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는 정치적이다. 그러나 가끔 문화는 정치와 전혀 동떨어진 영역이 되며, 분리해서 생각하려는 경향이 있다. 어떤 이들은 꼭 문화 뿐 아니라 다른 영역 또한 ‘정치’라는 부분과 결부시키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기도 한다. 하지만 다른 영역도 마찬가지지만 어떤 것을 ‘소비’할 것인가라는 가치 판단이 작용한다는 점에서 문화적 행위 자체에는 정치적 판단이 작용할 수 밖에 없다. 커피나 초콜릿은 문화적 취향이 작용하는 경제 소비 행위이다.

하지만 공정무역 커피 혹은 초콜릿을 사는 것은 착취 당하고 있는 제3세계 노동자들에게 합리적인 댓가를 지불하기 위한 태도라는 점에서 지극히 정치적인 문화 행위인 것이다. 대한민국에서는 이른바 ‘문화상품’을 어떻게 소비하느냐가 그 사람의 정치성을 판단할 수 있는 바로미터가 되기도 한다. MBC <서바이벌-나는 가수다>(이하 <나가수>)에서 임재범에 환호하는 것이 그동안 외면받았던 ‘아버지’의 모습을 소비하는 것 등이듯 보다 적극적으로 변모한 문화적 소비는 단순히 ‘취향’의 문제를 떠나 수용자들의 정치, 사회적 판단 기준이 어느 곳에 위치하는지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많은 시사점을 던져주는 것이다.

임재범에 대한 환호는 외면 받았던 '아버지'의 부활

가수 옥주현이 <나가수>에서 예상을 ‘뒤엎고’ 1위를 차지했다. 지금까지 <나가수>에 출연한 가수들 중 가장 찬반이 분분했던 가수로 일부 시청자들은 그녀가 <나가수>에 출연하는 것을 반대하는 청원을 내기도 했다. 조선족 출신 백청강은 MBC 오디션 프로그램 <위대한 탄생>에서 1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1위를 뽑는 마지막회를 앞두고 그의 ‘출신성분’을 통한 사진 합성 등 악의적 루머가 돌기도 했다. 위의 사례들은 일부의 일일 수 있다. 대중들은 그런 루머에도 불구하고 옥주현과 백청강 모두에게 1위를 선사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둘다 모두 사회적 차별로 인한 폭력에 시달려야 했다.

   
 
 
“현대사회가 문명화되면서 육체적 고문을 자행했던 과거에 비해 덜 폭력적인가?”라는 질문에 섣불리 현재가 덜 폭력적이라 대답할 수 없다. 그 이유는 폭력의 범주가 훨씬 넓어졌으며 정신적 충격에 대한 내성 또한 모든 이들에게 동등하게 적용될 수 없기 때문이다. 사실 육체적 폭력이 눈에 보이는 것이기 때문에 더 폭력적이라 느껴질 뿐, 정신적 폭력은 더욱 교묘해지고 더 잔인해진 것 또한 사실이다. 그리고 그런 폭력은 대부분 ‘구별 짓기’를 통해 만들어진다.

'구별짓기'가 만드는 폭력…취향이 정치적일 수 밖에 없는 이유

고 송지선 아나운서의 자살은 우리가 아직까지 사회적 약자인 여성에게 얼마나 천박한 폭력을 가했는가를 여과없이 보여주었다. 그것은 자신과 다른 정체성, 즉 조선족이란 ‘성분’을 갖고 있는 백청강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였다. 아이돌 출신의 가수이며 이렇다할 대표곡을 갖고 있지 못한 ‘<나가수>급 가수’라는 시청자들의 ‘눈높이’에 미치지 못한다 ‘판단되는’ 옥주현에 대한 비난으로 이어졌다. 그것은 대중들이 ‘맘대로’ 할 수 있는 몇 가지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연예인들에 대한 비난은 손쉽고 그렇기 때문에 동조자들 또한 많다.

취향이야 말로 가장 정치적인 것이다. 오랜 교육과 문화 사회적 습득을 통해 구성되며 그 어떤 것 보다 그 사람의 특성을 잘 보여주기 때문이다. <나가수>가 볼만한 ‘라이브 공연’에 대한 목마름을 해소시켜 주기는 했지만 그와 반대로 대중가요 시장에서 ‘아이돌 음악은 깊이가 없는 것’, ‘<나가수>의 가수들이 보여주는 삶의 깊이에 따른 음악적 완성도’와 같은 문화적 수준에 대한 구별을 짓고 있는 것은 아닌지 살펴볼 필요는 있다.
 

   
 
 
<나가수> 신정수PD의 ‘아이돌 버전 나가수’에 대한 반대여론이 그러하듯 말이다. 백청강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위대한 탄생>에서 백청강은 조선족이라는 편견, 그리고 그것을 이용한 스토리텔링이 공존한 경우이다. 양쪽의 명암이 어떻게 작용했던지 간에, 백청강을 규정하던 것은 우리들과 다른, 조선족이라는 정체성이었다.

 손쉬운‘먹잇감’연예인에 대한 무차별적 비난

이런 폭발적인 담론 생산은 다른 영역이 그만큼 쌍방향적이지 못하며 장점과 단점이 적나라하게 드러날 정도로 소통이 원활하지 못하다는 점을 반증하는 것이다. 문화예술과 종사자들에 대한 비난은 여타 것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쉽다’. 하지만 다른 영역에 대한 가치판단과 불만, 혹은 비난이 존재하지 않을까? 하지만 그런 목소리들은 너무나도 쉽게 묻힌다.

‘떡값 검사’들에 대해 관대하지만 연애에 실패했을 뿐인 여성 아나운서에게는 잔인하다. 조선족의 성공스토리에 감동하지만 그가 또 조선족이기 때문에 비난한다. 노래는 잘하지만 노래에서 다른 가수들에 비해 ‘깊이’를 느낄 수 없을 것이라 반대한다. 사실 맘대로 되는 것은 없다. 하지만 그 효과가 텔레비전이나 참가자들의 눈물, 그리고 고통을 통해 즉각적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내가 무언가를 하고 있다”라는 착각을 갖기에는 쉽다.

취향의 문제, 쌍방향적인 소통을 다른 영역으로 적극적으로 확대할 필요가 있다. 어느 사회에나 분노와 불만은 존재한다. 우리나라 연예인들은 너무 많은 ‘부담’을 짊어지고 있다. 경제적 고통은 조선족에 대한 편견으로 이어지고 있으며, 문화적 ‘깊이’에의 강요는 공연, 뮤지컬 등 ‘고급스런’ 문화에서 쉽게 소외되기 때문으로 해석할 수 있다. 우리의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은 너무나도 많다. 하지만 ‘분노’와 ‘비난’의 대상을 정하는 것은 지금보다 더 냉정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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