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드라마라는 매체는 지상파의 전유물이었다. 제일 많은 인력이 소모되는 장르이기도 하고, 그에 따른 상대적으로 높은 작가료 등 과도한 제작비는 상대적으로 자금력이 부족한 케이블 채널들의 참여를 가로막는 장벽과 다름없었다. 또한 케이블 채널이라는 이유로 연기자들이 출연을 꺼려하는 산업적 한계 또한 빼놓을 수 없다.

하지만 CJ E&M을 필두로 케이블 채널들의 자체제작 붐이 일어나면서 케이블 채널들의 자체제작 리스트에서 드라마를 찾아보는 것이 어려운 일은 아니게 되어 버렸다. 하지만 드라마를 포함, 지상파가 과점하고 있는 방송시장에서 케이블 자체 제작 컨텐츠는 CJ의 <슈퍼스타K> 시리즈를 제외하고 아직까지는 많은 성과를 거두고 있지 못하다. 성공한 케이블 컨텐츠들을 살펴보면 그 특징이 명확하다. 바로 ‘지상파에 없는 것’을 보여주는 것. 케이블 컨텐츠가 성공하려면 바로 그 차별성이 두드러지게 드러나야 한다.

슈퍼스타 K로 보는 케이블 컨텐츠 성공 조건 "지상파에 없는 것 보여줘야"

드라마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지상파에서 고정적인 시청률을 확보하고 있는 <선덕여왕>이나 <근초고왕> 같은 '에픽‘(Epic)형 사극, 막장 논란을 자주 일으키는 일일극 혹은 가족극이란 범주에서 지상파와 대등하게 경쟁하기란 쉽지 않다. “이 채널에서만 볼 수 있다.”라는 소재적 차별성을 바탕으로 지상파와 다름을 끊임없이 어필해야 한다. 그것이든 소재이든, 캐릭터이든 말이다.

   
E채널 드라마 '빅히트'
 
지난 주 목요일 5회를 방영한 케이블 채널 ‘이채널’의 자체제작 드라마 <빅히트>가 취한 전략은 그런 의미에서 흥미롭다. <빅히트>는 ‘인생을 낭비한 죄’로 그간 쌓아올린 모든 것을 잃은 작곡가 겸 프로듀서 황좌수(박성웅)와 그의 파트너였지만 이제는 막강한 연예권력을 자랑하는 거대 기획사 대표가 된 구본걸(이주현)의 대립 속에서 각자의 사연을 간직한 네 젊은이들이 최고의 신인 아이돌 그룹으로 성장해 가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연예인’이라는 꿈을 키워간다는 점에서 KBS <드림하이>와의 비교를 피할 수 없어 보인다. 하지만 <빅히트>는 무조건적으로 “그래도 꿈을 아름다운 것”이라는 봉합에 매달리지만은 않는다.

   
KBS 드라마 '드림하이'
 
흥미로운 것은 <드림하이>가 사채업자가 꿈을 위해 후원자가 되는 식의 낭만적 설정으로 넘어가거나 “결국 꿈을 이루는 나 자신”이라는 식으로 꿈꾸는 자 스스로의 갈등을 보여준 반면, <빅히트>는 주인공들을 둘러싼 외부적 위협에 방점을 찍고 있다는 점이다. <빅히트>에서 그 외부적 위협과 불안요소를 상징하는 인물로 설정되어 있는 구본걸은 그런 의미에서 중요하다. 드라마에서 구본걸은 은하(최아라)가 속해 있는 최고 인기 걸그룹 ‘트윙클’의 소속사 대표로 대한민국 연예계를 쥐락펴락하는 인물로 설정되어 있다. 오디션에 참가한 지망생들에게 독설과 막말은 기본이며, 저작권 강탈이나 뇌물/성상납, 스캔들 조작 등 권모술수에도 능하다.

착한 성장 드라마 '드림하이'vs현실의 외부적 위협 주목하는 '빅히트'

황좌수와 함께 “음악이 그 자체로 말을 거는” 이상을 꿈꿨지만 황좌수가 몰락하고 성공을 위해 지극히 현실적인 인물로 변해버린 구본걸은 <빅히트>가 <드림하이>와 다른 가장 큰 이유이다. 노래를 하게 해달라 찾아온 김산에게 “머리로는 이해되지만 가슴으로는 안되는 것”이라며 김산의 소년원 출신을 언급하는 구본걸의 말은 그런 의미에서 상징적이다. 아무리 음악성이 뛰어나다 해도, 상품으로서 자리하게 되는 아이돌에게 “그가 사회적으로 성공한 것을 인정할 수 있는가”라는 대중의 판단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위대한 탄생>의 백청강이나 <서바이벌 나는 가수다>의 임재범에서 알 수 있듯 시청자/관객들은 음악만을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가수) 자체를 소비하고 있지 않은가.

   
E채널 드라마 '빅히트'
 
그런 의미에서 <빅히트>에서 구본걸의 과거는 극의 전체 주제와도 연결된다. 이상주의로 대변되는 황좌수와 한때는 이상주의자였으나 지독한 현실주의자로 변모한 구본걸의 대립에서 드러날 과거가 구본걸이 어떻게 ‘허황된’ 이상을 버리고 피도 눈물도 없는 현실주의자가 되었는가를 보여줄 것이기 때문이다. 구본걸이 극에서 언급하고 또 보여주는 현실은 우리 사회의 현재 모습과도 닮아있다. 걸그룹 멤버의 가족이 가진 약점을 통해 노예계약을 유지하고, 불공정 계약을 통해 저작권을 ‘날로’ 먹었지만 그것이 곧 실력이라는 식으로 인정받는다. 하지만 그게 ‘현실’이라는 것을 우리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빅히트>가 택한 전략은 소재는 익숙하게, 하지만 표현과 그를 위한 디테일은 현실적으로라는 방법이다. 지상파 드라마는 ‘꿈’이라는 소재를 다루는데 있어서 ‘착’하다. 이후 구본걸의 과거와 현재 성공을 유지하기 위한 방법을 통해 보여질 연예계의 현실은 우리 사회의 그것과도 많이 닮아 있는 것이 사실이다. 물론 드라마적 봉합은 불가피하다. 하지만 <빅히트>가 구본걸을 통해 사실적으로 보여줄 ‘과정’은 이런 의미에서 충분히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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