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초 김영삼 대통령이 14일 동안 유럽 6개국을 순방한 직후 국내 언론게엔 몇몇 현지 언론의 특이한 보도태도가 화제로 거론된 적이 있다.

프랑스를 방문한 2월2일과 4일 사이, 대부분의 프랑스 언론들은 우리 방문단을 냉대했으나 유독 일간신문<피가로>가 김대통령 단독 인터뷰를 실어 눈길을 끈 것이다.

<피가로>의 김대통령 인터뷰가 도드라져 보인 이유는 당시 프랑스는 차기대통령 선거열풍에 휩싸여 있었고 따라서 한국 대통령의 방문에 대해 프랑스언론들이 ‘냉대’를 보였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눈에 띄인 것이다.

그런데 <피카로>의 보도는 결코 자발적이거나 우호적인 상황에서 나온 것이 아니었다.

당시 우연히 순방일행 취재를 했던 한 월간지의 기자는 “이 회견은 우리측 공보관계자들이 오래 전부터 공을 들여 주선한 회견이었다. 이는 나중에 공보관계자들이 솔직히 털어놓은 것이다”고 폭로했다.
며칠 뒤 이뤄진 영국 순방시에는 <더타임스>지가 ‘한국특집’을 내보면서 우리나라의 정치, 경제, 사회상황 등을 자세히 소개해 수행기자들은 물론, 교민들을 어리둥절하게 했다.

여기에도 일종의 ‘공작’이 있었다. 타임스지의 환대는 국내 기업체들이 이 특집면에 ‘광고’를 싣는 것을 조건으로 제작된 것으로 알려진 것이다. 당시 유럽순방에 김대통령이 대등한 기업인은 무려 64명이었다. 김대통령 취임후 이뤄진 해외순방에선 가장 큰 규모를 기록한 숫자다. 이들 기업인들이 뿌린 돈으로 영국언론의 ‘환대’가 이뤄진 셈이다. 이같은 외국언론사를 통한 홍보작업은 대부분 현지 대사관에서 주관한다는게 청와대 관계자의 얘기다.

이처럼 대통령이 해외순방을 나설때면 거의 어김없이 ‘홍보공작’이 이뤄진다. 외국의 수반이 우리나라에 들어올 때 이런 모습을 좀처럼 찾아 보기가 힘들다는 사실과 비교하면 낯 뜨거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 일부 정치부기자들은 과거 군사정권의 유산이라고 말한다. 이들 군사정권이 정통성을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데다 인권탄압국의 오명을 씻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던 만큼 해외순방시 이미지 제고를 위해 사전홍보가 절대 필요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세계 유수 언론매체를 통한 홍보는 해당국가를 대상으로 한 이미지 개선의 목적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우리 대통령이 해외 유수언론으로부터 호감을 샀다”는 식의 국내용 언론플레이의 목적도 있었던 것으로 풀이된다.

그런데 그같은 관행이 소위 문민정부에 들어와서도 반복되고 있다는 데 문제가 있다. 일부에서는 약소국의 설움이라고 표현하고 있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권위주의 형태가 바뀌지 않고 있다는 반증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이런 관심에서 이번 미국방문을 앞두고 워싱턴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부 국내 언론사의 형태는 따가운 눈총을 받고 있다. 클린턴대통령과 인터뷰를 하기 위해 로비스트까지 고용했다는 설이 미국정가와 워싱턴 주재기자들 사이에서 유력하게 나돌고 있고 한편에서는 청와대의 지원설도 떠돌고 있다.

이에대해 언론계에서는 지자체선거 이후 위기를 맞고 있는 김영삼정부가 이번 방미를 정국돞라용 카드로 활용하려는게 아닌가 하는 의혹을 보내고 있다. 특별한 현안이 없는데도 일부 언론사가 무리하게 클린턴대통령과의 인터뷰를 추진하는 것과 관련, 어느 정도 정5권과의 교감아래 국내 분위기 반전을 노린 것이 아닌가라는 시선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대통령의 해외순방이 구설수에 오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은 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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