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보처가 내놓은 선진방송 5개년 계획안은 일부 긍정적인 측면에도 불구, 한국방송의 상업주의 및 종속화를 심화시키는데 적지않은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이번 계획안은 그동안 나왔던 각계각층의 여러 의견을 종합한 흔적이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방송의 자유경쟁을 통한 산업화를 달성한다는 이념적 기조는 우리나라의 정치, 경제, 문화현실에 비추어 볼때 적절치 않은 부분이 많다. 방송의 권력분립, 그리고 프로그램의 자주성 확보가 그 어떤 이념보다 강조돼야 하는데도 공보처의 안은 이에 대한 고민의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우선 통합방송위는 그 기능면에 있어서나 위원 선임 방식에 있어서 방송의 독립성을 보장할 수 없을 뿐더러 일반 국민의 방송권을 증대시키기 위한 어떠한 보장도 해주지 못하고 있다.

또한 KBS 이사 및 사장선임, 그리고 방송문화진흥회 이사 및 MBC 사장선임의 방식에 있어서도 시민의 적극적 참여나 방송사 종사자들의 입장을 반영하려는 의지가 보이지 않는다. 예전과 다름없이 방송권력=정부권력이라는 등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다만 정수장학회가 소유하고 있는 MBC 주식의 30%를 환수, MBC 를 공영방송 체제로 유지한다는 공보처의 생각은 대단히 적절한 것으로 평가된다.

만약 공보처 안대로 방송구조개편이 진행된다면 프로그램 공급 능력이 낙후된 우리 현실에 비추어 볼때 외국프로그램에 의존하는 차원을 넘어 프로그램의 식민지화가 우려된다. 이점은 이미 개국된 케이블TV에서도 극명하게 드러났다. 거대한 자본력과 노하우를 보유한 외국위성채널을 케이블TV가 중계할 수 있도록 허용한다는 방침은 우리나라 방송의 파탄을 재촉하는 심각한 문제를 낳을 수 있다.

이번 개편안이 완결판이 아닌 중간보고서임을 감안하더라도 국가 중대사인 방송산업구조를 주먹구구식으로 재단한 흔적은 우려된다. 예컨대 방송광고공사의 구조적 재편을 포함한 근본적인 개혁을 생각지 않고 협의체를 두어 일시적으로 문제점을 회피해 나가려는 것도 문제다.

그밖에 정부가 가진 방송행정기능을 축소하고 미국의 연방통신위원회(FCC)처럼 독립적인 민간기구에 맡겨둘 생각을 하지 않고 국무총리 산하에 협의체를 두어 부서간의 이견을 조정한다는 발상도 실효성이 의심된다.

교육방송 공사화가 실현되지 못했지만 KBS에 통합하려던 계획을 백지화하고 내년까지 개편안을 다시 설계하겠다는 공보처의 정책적 전환은 일단 지켜볼 일이다.

여기서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사안은 이제 방송은 더 이상 정부나 돈많은 대기업이 독점할래야 독점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정부나 대기업의 힘만으로 방송시장 개방의 거센 파고를 막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방송의 권력분립, 다시 말해 국민에게 방송권을 되돌려 준다는 전략적 이념이 절실히 요구된다.

필자는 국제경쟁력 강화, 또는 산업화의 제고를 반대하지 않는다. 또한 상업성을 반대하지 않으나 공보처가 주장하는 방송의 상업주의화에는 반대한다. 그리고 방송의 정치적 문화적 개방은 지지할만하나 종속은 절대 인정할 수 없다.

이런 여러점을 감안할때 방송정책 및 행정기능을 조속한 시일내에 헌법적 기구인 ‘한국방송통신위원회’를 설치, 이곳에 이양하는 것이 마땅하다. 공영방송을 비롯한 방송사 경영진의 선임도 방송청문회등의 시민적 검증절차를 밟도록 하는 것이 국가적인 차원에서 유리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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