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는 사람에 따라 달리 해석할 수도 있지만, 필자로서는 가장 우려했던 현상이 벌어졌다고 본다. 흔히 예견했듯이 5·4·4·2 현상이 빚어지고 말았다. 특히 부산·경남은 민자당이 쓸었고 광주·전남북은 민주당이 독차지했으며 충남북은 자민련이 장악했다. 제각기 그 지역안에서는 일당제를 수립했다. 이것도 처음이 아니라 88년 4·26 총선 직후의 현상이 되풀이 됐으니 한심스럽지 않을 수 없다. 다람쥐 쳇바퀴 돌듯하는 것이 역사라고는 하지만 이렇게 되풀이 될 수 있을까!

물론 이번 지자제선거에서 민주당이 서울까지 독점하다시피한 것은 단순히 지역성만이 아니라 김영삼정부의 실정과 오만에 대한 민심의 이반현상으로 풀이할 수 있겠고, 민주·자민의 선거연합이 주효했음도 부인할 수 없다.

어찌됐건, 이번 지자제선거는 지역할거적인 성격을 특성으로 꼽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정치가 지역성을 기반으로 해서 태동될 때, 이념이나 정책이 펴질 여지는 없어지고 만다. 지역성은 인간의 모태애(母胎愛)와도 같고 감성적인 것이어서 이성적이거나 합리적인 사고를 바탕으로한 이념이나 정책을 압도해 버리고 만다.

따라서 감성적인 지역성이 판을 칠 때 민주주의는 실종된다. 왜냐하면 민주주의란 합리적인 사고를 바탕으로해서 이루어질 수 있는 정치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지향하고 있는 민주주의란 한 지배집단에 의한 독재화 경향을 극복하기 위해 하나의 집단이 주도하면 다른 또 하나의 집단으로 하여금 견제하고 비판하도록 장치하고 있다. 이렇듯 합리적인 사고를 바탕으로 삼고 있는 것이 민주주의인데, 거기에 비합리적이고 감성적인 지역성이 판을 칠 때 민주주의는 실종될 수 밖에 없다.

더욱이 이번 지자제선거 결과는 봉건영주들의 할거적인 지배체제마냥, 하나의 정파가 그 지역안에서 독점적인 지배체제를 구축하고 있다. 다른 정파에 의한 비판, 견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상황이다. 흔히들 지자제는 ‘민주주의의 뿌리’라고 하는데, 우리의 민주주의는 그 뿌리부터 뒤흔들리고 있는 실정이다.

21세기를 눈앞에 두고 우리가 선진국 대열에 진입하기 위해서도, 세계화 속에서 우리를 올바로 지켜나가기 위해서도 민주주의는 보다 알차게 다져 나가야 한다. 민주주의를 올바로 실현해 나가기 위해서는 민주주의를 가로막는 지역성을 타파해야 한다. 지역성을 타파하려면 기존의 한 정파의 세확장으로 가능하지는 않다. 또 다시 지역패권주의를 재현시킬 수는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 지역할거주의에 안주해 왔던 낡은 지도자들이나 정파가 중심되는 것이 아니라 지역할거주의를 거부하는 세력이 합세하고 중심이 되어 새로운 국민정당(National party)을 출현시켜야 한다.

그리고 지난날 우리네 언론은 분명 지역할거주의를 부채질하는데 일조했음을 부인할 수 없으리라. 이제부터, 언론이 해야 할 아주 특별하고 중요한 일이 있다. 이 나라의 민주주의 실현이나 통일의 달성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지역할거주의를 타파하는 길이 최우선의 과제임을 깊이 인식하고 국민들을 계도하는데 앞장서야 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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