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과 2월 소비자물가는 전년동월대비 각 4.1%, 4.5%에 상승하는 등 폭등세를 보이고 있다. 금융시장 참여자들은 최근 3월 물가상승률이 5%에 달할 것이라는 전망까지 내 놓고 있다. 상황이 이렇게 될 때까지 정부는 무엇을 하였을까? 안 잡는 것일까? 못 잡는 것일까? “물가문제는 기후변화 국제원자재 가격 상승 등으로 불가항력적 측면이 있고, 대한민국만이 아니라 세계 모든 나라가 고통을 받고 있다”는 이명박 대통령의 말처럼 정부의 노력만으로는 도저히 어떻게 해볼 수 없는 것일까? 아니면 물가폭탄을 방치하면서 늘 그랬듯이 남의 탓이나 하고 있는 것인지 따져 볼만한 일이다.

얼핏 보면 정부도 사안의 심각성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윤증현 장관은 지난 3월 7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전체 회의에서 “지금 상황은 물가안정이 가장 시급해 정부정책의 최우선 순위를 물가안정에 두고 있다”고 강조하는 가운데 “짐을 내려놀고 싶다”며 물가 안정의 고충을 토로했다. 이명박 대통령 또한 8일 국무회의 석상에서 “물가가 오르면 가장 고통 받는 사람은 서민층”이라며 실효성 있는 정책을 주문한 바 있다. 물가안정대책회의도 연일 열리고 있다. 지난해 말 이후 장관급 경제정책조정회의는 월 1회, 차관급 물가안정대책회의는 주1회 관련부처가 모두 모여 정기적으로 개최되고 있다.

   
 
 
이처럼 물가상승을 우려하는 수없이 많은 말들이 정치권력의 입을 통해 회자되는 동시에 대책회의도 연이어 열리고 있지만, 정작 대다수의 국민들은 높은 물가에 신음하고 있을 뿐 아니라 좀처럼 불안감에서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 이유는 물가를 안정시키겠다는 ‘말’과 ‘회의’만 있지 물가 안정을 위한 거시경제정책의 변화나 구체적인 대책은 전혀 나오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MB물가’ 전체소비자물가 두배

실제로 상반기 중 경제정책의 우선순위를 “물가안정”에 두고 전방위적으로 대응하겠다는 정부의 대책들을 보면 한마디로 대략난감이다. 보도자료에 언급된 대책들로는 ‘직거래 활성화 및 유통구조 개선을 통한 농산물 및 가공식품 가격안정’, ‘학원비, 유치원비 등 사교육비 안정 노력 강화’, ‘불공정거래 감시 및 경쟁 확대’, ‘주택거래 활성화하여 전세가격 안정될 수 있도록 유도’, ‘외식비 등 개인서비스요금 안정을 위해 권역별로 직능단체와 간담회 개최’, ‘대학 등록금 조정동향 파악 및 인상자제 유도’ 등이 있다.

그나마 현실성이 있는 대책이라곤 가격 인상 우려가 있는 수입 농산물에 대하여 관세를 인하하겠다는 것밖에 없어 보인다. 비상한 상황에 걸맞는 비상한 대책은커녕, 국민을 위한 정부라면 평상시에 당연히 실천해야 할 기본적 정책들이 선언적으로만 나열되어있다는 것이 전방위적 물가안정 대책의 실체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10일 기획재정부에서 열린 81차 국민경제대책회의에서 "물가문제가 가장 중요한 국정의 이슈"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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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다 보니 이명박 대통령이 특별 물가관리 대상으로 지정한 ‘MB물가’가 전체 소비자물가지수 상승률과 비교할 때 두 배 가까이 치솟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발생했다. 경실련이 통계청 자료를 토대로 물가동향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2008년 2월부터 올 2월까지 소비자물가지수 상승률은 11.75%였지만, 'MB물가‘는 20.42% 상승했다.

더욱 문제는 앞으로다. 법인세, 종합부동산세는 물론이고 ‘부동산거래 활성화’라는 명목으로 최근 내 놓은 취득세까지 정부가 일 편향적으로 밀어 붙이고 있는 부자감세는 물론이고 무분별한 4대강 사업 때문에 정부와 지자체 그리고 공공기관들의 재정적자가 심각한 상황으로 내 몰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공공요금은 지난 1월 4년 4개월 만에 최대 폭으로 상승한 바 있으며, 올해 내내 공공요금 인상 압력은 계속될 전망이다. 실제로 언론보도에 따르면 올 하반기 정부는 전기요금, 서울시는 상수도 요금, 경기도와 인천시는 지하철과 시내버스 요금을 올릴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부자감세로 죽어나는 것은 평범한 국민들이다. 기획재정부와 국세청에 따르면 국민들이 부담하는 간접세 비중이 MB정권 출범 후 3년 내내 연속 급증하면서 2010년 52.1%로 5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한 것으로 드러났다. 간접세는 소득격차와는 상관없이 국민 모두가 똑같이 부담해야 하는 세금으로, 그 비중이 높은 사회일수록 양극화를 심화시키기 때문에 조세 정의가 퇴행하는 국가로 분류된다.

최근 중동지역 정세불안 역시 물가상승 압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일본 지진의 여파로 국제유가가 일시적으로 하락세를 보였으나, 바레인 사태악화 및 다국적군의 리비아 공습 등 중동정세 불안이 심화되자 다시 급등세로 돌아섰다. 에너지경제연구원은 중동사태의 양상에 따라 유가 전망을 크게 아래 표와 같이 네 가지 시나리오로 구분하였다.

그리고 리비아 사태의 장기화 및 주변 고위험 국가의 내부 소요로 진전되어 단기적으로는 시나리오 3의 가능성이 비교적 높은 것으로 예상했다. 두바이유 전망치 배럴당 140달러는 현재 가격(108.66달러/03.28기준) 대비 약 30% 비싼 가격이다. 지금도 고유가로 서민들의 등골이 휘고 있는데 얼마나 더 올라갈지 걱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격평가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현재 정유사들의 석유가격 결정 체계의 합리성을 재검토하여 유가를 안정시키겠다던 정부가 결과 발표를 자꾸만 미루고 있다. 이런 와중에 정유 4사가 1사분기에 사상최대의 영업실적을 달성했다는 반갑지 않은 소식이 서민들을 서글프게 만들고 있다.

   
 
 
이처럼 MB정부가 물가안정을 위해 한 노력이라곤 진정성이 결여된 립 서비스밖에 없다.  원자재 값 및 국제유가의 급등이라는 외부변수들에 의한 불가항력의 문제만이 아니라, 성장에의 집착과 수출 대기업 그리고 부동산 부자들을 위한 ‘초저금리, 고환율, 부동산 거품 유지’ 정책 또한 물가상승의 주요 원인이기 때문이다.

수출대기업만 즐거운 ‘고환율정책’

그렇다면 물가를 안정시킬 수 있는 최선의 대책은 무엇일까? 그 답은 간단하다. 강부자(강남 땅부자), 수출대기업 친화 정책을 포기하면 된다. 이제라도 MB정부가 소수의 기득권 계층만의 정부가 아니라 국민을 위한 정부로 개과천선하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까지 펴왔던 경제정책과 정 반대로 물가안정대책을 실행하면 된다.

우리나라는 물론이고 전 세계적으로 엄청나게 풀린 돈을 감안하면, 늦었지만 시중의 과잉 유동성을 회수하고 인플레 기대심리를 차단하는 차원에서 금리 인상도 필요하다. 부동산 시장의 투기 수요를 억제함으로써 주택가격을 연착륙 시키는 것이 물가안정에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가계부채의 부실화라는 금리인상의 부작용을 우려하는 견해도 존재하지만, 1가구 1주택의 실수요자나 저소득층의 이자부담 문제는 금리와는 다른 차원에서 정책적으로 해결해야할 문제이다.

수출 활성화로 경제 성장을 도모하겠다는 명분아래 한국 정부가 인위적으로 고환율(원화 약세) 정책을 펴고 있다는 사실은 이미 주지의 사실이다. 그리고 고환율 정책은 수출대기업과 대주주, 외국인투자자 그리고 환 투기세력에게만 독점적으로 혜택이 돌아가고, 국민들의 입장에서는 실질소득감소와 생활비 증가에 따라 일방적으로 비용만 전가된다는 사실도 이제 상식에 속한다.

고환율 정책의 대명사 강만수 전 기획재정부 장관은 “만약 고환율이 아니었다면, 삼성전자는 사상최대의 영업이익이 아니라 사상최대의 영업적자를 냈을 것”이라는 말로 이러한 사실을 확인시켜 주었다. 한 마디로 고환율 정책은 일부 수출 대기업의 이익 증대에는 기여하지만, 대다수의 국민들을 궁핍하게 만든다. 수출 대기업과 원-하청관계로 묶여있는 중소기업들 또한 원부자재 수입가격 부담을 대기업이 단가 인상을 통해 보전해 주지 않기 때문에 고용여력이 약화되거나 파산하게 된다.

아래 그래프에서 보듯이 최근 달러화  대비 아시아 국가들(일본, 태국,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의 통화가치가 모두 상승했다. 모든 나라들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 수준 혹은 그 이하로 자국통화가치가 높아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독 우리나라만이 달러당 1100원대 이상에 머물고 있다. 원화 가치만 이처럼 약세일 이유가 없기 때문에, 유일하게 가능한 해석은 정부가 여전히 외환시장에 개입하고 있다는 것이 될 수밖에 없다.

   
서울 동대문구 경동시장에서 상인들이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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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에 대한 정부 개입 그 자체를 문제 삼고 싶지는 않다. 시장에서 결정되는 가격이 가장 효율적이라는 주류경제학의 주장은 더 이상 진실을 아니라는 사실은 금융위기를 통하여 이미 증명된 바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부의 시장개입은 그 편익이 국민 모두에게 골고루 혜택이 돌아갈 때만 그 정당성을 인정받을 수 있다.

그런데 아직까지 수출대기업들이 고환율 덕분에 챙긴 막대한 수익을 사회적으로 적절하게 재분배했다는 소리를 들은 바 없다. 따라서 국민들의 일방적 희생을 기반으로 수출 대기업들의 살을 찌우는 잘못된 거시경제정책은 당장 중단되어야 한다. 환율이 떨어지면(원화가치가 상승) 수입제품의 가격이 떨어지는 효과를 낳기 때문에 물가안정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불가항력적이라는 등 남의 탓만 하고 있기 때문에는 국민들의 고통이 너무 심각하다. MB정부는 내가 잘못했다는 반성에서부터 출발하여, 소수의 기득권 계층의 대변인에서 벗어나 국민 다수에게 봉사하는 정치집단으로 거듭나야 할 것이다. ‘물가는 서민 다음에 누구를 잡아먹을까’란 3월 29일자 조선일보 사설은 그 과정에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물가 폭등에 밑바닥 민심은 하루하루가 고통스러운 비명 소리로 가득 차 있다는 말이다. 서민층에 물가 폭탄을 감내(堪耐)토록 강요하는 정권은 내년 선거에서 엄한 심판을 받을 것이다. 인플레를 잡지 못하면 빈부(貧富) 격차가 확대될뿐더러 계급 갈등을 촉발할 수도 있다는 비상한 각오가 절실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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