에 참여했던 민자당의 손학규 의원과 민주당 박상천·강수림 의원에게 자문을 받았다. 그 결과 투표소 앞에서의 출구조사가 아닌, 투표를 마친 유권자들을 대상으로 한 전화조사는 현행법에 저촉되지 않는다는 해석을 얻어냈다.

현행 공직선거 및 선거부정방지법 제 167조 2항은 ‘비밀선거’의 정신을 적극 반영한 조항이며 18조 1항 여론조사 관련 조항의 경우는 투표가 끝난 다음 시점에서 공표할 경우 법에 저촉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선거기획단은 즉시 한국갤럽조사연구소와 계약을 맺고 전화로 투표자 조사를 하기로 했다. 시도별로 많게는 1천 2백명에서 적게는 5백명을 표본으로 해서 이뤄진 이 전화조사는 개표결과 득표율에서는 오차가 많았지만 전지역의 당선자를 정확하게 맞춤으로써 큰 성과를 올렸다. 이 투표자 여론조사에는 1억9천8백만원의 예산이 소요됐다.

투표자 출구 여론조사를 기획하고도 선관위의 유권해석때문에 포기한 KBS는 즉각 선관위에 항의하고 나섰다. 선관위는 지난달 27일과 30일 두차례 MBC측에 공직선거 및 선거부정방지법 제167조를 위반했다며 엄중 경고하는 공문을 보냈다.

그러나 여론조사 공표결과 시청자의 높은 호응을 얻었다고 판단한 MBC는 뉴스데스크 등을 통해 공세적인 입장을 취하고 나섰다. 투표전날 여론조사를 보도, 승기를 잡으려했던 SBS도 아쉽기는 마찬가지. 이에 따라 MBC 보도 이후 MBC와 선관위간, 그리고 방송사간의 치열하고도 미묘한 갈등이 계속되고 있는 양상이다.

한편 선관위와 MBC의 공방이 관심을 끄는 가운데 이를 계기로 통합선거법이 현실성 있는 방향으로 개정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MBC 선거기획단 고진 단장도 “개표방송으로 시청자들을 밤새 TV 앞에 묶어 두는 관행은 전파낭비며 이는 근본적으로 개선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대한 명확한 유권해석이나 법개정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여론조사를 둘러싼 방송사와 선관위간의 갈등은 다음 선거에서 더욱 치열하게 전개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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