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 들어 ‘가장 강력한’ 언론탄압을, 그것도 ‘직접 몸으로’ 겪었다고 할 수 있는 당사자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전국언론노조는 5월 30일 오후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김용진 기자(KBS), 최승호 PD(MBC), 임장혁 기자(YTN), 김진혁 PD(EBS) 등을 초청한 가운데 시사보도 탄압에 대한 증언을 듣고 대안을 공유하는 토론회를 가졌다. 이들은 <시사기획 쌈>, <PD수첩>, <돌발영상>, <지식채널e> 등 각 방송사를 대표하는 시사·교양 프로그램을 ‘만들었던’ 간판 제작자들이다.

이들의 증언에 따르면, 4명의 참석자 모두 직접 당한 강제 인사발령부터 시작해, 징계, 민형사상 고소, 게이트키핑의 남용, 해당 프로그램 폐지 또는 연성화 등 탄압의 유형은 매우 다양했다.

지난 2005년부터 KBS 탐사보도팀에서 활약하다 2008년 9월 ‘보복인사’로 울산방송국으로 간 김용진 기자는 함께 일했던 한 후배 기자에 대해 언급했다. 김 기자는 “내가 울산으로 가게 됐을 때 이 후배는 엉뚱하게도 스포츠중계팀으로 발령났다. 한 6개월 정도 프로축구 하이라이트 편집만 했는데, 결국 ‘도저히 못하겠다’며 자비로 유학을 가야만 했다”고 전하면서 “2008년 사장이 교체되고 대규모 인사가 단행되면서 탐사보도팀과 미디어포커스 기자 상당수가 지방이나 비 제작부서로 쫓겨났다”고 말했다.

임장혁 YTN 기자가 팀장을 맡았던 <돌발영상>은 이명박 정부 ‘언론탄압 수난사’를 상징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강제 인사발령과 징계, 제작진 교체와 프로그램 중단, 방영분 삭제 등 언론으로서 겪을 수 있는 탄압이라는 탄압은 모조리 체험한 것이다. 임장혁 기자는 이와 관련 “이명박 정부 들어서만 2번의 정직 징계를 당했다”면서 “그런데 이보다 더 무서웠던 것은 평화로운 일요일 아침 낙하산 사장 반대 투쟁을 했다는 이유로 사복경찰에 체포된 일(2009년 3월)이었다”고 공권력의 ‘공포’에 대해 토로하기도 했다.

역시 지난 3월 <PD수첩>에서 아침 방송 프로그램으로 전출되어야 했던 최승호 MBC PD는 여러 형태로 전개되는 탄압에 대해 “마치 모든 일이 이명박 대통령과 관계없이 사장, 국장 등이 알아서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렇지 않다고 본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최 PD는 “이 대통령 측은 참 영리한 분이 많은 것 같다. 프로그램에서 쫓겨나고 해도 이름이 잘 안나온다”면서 “하지만 모든 일에는 배후가 있는 법이다. 우리의 대책도 이런 관점에서 세워져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보복인사’ 논란 속에 2008년 8월 프로그램을 떠난 김진혁 PD도 “지식채널e의 경우 정권에 대한 직접적인 비판을 하는 시사프로그램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단지 그럴 가능성이 있는 아이템을 다뤘다는 이유만으로 히스테리적 반응을 보였다”면서 “이는 ‘언론’이라고 하는 것이 가지고 있는 권력 감시 기능 자체를 부정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현 정권이 바라보는 언론은 일종의 ‘국정홍보처’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토론자로 참석한 원용진 서강대 교수(신문방송학)는 “최근 한국의 언론 현실은 지난 1950년대~1980년대 일본과 유사한 점이 많다”며 이런 상황이 지속될 경우 사회적 제도의 퇴락 등으로 ‘새로운 탈출구’를 찾을 수 없는 사회가 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원 교수에 따르면, 일본도 1950년대부터 신문방송의 계열화, 자민당과 정부의 공영방송 포섭, 민간방송의 오락 과잉 등이 본격화되었다고 한다. 그 결과는, 비판적 담론 생산자의 부재로 인한 견제의 실종과 고통의 극대화였다.

한편 이날 토론에서는 ‘대안’과 관련해 그 어느 때보다 근본적인 이야기가 많이 나와 눈길을 끌었다. 박중석 민주언론실천위원장은 “사후적 대응이 아니라 언론으로부터 외면받는 이슈, 정권에 민감한 이슈, 현업자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이슈를 발굴해 앞장서 치고나가겠다”는 언론노조 차원의 포부를 밝혔고, 최승호 PD는 “청와대를 장악하면 방송은 자연스레 따라오는 이런 시스템이 옳은가?”라고 물으면서 “누가 정권을 잡든 같은 상황이 올 수 있다. 정권을 바꿔서, 한방에 모든 걸 해결할 생각을 하지 말고 학계·시민사회는 항구적으로 언론이 언론다울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 노력을 하자”고 제안했다.

김용진 기자 역시 “정치권력의 교체만을 기다리는 것처럼 어리석은 것은 없다. 방송을 장악하고 통제하고픈 권력의 욕망은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동일하기 때문”이라며 “지금은 과거를 회상하기보다는 왜 권력의 방송 침탈이 그렇게 쉽게 이뤄졌는지, 방송 저널리즘 진영은 왜 그렇게 허무하게 붕괴됐는지를 면밀하게 분석하고, 근본적인 대안을 마련해야 할 시기”이라고 강조했다.

김 기자는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어떻게 독립성을 확보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정말 치열하게 고민하고, 방송 독립을 담보해 낼 수 있는 장치들을 차기 권력으로부터 확보해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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