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한주일에도 인터넷을 가장 뜨겁게 달구었던 이슈는 또다시 <나는 가수다>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감동을 선사한 최고 가수들의 가슴 뭉클한 사연 대신 댄스걸그룹 출신 유명 연예인을 둘러싼 격렬한 비난과 옹호가 이슈의 중심에 자리 잡았다. 비록 립싱크 TV무대에서 주로 활약하긴 했지만 유명 걸그룹 핑클에서 노래의 솔로 부분을 주로 책임졌던, 현재 뮤지컬 배우로 맹활약중인 옥주현의 <나가수> 참여가 확인되었기 때문이다. 김건모 재도전 사태에 버금갈 만큼 이번에도 <나가수>를 향한 네티즌들의 비판들이 온라인 곳곳에 넘쳐 흘렀다.

옥주현 등장, 다시 들썩이는 <나가수> 팬덤

아마 옥주현 입장에서는 이 상황이 무척 억울할 것이다. 프로그램에 출연도 하기 전에 이렇게 욕을 먹는 것도 황당할 게다. 기존 출연 가수 못지않은 출중한 가창력을 지니고 있기에 자신의 <나가수> 출연이 이렇게까지 거대한 반발에 부딪힐 것이라고는 아마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제작진 역시 이 정도의 반발을 예상하지는 못했을 것 같다. 혹시나 예상했다 하더라도 일단 방영이 되고 나면 여론은 자신들의 편이 되리라고 안일하게 생각한 것 같다. 김건모 재도전 사태의 학습효과가 있었던 것일 텐데 이것 또한 각각의 처지에 따라 학습 내용이 서로 달랐나보다.

김건모를 계기로 발생했던 1차 소동에서 사람들은 많이 불공정한 우리 사회에서 숱하게 당해왔던 '반칙'과 ‘약속파기'의 짜증스런 경험이 안방극장에서까지 반복된 데 대해 크게 분노했던 것 같다. 사실 그때까지만 해도 사람들은 <나가수>에 대해 지금처럼 요란한 기대를 하지 않았다. 따라서 그 사태는 김건모와 담당 PD의 자진 하차로 해결될 수 있었다. 소수의 속죄양들을 통해 어두운 그림자를 걷어낼 수 있었다. 사실 이건 비교적 쉬운 일이었다. 프로그램 내부의 약속을 지키기로 다짐하고 시청자에게 사과하면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김건모, 백지영이 나가고 임재범, BMK가 프로그램에 투입되면서, 그리고 가수들이 최고의 열정을 쏟아 붓기 시작하면서 <나가수> 무대는 급변하기 시작했다. 만일 지금 김건모가 이 자리에 다시 나와 <립스틱 짙게 바르고>를 또 불렀다면 그때처럼 노래 도중에 입술에 립스틱을 바르는 개그퍼포먼스 같은 것은 정말이지 절대로 하지 못했을 것이다. <나가수> 무대의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졌기 때문이다.

<나가수>, 한국 대중음악의 구원투수?

<나가수>가 재방영을 시작하고 대중들이 열광하며 마침내 임재범이 가요순위 프로그램 1위 후보에 올라 댄서-립싱커들과 경합을 하게 되면서 <나가수>는 완전히 다른 존재로 변모하기 시작했다. 많은 시청자들에게 <나가수>는 ‘일밤의 구원투수’에서 ‘한국 대중음악의 구원투수’로 새롭게 인식되었다. 우리 가요계가 매우 병들어 있다고 평소 생각해왔기 때문일 게다. 마치 대통령선거를 치르듯 쏟아져 나온 이 유별난 열광적 지지와 관심은 이렇게 만들어졌고 <수요예술무대>, <라라라>등 과거 음악프로그램들과 근본적인 차이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한편, 음악 청중들에게도 <나가수> PD의 행동에 대한 분명한 학습효과가 있다. 그래서 이제 의미심장한 사회성을 지니고 있다고 믿게 된 프로그램의 결정권자는 PD가 아니라 대중들에게 있어야 한다고, PD들은 그 대의를 대신하는 심부름꾼이어야 한다고 생각한 것 같다.

   
 '나가수'에 출연한 옥주현                                                  ⓒ연합뉴스
 
PD에게 쉽게 신뢰를 보내기는 힘든 상처가 대중들에게 있다는 점을 무시하면 안 된다. 이들은 <나가수>를 통해 가요계를 병들게 한 사회악들이 일소되거나 혹은 최소한 병폐의 일부라도 치유되기를 기원하고 있다. 여기서 그들이 생각하는 사회악은 단순하지만 매우 구체적이고 분명하다. 음악 대신 가슴골, 꿀벅지, 엉덩이를 팔아 돈을 벌고 그렇게 벌어들인 돈의 놀음을 통해 기어코 음악계의 주류가 된 '댄서-립싱커-걸그룹'을 생산해내는 집단들이다. 이들은 음악사회에서 노력의 서사를 부정하고 무너뜨려 왔기 때문이다. 열심히 노력을 하면 언젠가는 자아 성취를 이룰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 가장 통하지 않는 곳이 아마 한국의 음악계일 것이다. 음악을 통해 노력하지 않은 자가 대중들이 음악에 소비하는 돈의 대부분을 가져가고 또 음악인들에게 부여되는 각종 명예와 보상들을 가로채고 있기 때문이다.

옥주현의 역설, 노래 잘하는 립싱커

옥주현의 등장과 공격적인 안티세력의 대대적인 등장은 이런 맥락에서 이해될 필요가 있다. 그녀는 자신의 의지와 또 오늘의 노력과 무관하게 앞서 말한 부류의 '댄서-립싱커-걸그룹' 집단의 일원으로 인식되어 왔다. 뛰어난 노래 실력이야 어쨌든 그녀의 가수인생 출발 자체가 그러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지금 <나가수>의 롱런을 위해 십자가를 진 고난의 존재가 되었을지 모르지만 그 십자가는 대중가요의 병폐를 가중시켜 온 댄서-립싱커들을 위한, 가진자들을 위한 욕심의 알리바이일 수도 있다는 것이 문제다. 아이돌만으로 구성된 새로운 시즌도 가능하다는 담당PD의 신중치 못한 공개적 발언은 사람들의 이러한 오해 혹은 우려를 증폭시켰다. 옥주현의 등장과 PD의 말 일부를 조합해 보면 <나가수>는 더 이상 소방수가 아니라 방화범으로 돌변할 수도 있겠다, 이렇게, 사람들은 생각한 것 같다.

물론 옥주현에게 퍼부어진 인신공격까지도 옹호하자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보다 약자들이 들고 일어나 몹시 떠들어 댈 때는 그 이유가 있다는 이야기이고, 책임감 있는 공동체의 일원들이라면 그 이유가 뭔지 차분히 살펴보는 것이 당연한 덕목이기 때문이다. 모든 사건, 소동에는 맥락이란 것이 있게 마련이니까. 옥주현의 등장에 대해, 그리고 아이돌에 대한 담당PD의 발언에 사람들이 분개하는 거친 태도와 생경한 주장만 문제 삼지 않았으면 좋겠다. 사람들은 미약한 자신의 힘으로는 어쩌지 못하는 이 못마땅한 세상에서 <나가수>를 통해 희망을 봤던 것 아니었겠나.

<나가수>, 함께 풀어야 할 딜레마

지난 일요일, 옥주현은 결국 <나가수>에 등장했고 드라마를 쓰듯 1위를 거머쥐었다. 더불어 <나가수>는 순위제 경쟁프로그램이었다는 것도 다시 환기되기 시작하는 것 같다. 안타까운 일이다. 한편, 시끄럽게 난리를 죽이던 안티들의 기세는 다소 움츠러들고 있다. 제작진은 단 한번의 반격으로 승리를 목전에 두었다. 학습효과는 기대를 배신하지 않았다. 벌써 트윗라인과 신문기사에 악플러 스포일러들을 점잖게 비웃는 글들이 기세를 올리고 있다.

자, 이제 어떻게 될까. 안티들을 공격적으로 제압한 <나가수>가 지금껏 보다 한결 좋은 프로그램이 되고 가요계에 더 많은 기여를 할 수 있게 될까. 대중들은 결국 더 많은 환호로 <나가수>를 맞이하게 될까. 세상이 그렇게 호락호락하지는 않을 것 같다.

지금 <나가수> 제작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광고 완판 프로그램으로 롱런할 수 있는 영업적 비전을 찾는 게 아니라 뜻밖에 거머쥔 소중한 가치를 잃지 않기 위해 바로 지금 이 순간의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무대 위의 가수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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