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자당에서는 선거참패 이후 경제개혁정책의 일환으로 보완작업을 서두르고 있다. 선거참패로 인한 보완작업이기 때문에 당연히 개혁의 미비점과 미진한 점을 보완하는 것이려니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실제로는 그 반대이다. “개혁입법은 크게 보완할 것이 없다.

다만 개혁입법도입에 따른 부수적인 문제점을 고치는 방향으로 나갈 것”이라는 민자당 이승윤 정책위의장의 말에도 불구하고 지금 흘러 나오는 내용을 보면 개혁을 후퇴시키려는 의도가 역력하다.
우선 민자당에서 검토되고 있는 내용을 보면 △96년부터 시행될 금융소득 종합과세의 불편 개선 △부과세 과세특례기준 상향조정 및 세율인하 △부동산 실명제의 완화 △농지 및 토지거래 제한 완화 △종합토지세 과표현실화 속도 조절 및 세율 인하 △소액송금제도 개선 등이다.

여기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금융소득의 종합과세 불편 개선의 문제이다. 금융종합과세가 시행되면 금융소득이 연 4천만원 이상이 되는 사람의 경우에 종합과세 대상이 된다. 이런 사람의 숫자는 대략 7만여명으로 추정된다. 이들이 6.27 총선에서 민자당 이반현상의 주역들이었는지도 의문이고 그 숫자로 보아 대세에 큰 영향을 끼쳤을까에도 의문이 든다. 이들이 불편하기 때문에 개선하자는 것이다.

이들의 불편이란 두가지일 것이다. 하나는 세금부담 증가이고 다른 하나는 고소득자의 실명 노출일 것이다. 그중에서도 고액의 금융자산을 보유한 사람일수록 실명노출을 더 꺼릴 것이다. 지금까지 차명으로 보유하던 금융자산이 종합과세 때문에 실명화할 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이러한 불편을 막아주기 위하여 민자당에서는 금융소득의 종합과세 대상에서 빠질 수 있는 장기 금융상품을 개발하자는 것이다.

금융실명제의 핵이라 할 수 있는 종합과세의 예외를 만들어 두자는 것은 실명제를 무력화 시키고 실명화를 통하여 조세형평을 유지하겠다는 실명제의 원 취지에도 어긋난다. 물론 금융기관의 예금이 빠져나갈 것이라는 주장을 할 수 있다. 그 돈이 어디로 갈 것인가? 이미 금융상품 중에 종합과세 대상제외 상품이 존재하고 있고 자본시장에서는 분리과세를 인정하고 있기 때문에 따로 그러한 대상제외 금융상품을 만들지 않아도 무방하다고 본다.

둘째, 부가가치세 과세특례 기준의 상향조정은 특례를 점차 줄여 나가야 한다는 원칙에 어긋난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과세특례를 오히려 늘이려는 것은 문제가 많다. 경실련이 이미 주장했듯이 특례를 없애고 그 대신 부가가치 세율을 낮추는 것이 바람직하다.

가능한 한 모든 납세해당자가 세금을 납부하되 부가가치세율을 인정하여 실명제로 인하여 노출된 소득에 대한 부담을 덜어 주는 것이 정의로운 것이다. 따라서 세율인하에 대하여는 옳은 방향이라고 보지만 특례기준을 상향조정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셋째, 금년 7월1일 부터 시행되고 있는 부동산 실명제의 벌칙을 완화하고 업무용 토지에 대한 명의신탁 허용 등 예외를 더욱 인정하라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이것도 예외를 만들어 빠져 나갈 궁리를 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금융자산은 물론 부동산 거래의 실명제를 도입하는 것이 정의로운 것이라는 점에서는 아무도 이견을 달지 않겠지만 이의 추진과정에서 기득권을 최대한 보호하려는 시도는 언제나 있게 마련이다. 이제 겨우 실시하여 향후 1년 동안 실명전환의 기회를 주고 있는 부동산 실명제의 완화를 지금 거론하는 것은 좀 지나치지 않나 생각된다.

넷째, 종합토지세 과표현실화 속도조절 및 세율인하도 명백한 개혁후퇴 사례이다. 신경제 5개년 계획에서 내년까지 과표를 공시지가의 100%로 현실화하기로 한 것을 속도조절이란 이름으로 포기하려는 것과 다름없다. 이것은 땅 부자와 투기꾼을 옹호하려는 정책이다.

실효 종합토지세율은 시가총액에 대한 세율을 의미하는 것으로 과표현실화율과 세율에 비례한다. 우리나라의 실효종합토지세율은 거의 부담이 안될 만큼 낮은 수준이라는 것은 이미 분석된 바다. 세계 선진국들이 대략 1%내외의 실효세율인데 비하여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0.04% 정도로 대단히 낮다.

지가가 높은 일본의 0.3%에 비하여도 8분의 1에 불과하다. 도대체 왜 과표현실화 속도를 낮추려 하는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민심이반을 달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재산증식 목적으로 토지를 보유하고 있는 지주들을 보호하기 위하여 현실화를 늦추려는 것이라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종합토지세를 선진국 수준까지는 아니라도 그 절반 수준으로는 올려 토지를 생산적으로 이용하는 것이 시급한 마당에 시계바늘을 거꾸로 돌려 놓고 있다.
과표 현실화를 늦추면서 세율까지 낮추라는 것은 참으로 속보이는 대책이라고 할 것이다. 지주들의 대책이나 다름없다. 농지 및 토지거래 완화도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다. 부재지주라도 위탁경영을 할 경우에는 농지를 구입할 수 있게 하자는 것인데 과연 옳은 것인지 의문이다.

결론적으로 금융소득 종합과세와 부동산 실명제를 적어도 계획대로 실시하고 중소기업을 위해서는 부가가치 세율과 법인세율을 낮추어 주는 것이 바람직하다. 종합토지세 과표현실화도 신경제 5개년 계획대로 추진하는 것이 옳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