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5월 15일 오후, 대기실을 나서 무대로 뚜벅뚜벅 걸어갔다. 평소라면 입어볼 리 만무한 베이지 수트 차림에 얼굴에 분까지 바른 내 모습, 암만 봐도 어색했다. 서울 마포아트센터 아트홀맥 객석은 800여명의 관객들로 가득 들어차 있었다. 마이크를 잡고 입을 뗐다.

“반갑습니다, 여러분. 지금부터 한겨레신문 창간 22주년과 하니TV 개국 1주년을 축하하는 ‘착한 콘서트 두드림’ 공개방송의 막을 올리겠습니다.”

나는 이날 행사의 사회자였다. 대중음악 담당 기자라는 이유로 떠안게 된 임무였는데, 싫지 않았다. 아니, 드러내진 않았지만 속으로 기뻤다.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많은 이들에게 소개한다는 게 얼마나 신나는 일인가!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 이진원 씨의 생전 공연 모습.
 
“괜찮아, 잘될 거야~” 하고 행복한 주문을 노래한 이한철, 홍대앞 인디신의 원조 아이돌 노리플라이, 나와 함께 사회를 본 여성 싱어송라이터 시와, 길거리 공연의 제왕 좋아서하는밴드, 한국 록의 미래를 짊어진 차세대 스타 국카스텐까지 대부분 알고 지내는 사이였다. 이날 처음 안면을 튼 이가 있었으니, 바로 1인밴드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 이진원이었다.

그도 나를 알고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그를 알고 있었다. 인터뷰를 한 적은 없었지만, 몇년 전 그의 앨범을 신문에 소개한 적은 있다. 그의 공연도 여러 차례 봤다. 대기실에서 처음 인사를 나눈 우리는 이내 편한 사이가 됐다. 나이도 동갑이었다. 그날따라 무대 위에서 노래하는 그의 모습이 더 멋져 보였다.

공개방송을 마치고 조촐한 뒤풀이를 했다. 나와 이진원은 소주잔을 기울이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그는 10년 넘게 인디 뮤지션으로 살아오면서 행복했던 일, 답답했던 일들을 허물없이 털어놨다. 그렇게 우린 술에, 음악 얘기에 취해갔다.

그날 이후 ‘또 한잔 해야지’ 마음만 먹었지 바쁜 생활을 핑계로 실행에 옮기지 못한 채로 몇 달이 흘렀다. 그러던 중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들려왔다. 이진원이 뇌출혈로 쓰러져 목숨마저 위태롭다는 것이었다. 착잡한 마음으로 관련 기사를 쓰며 9회 말 투아웃 투스리 풀카운트 역전만루홈런을 간절히 기원했다. 하지만 며칠 뒤 그는 세상을 떴다.

그는 생전에 ‘도토리’라는 곡을 통해 뮤지션에게 지나치게 불합리한 디지털음원 수익배분구조를 비판했다. 이는 음악계의 오랜 논란거리였다. 그의 죽음을 계기로 이에 대한 문제 의식이 급속도로 퍼져나갔다. 사람들은 창작자와 뮤지션들에게 정당한 권리가 돌아가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얼마 뒤 이진원의 유족과 몇몇 음악 동료들이 모였다. 황망하게 간 고인을 기리는 추모공연이라도 한번 제대로 해보자는 마음에서였다. 나도 그 자리에 있었다. 기자가 아닌 고인의 친구로서였다. 이후 공연을 준비하는 데 있어 보도자료 작성 등의 일을 도왔다.

지난 1월 27일 홍대 앞 일대에서 펼쳐진 달빛요정 추모공연은 고인을 기리는 마음을 한바탕 축제로 승화한 자리였다. 101개 팀이 출연료 없이 참가했고, 26개 클럽이 무대를 거저 내줬다. 단일 공연으론 유례없는 규모다. 자원봉사자만도 300명이 모였고, 준비한 티켓 4500장이 순식간에 동이 났다.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 밴드에서 키보드를 맡았던 유승혜는 “오늘처럼 홍대 앞이 홍대 앞다웠던 적이 언제인지 모르겠다”고 했다. 달빛요정 이진원이 우리에게 준 마지막 선물이었다.

또 몇 달이 흘렀다. 이제 사람들 기억에서 달빛요정은 서서히 잊혀져간다. 한창 떠들썩하던 디지털음원 수익배분구조 문제는 언제 그랬냐는 듯 쏙 들어갔다. 사람들은 이제 <슈퍼스타K>, <위대한 탄생> 같은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과 절창 올림픽과도 같은 <나는 가수다>에 열광한다. 언제나 절감하는 사실이지만, 대중은 늘 역동적이다.

어젯밤 인터넷한겨레 하니TV에서 지난해 5월 공개방송 실황을 다시 봤다. 달빛요정은 행복한 표정으로 노래하고 있었다. 그걸 보며 좀 더 치열하게 기자 생활을 해야겠다고 마음먹는다. 디지털음원 수익배분구조를 비롯해 이 땅에서 음악하는 이들에게 불편부당한 일이 너무 많다. 좋은 음악을 찾아 소개하는 일도 좋지만, 기자로서 해야 할 또 다른 일들도 잊어선 안되겠다고 날 채찍질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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