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7 재·보궐선거에서 강원도지사에 최문순 전 민주당 의원이 당선된 것과 관련해 선거운동 기간 동안 엄기영 한나라당 후보(전 MBC 사장)가 최 후보의 천안함 의혹 제기 전력을 집요하게 쟁점화한 북풍몰이 전략이 전혀 먹히지 않은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선거관리위원회의 공식 개표 결과 북한과의 접경지역과 군 밀집지역에서조차 최 후보가 높은 득표율을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선거운동 기간 중 강원도 여론과 민심을 취재했던 현지 기자들은 ‘최 후보는 천안함이 북 소행이라는 것을 안믿는다’는 식의 엄 후보측 색깔론이 되레 역효과를 일으킨 것이라는 의견을 냈다.

   
4.27 강원도지사 선거 개표결과 중 군 밀집지역 개표율 분석. 그래픽 허완 기자
 
28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강원도지사 선거 개표 결과에 따르면 강원도내 18개 시·군 가운데 최문순 후보가 11곳에서 앞섰고, 엄기영 후보는 7곳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고성·인제·홍천·화천·양구·철원 등 6곳의 군 밀집지역 가운데 고성과 철원을 제외한 4곳에서 최 후보가 엄 후보를 앞선 것으로 나타났다.

엄 후보는 선거운동 기간 동안 열렸던 다수의 TV 토론 내내 최 후보를 상대로 ‘천안함 사건에 대한 정부 발표를 못믿느냐’고 몰아세웠고, “접경지역인 강원도의 도지사는 국가관이 명확해야 한다”며 천안함 사건 진상조사 특위 위원으로 정부 발표에 강한 의혹을 제기한 최 후보를 공격했다.

특히 엄 후보는 선거 막판에 자신의 강릉 펜션 불법선거운동 사실이 폭로되자 “천안함 사건에 대한 최문순 후보의 답변에 화가 난 자원봉사자들이 스스로 나서 전화 자원봉사를 했다”고 주장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선거결과는 엄 후보의 패배로 끝이 났고, 북한과의 접경지역 또는 군 밀집지역에서의 득표수도 최 후보에 밀렸다.

   
최문순 민주당 강원도지사후보와 이광재 전 강원도지사, 한명숙 전 총리가 저녁 8시40분경 강원도 춘천 선거사무소에서 개표방송을 시청하며 분당 출구조사 발표에 박수를 보내고 있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이를 두고 지역민심을 오랫동안 접해온 현지 기자들은 강원도 주민들이 정부의 천안함 발표에 의문을 제기한 국회의원을 더 이상 빨갱이로 보지 않을 정도로 정치의식이 달라졌고, 천안함 정부 발표를 신뢰하지 않는 주민들도 많은 것으로 분석했다.

7년 여 동안 강원도민일보에 있다가 1년 여 전 국민일보로 옮겨 강원도에서만 8년 가까이 기자생활을 하고 있는 정동원 국민일보 기자는 28일 천안함 정부발표에 대한 강원도민들의 인식을 가늠할 만한 경험담을 소개했다.

정 기자에 따르면, 그가 한두달 전 민방위 훈련에 참가했을 때 한 강사가 ‘천안함의 진실’이라는 주제로 강의하던 중 교육을 받던 주민들의 항의로 강의가 진행되지 못했다. 한 주민이 강사에게 ‘왜 우리에게 정부 발표를 앵무새처럼 교육하느냐, 이런 강의는 더 이상 듣고 싶지 않다’고 강하게 항의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더 이상 강의를 진행할 수 없게 됐다는 것. 그는 이를 보면서 "강원도민들의 의식 수준이 과거와는 다르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정 기자는 “엄기영 후보가 최 후보의 과거 천안함 의혹 발언을 쟁점화하기 시작해 급기야 강릉콜센터 사건이 터졌을 때도 ‘최 후보의 천안함 관련 발언에 격분한 분들이 스스로 자원봉사에 나섰다’고 말하는 등 천안함으로 물타기까지 하려 했지만, 이를 보고 믿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며 “전체 투표 결과 뿐 아니라 접경지역 등의 표심을 보면 더 이상 천안함 색깔론이 효과가 없을 뿐 아니라 되레 반감을 불렀다는 해석이 가능하다"고 분석했다.

그는 “최 후보가 국회의원으로서 의문을 가진 국민을 대표해 천안함 의혹을 제기할 수 있다는 데 대해 강원도민들이 공감했던 것 같다”며 “천안함 정부 발표를 완전히 믿지는 못하겠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고 덧붙였다.

박대용 춘천MBC 기자는 “천안함 이슈는 나이든 분들에게는 아직 먹히지만 대부분은 (정부의 발표에 대해) 콧방귀를 뀐다”며 “엄 후보가 첫 토론회(GTV)에서 이 문제를 제기할 때 만해도 관심을 얻은 것 같았지만 매번 토론회 때마다 동일한 얘기를 반복하면서 많은 유권자들이 흠집내기 위해 천안함을 들고 나왔구나라는 인상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고 해석했다.

지난해 말부터 춘천에 배치된 장용진 불교방송 기자도 이날 “최 후보의 천안함 의혹 전력을 문제삼는 엄 후보의 전략이 통했다면 접경지역과 군 밀집지역에서 이겼어야 했으나 상당부분 졌고, 일부 지역은 큰 표차로 최 후보가 이겼다”며 “강원도민들도 천안함 정부 발표를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은 거의 없다. 뭔가 흑막이 있지 않겠느냐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분석했다.

   
지난 26일 KBS 춘천방송총국에서 방송된 엄기영 강원도지사 후보연설 장면
 
특히 북한과의 접경지역이 많은 강원도야말로 이명박 정부의 대결적 남북 정책으로 지역 경기가 크게 침체돼 큰 어려움을 겪으면서 남북교류의 필요성과 평화의 중요성을 실감하고 있는 지역인 만큼 과거와 같은 색깔론은 더이상 먹히지 않는다는 분석도 나왔다.

장 기자는 “강원도는 색깔론을 잘못 제기하면 정말 큰 역풍을 맞는다”며 “고성과 속초는 지난 정권 때 이산가족 상봉 등 남북교류 활성화로 특수를 누렸으나 현 정부 들어 남북관계가 단절되면서 먹고 살 것이 없어졌다는 목소리가 나올 정도”라고 설명했다.

정동원 기자도 “강원도민 가운데 노년층은 여전히 보수색채가 강하지만 다른 이들은 연평도 포격사태를 보면서 평화를 더 바라는 여론이 높아졌다”며 “금강산 교류가 중단돼 생긴 피해액이 900여 억 원에 이른다는 통계가 나올 정도”라고 진단했다. 그는 “이번 선거결과는 현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한 불만이 우회적으로 표출된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번 선거에선 엄 후보의 강릉 펜션 사건이 막판 선거 민심에 큰 영향을 줬다는 분석도 나왔다. 박대용 춘천MBC 기자는 영동과 접경지역에서 최 후보가 높은 득표율을 보인 이유에 대해 “한나라당 전통 지지층이 아예 투표장에 나가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강릉 펜션 사건을 보면서 평생 투표 한 번 안해본 일 없는 한 어르신이 이번 투표당일에 놀러갔을 정도”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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