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동남권 신공항 필요성을 역설했다. 대놓고 이명박 정부의 선택에 반기를 든 셈이다. 그는 한나라당의 차기 유력한 대선 주자이다. 차기 대선에서 동남권 신공항 건설을 대선 공약에 넣겠다고 시사하는 발언까지 했다.

청와대나 한나라당 친이명박계 입장에서는 망치로 머리를 맞은 느낌이다. 보수언론도 마찬가지다. 이명박 대통령에게 ‘출구전략’을 마련해줬는데 한나라당 유력 대선주자가 급브레이크를 걸었기 때문이다.

보수언론은 박근혜 전 대표에게 날카로운 비판의 칼날을 들이댈 수 있을까. 4월 1일자 아침신문을 바라보는 흥미로운 관전 포인트이다.

다음은 4월 1일자 주요 아침신문 1면 머리기사

경향신문 <박근혜 "신공항 계속 추진돼야">
국민일보 <박근혜, MB에 반기…대권 행보 본격화>
동아일보 <"남들 가는 길만 가면 미래 꿈꿀 기회 업죠 도전하세요">
서울신문 <국고보조사업 지방부담 줄인다>
세계일보 <표퓰리즘 지역이기에 나라 멍든다>
조선일보 <살짝 비켜간 박>
중앙일보 <서울대 노조.총학 오연천 총장 감금>
한겨레
한국일보 <'신공항 전선' MB-박근혜 또 틀어지나>

동남권 신공항 문제는 대단히 예민하면서도 휘발성이 큰 사안이다. 한나라당의 텃밭 중 텃밭이라는 영남 지역의 정서가 관련돼 있는 문제이다. 영남 쪽에서 이명박 정부에 대한 비판 정서가 고조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 입장에서는 난감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이미 세종시 수정안 문제로 충청 지역과 갈등을 빚은 바가 있다. 호남과 강원도 제주 등 다른 지역 역시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지역소외론을 제기하고 있다.

영남 그것도 대통령 고향인 포항 중심의 예산 지원 등이 이어지고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다. 정부는 균형 발전을 주장하고 있지만, 지역민들의 피부에 와닿지 않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안방’에서 다시 한번 이명박 정부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동남권 신공항 문제에 대한 판단에는 몇 가지 전제조건이 있다. 동남권 신공항은 불필요한 국책사업인지 판단하려면 근거가 있어야 한다. 근거의 중요한 기준은 전문가로 구성됐다는 정부의 이번 실사단이 정말로 치밀하고 냉철하고 객관적으로 검증을 했는지에 대한 평가이다.

결과를 정해놓고 끼워 맞추기를 했다면 동남권 신공항 문제의 필요성에 대한 평가는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영남 지역민들의 여론에 동의를 구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부를 비롯해 보수언론 등은 국책사업은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타당한 주장이다. 문제는 천문학적인 예산이 들어간 4대강 사업에는 이러한 ‘신중한 잣대’를 들이대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이번에 보수언론이 내놓은 동남권 신공항은 불필요한 국책사업, ‘예산 먹는 하마’라는 인식은 위기에 몰린 이명박 대통령의 출구전략으로 바라보는 시각도 이 때문이다.

문제는 박근혜 전 대표가 이와 정반대의 주장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보수언론이 자신들의 논리에 충실하려면 박근혜 전 대표를 강한 어조로 비판했어야 한다. 정말 그렇게 했을까.

   
동아일보 4월 1일자 사설.
 
동아일보는 <지역 걱정은 좋지만 표퓰리즘은 자제를>이라는 사설에서 박근혜 전 대표의 '동남권 신공항' 대선공약 시사발언을 언급하면서 "정치인들의 낙후한 지방경제를 걱정하는 마음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수도권이나 충청권에 비해 영남권 호남권이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이 큰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진정으로 지역 주민을 위한다면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일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동아일보의 이러한 시각은 비판인자 조언인지 읍소인지 헷갈릴 정도이다. 동아일보 사설에서는 박근혜 전 대표의 선택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의 칼날은 보이지 않는다.

중앙일보는 <신공항 논란 뛰어든 박근혜>라는 사설을 실었다. 사설을 보면 박근혜 전 대표를 겨냥해 비판의 칼날을 세운 것처럼 보인다.

   
중앙일보 4월 1일자 사설.
 
그러나 중앙일보 역시 박근혜 전 대표를 정조준한 비판이라기보다는 우회적인 비판을 선택했다. 중앙일보는 "이 대통령이 공약을 지키지 못한 것을 비판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그것이 또 다른 공약으로 쉽게 이어져서는 안 된다. 그런 점에서 박 전 대표는 여러 가지를 신중히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주문했다.

조선일보는 <신공항 백지화 하루 만에 "또 공약하겠다"는 여야>라는 사설을 실었다. 사설 제목부터 비판의 시선을 박근혜 전 대표가 아닌 여야로 분산시켰다.

조선일보는 "대통령이 공약을 하고 이를 지키지 않는 행위 그 자체는 비난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선거 때마다 남발해온 선심성 공약을 공약했으니 무조건 지켜야 하는 것처럼 주장하는 것은 무책임한 짓”이라고 비판했다.

조선일보는 무책임한 짓이라는 표현을 썼으나 그 대상이 박근혜 전 대표인지는 불분명하다. 조선일보는 사설부터 <“또 공약하겠다”는 여야>라고 뽑으면서 여야 모두를 비판하고 있기 때문이다.
보수언론들은 박근혜 전 대표를 향한 비판에 주저하는 모습을 보였다. 더불어 이명박-박근혜 두 여권 실력자들이 정면충돌하는 것을 경계하는 모습도 보였다.

한겨레와 조선일보의 시각은 참으로 흥미롭다. 한겨레는 라는 1면 머리기사에서 "'약속위반'을 거론한 것은 누가 봐도 이 대통령을 겨냥한 대목이다. 다가오는 대선 경쟁에서 스스로 후보를 쟁취하겠다는 '홀로서기' 선언으로 들린다. 최근까지 지속된 이 대통령과의 유화 국면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에게 기대거나 얹혀 가지는 않겠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한겨레 4월 1일자 1면.
 
한겨레는 "정치적 상황에 따라선 '결별'도 각오하겠다는 경고의 의미도 담겨 있는 것 같다"고 주장했다.

반면 조선일보는 <살짝 비켜간 박>이라는 1면 머리기사를 통해 "이번에는 이 대통령을 직접 거론하지 않았다"면서 "이 때문에 '박 전 대표가 '세종시' 때는 이 대통령과 맞서 충청권 민심을 잡으려 했다면, 이번 '신공항'에서는 이 대통령과 맞서지 않는 선에서 영남권 민심을 끌어당길 수 있는 경계를 고민한 것 같다'는 분석이 나왔다"고 평가했다.

   
조선일보 4월 1일자 1면.
 
조선일보와 한겨레의 판단과 분석은 극과 극이다.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전 대표의 갈등의 골이 깊어질 것인지, 적당한 선에서 수습될 것인지는 두고 볼 일이다. 박근혜 전 대표는 이명박 정부를 향해 ‘초강수’를 뒀지만, 이명박 정부를 엄호하던 보수언론들이 이런 박근혜 전 대표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장면은 지금의 정치현실을 드러내는 중요한 장면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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