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 주석이 사망한 지 1년이 지났다. 지난해 7월 그의 죽음 이후 언론이 앞장서 조성했던 한여름의 공안정국이 기억에 새롭다. 그로부터 1년, 언론이 조장한 서로에 대한 증오감은 국민 모두에게 많은 대가를 요구했다. 죽기 전에 고향땅을 밟아보려던 수많은 이산가족의 기대는 물거품이 되었고, 정부당국 또한 코앞에서 벌어지는 북미회담을 강건너 불구경하는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간 언론의 남북관계 보도는 그들에게 ‘반통일적’이라는 형용사를 붙여 주기에 충분했다. 냉전적 대결의식이 상업주의,선정주의와 어울린 무책임의 상황, 그것이 남북관계, 통일문제에 관한 언론의 모습이다. 어느 누구보다도 뼈아픈 반성과 자각으로 해방·분단 50년을 맞아야 하는 사람은 바로 언론인인 셈이다.

이런 시점에서 언론 3단체가 남북언론인회담을 제안하고 남북관련 보도·제작 준칙안을 발표한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특히 남북언론인이 아무런 조건없이 만나자고 한 제의는 문화예술 등 다른 분야에 비해 크게 뒤떨어져 있는 언론부문에서의 진정한 자주교류의 출발로 여겨질 만하다.

이같은 노력이 결실을 맺기 위해서는 남북의 언론인뿐만 아니라 당국을 포함한 관계당사자 모두의 이해와 협력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이번에 언론 3단체가 의제나 장소를 정하지 않은 것은 그간 조건과 단서가 붙은 교류제의가 실제 추진과정에서는 난관에 부딪혀 좌초되었던 경험을 감안한 것이라고 한다.

따라서 남북언론인 회담의 내용은 일단 전적으로 쌍방 주체들의 자주적 결정에 맡기는 것이 바람직하다. 당국간의 정치적 이해관계가 끼어들어 실패한 예는 경협 등의 사례에서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우리는 이같은 언론 3단체의 진의를 북쪽의 언론단체가 수용해 하루빨리 회담이 성사되기를 기대한다. 이와 관련 북쪽의 언론은 우리와 근본적으로 다르다, 북쪽은 가만히 있는데 우리가 먼저 나설 필요가 있는가 하는 식의 비판이 있을 줄 안다.

그러나 이같은 인식은 남북 관계의 진전을 위해서나 우리 사회의 개혁을 위해서나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 우리의 생각이다. 우리의 문제부터 해결해 나가려는 자세가 결국은 상대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길임을 우리가 믿고 있기 때문이다.

이같은 맥락에서 우리는 이번 회담제의와 함께 발표된 남북준칙안의 의의를 평가하고자 한다.

언론의 본령은 보도에 있는 만큼 통일에 기여하는 언론 활동을 펼치겠다는 3단체의 의지는 아직도 냉전적 사고방식을 이용한 상업주의가 활개를 치는 언론계 현실에서 매우 의미있는 결의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노력이 성과를 거두려면 언론계 내부의 실천의지를 모으는 일과 함께 정책적 뒷받침도 필요하다. 기본적 인권조차 침해하고 있는 국가보안법의 폐지 문제도 언론의 자유와 연계시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정부는 국민적 합의를 바탕으로 일관성있는 통일정책을 추진해야 하며, 그 일환으로 남북관계 보도준칙을 어떤 형태로든 제도화하는 데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이미 1970년대에 독일에서 동서독관계 언론 준칙을 법제화한 예도 있다.

어쨌든 이번 회담제안에 이은 향후 언론계의 실천이 매우 주목된다. 해방 50년을 맞아 언론인들이 제 역할을 찾고자 하는 이같은 활동이 성과를 맺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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