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바꾸는 게 불가능한 건 아니다. 우리가 내는 세금만 제대로 써도 얼마든지 지금보다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다. 선대인 김광수경제연구소 부소장은 최근에 펴낸 '세금혁명'에서 납세자 권리 찾기를 넘어 판을 뒤집는 '혁명'이 필요하다고 선언한다. 그가 트위터에서 장난처럼 '세금혁명당'을 만들자고 제안했더니 사흘 만에 당원으로 가입하겠다는 팔로워들이 1천명을 넘어섰다. 그만큼 대충 걷고 아무렇게나 낭비되는 혈세에 불만이 높다는 이야기다.

공공부문 부채 1171조원…누가 나라 망치나

김광수경제연구소가 공공부문 채무를 집계한 결과 지난해 9월 기준으로 공공부문 확정채무가 1171조원에 이른다는 분석이 나왔다고 한다. 올해 정부 예산안 309조원의 거의 네 배에 이르는 규모다. 여기에 국민연금과 국민건강보험 등의 잠재 채무를 더하면 공공부문 부채가 2900조원에 이른다는 분석이다. 선 부소장에 따르면 "김광수경제연구소 직원들도 너무 놀라워서 한동안 결과를 믿기 어려울 정도였다"고 한다.

문제는 공공부문 부채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급증했다는데 있다. 국채는 2008년 말 280조원에서 지난해 9월 365조원으로 불어났고 LH공사와 한국전력 등 공기업채도 198조원에서 308조원으로 불어났다. 공기업 이자 부담만 해마다 11조5천억원에 이른다. 빚이 빚을 낳는 악순환 국면에 들어섰다는 이야기다. 이쯤되면 695억원의 의무급식 예산을 두고 난리법석을 떨었던 오세훈 서울시장에게 묻고 싶어진다. 누가 진짜 나라를 망치고 있는가.

서울시는 기초생활 수급자가 2009년 21만720명에서 지난해 22만1852명으로 늘어났는데도 지원 예산을 5292억원에서 4759억원으로 줄였다. 노인 일자리 사업 지원이나 종합복지관 운영 지원비, 소년소녀가장 지원비, 노숙인 보호 및 자활 지원비, 치매센터 운영비, 가사·간병 서비스 바우처 지원비 등도 줄였다. 모두 수십억에서 수백억원 정도의 서울시 전체 예산에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작은 규모지만 저소득 계층에게는 큰 타격이 된다.

그런 서울시가 지난해 시정 홍보에 쓴 돈은 491억2천만원에 이른다. 동네 뒷산 공원화 사업에 576억원, 강북 생태 문화 공원에 137억원, 남산공원 정비 사업에 316억원, 한강 예술섬에 243억원, 서남권 문화체육 컴플렉스 건립에 206억원이 배정돼 있다. 이처럼 사회복지 항목에 포함돼 있으면서 정작 따져보면 토목·건축 사업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실제로 소프트웨어형 예산은 전체 예산의 10% 밖에 안 된다는 게 선 부소장의 분석이다.

   
 
 

선 부소장은 특히 "가진 자에게 퍼주는" 저금리와 고물가, 고환율 정책을 "망국적 복지 3단 콤보"라고 비난하면서 "국민의 동의 없이 막대한 소득을 없는 자들로부터 가진 자들에게 이전한다는 점에서 악성 세금이라고 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경제 성장률이 6.1%나 되는데도 일간 가계의 체감 경기가 제자리 수준인 것도 이런 이유에서라는 이야기다. 선 부소장은 "정부 차원의 거대한 분식회계가 진행되고 있다"고 폭로한다.

정부차원의 분식회계…4대강은 수자원공사에 떠넘기기 · 민자사업으로 돌리기 등

분식회계의 첫 번째 수법은 공기업에게 빚을 떠넘기는 것이다. 4대강 정비사업의 예산 22조원 가운데 8조원을 수자원공사가 떠맡은 것이 대표적이다. 수자원공사의 부채는 2008년 1조9600억원에서 내년에는 14조7천억원으로 불어날 전망이다. 부채비율도 16%에서 135%까지 급증할 것으로 보인다. 꺼져가는 부동산 시장을 살리느라 미분양 주택을 떠안았던 LH공사도 지난 2년 동안 부채가 42조원 가까이 늘어났다.

분식회계의 두 번째 수법은 정부의 재정사업을 민자사업으로 돌리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 들어 BTO(건설-양도-운영) 방식의 사회간접자본(SOC) 투자가 줄어들고 BTL(건설-양도-임대) 방식 민자사업이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도 주목할만하다. BTL 방식 민자사업은 선 부소장의 표현에 따르면 신용카드 현금서비스나 마찬가지다. 건설회사들이 수익 전망을 부풀려 공사비용을 챙기고 일단 짓고 나면 정부가 세금을 털어 뒷수습을 하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분식회계의 절정이라고 할 수 있는 세 번째 수법은 국가 재산을 팔아먹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는 공공기업 선진화 방안에 따라 인천국제공항을 비롯해 38개 공기업을 민영화한다는 방침이다. 선 부소장은 "면밀한 검토 없이 민간 사업자들에게 알짜배기 사업을 넘겨주는 식의 민영화를 무리하게 추진하다보면 자연스럽게 헐값에 사업을 넘기게 될 가능성이 크다"면서 "공기업 민영화는 정부의 재정 부담을 줄이려는 또 하나의 편법"이라고 지적한다.

이 책에서 모범 사례의 하나로 제시된 브라질의 가족수당 제도를 살펴보면 복지 문제가 단순히 예산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합의와 정책적 의지에 달린 문제라는 걸 알 수 있다. 브라질의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전 대통령은 정부 재정지출의 2.5%를 가족수당에 투입했다. 1인당 소득이 평균 국민소득의 절반 이하인 가정에 현금카드를 지급하는 이 제도 덕분에 1억9천만명의 브라질 국민 가운데 2천만명이 빈곤을 벗어날 수 있었다.

선 부소장은 이 책에서 '세금혁명'의 20가지 강령을 제시하고 있다. 조세구조와 재정지출 구조를 개혁한다면 양쪽에서 50조원씩 100조원의 추가재정 여력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게 선 부소장이 주장하는 이른바 50/50 전략이다. 특히 무분별한 토건사업을 줄이는 동시에 경쟁입찰과 실적공사비 적산제를 도입하고 공공임대 아파트를 늘려 짓는 것만으로도 큰 효과를 볼 수 있다는 게 선 부소장의 계산이다.

세금혁명 / 선대인 지음 / 1만5천원 /더팩트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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