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14일 김윤환 민자당 사무총장의 기자회견과 민자당 정세분석위의 건의를 계기로 금융실명제등 개혁입법에 대한 민자당의 수정 움직임이 표면화되고 이에 대한 정부측의 반대입장이 포착되자 신문들은 일제히 이를 김영삼대통령의 정국운영에 대한 여권내의 갈등으로 받아들여 비중있게 보도하기 시작했다.
주로 민자당의 보완움직임과 이에 대한 정부측의 반발에 초점을 맞춘 것이었지만 사설과 해설기사등에서 각 신문들의 ‘미묘한’ 입장차이가 드러났다.
다수 언론들이 방향을 잘못잡은 ‘개혁 후퇴’라며 민자당의 보완 움직임에 비판적 입장을 보였지만 일부 언론은 ‘뒤늦게나마 민심을 제대로 읽은 보완조치’라며 노골적인 편들기에 나섰다. 또 일부 언론은 논쟁의 핵심은 피해가면서 민자당의 주장을 적극적으로 보도에 반영, 역시 기회주의적 편들기라는 지적을 샀다.
한겨레신문은 김윤환민자사무총장의 보완방침 시사발언이 있자 ‘민자, 실명제 관련 세제 수정검토, 경제개혁 뒷걸음’(7월 15일자 1면 톱기사)이라고 비판적 입장을 분명히 하고 “민자당이 선거 패배의 원인을 엉뚱한 곳에 전가하고 있다”(7월 16일자 사설)며 비난했다.
경향신문과 서울신문, 한국일보등도 각각 사설을 통해 민자당의 움직임을 ‘개혁연기’및 ‘개혁후퇴’로 단정하고 민자당의 잘못된 현실인식등을 질책하고 나섰다.
경향신문은 민자당의 이같은 태도에 대해 “일부 계층의 보호책은 될망정 절대 다수 국민들의 정서를 외면하는 것”(7월 15일자 사설)이라고 지적했으며 서울신문은 당정 갈등양상에 대한 비난여론을 의식한 민자당 정책위원회의 ‘실명제 기조 유지’라는 입장천명에 대해 “이를 환영하며 개혁의 보완을 이유로 금융실명제와 토지실명제가 훼손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고 못박았다.
한국일보도 20일자 사설에서 민자당의 실명제 보완방침을 “국민편의를 위한 보완이라는 이름으로 경제개혁조치를 대폭 완화하거나 사실상 무력화시키려는 음모”라고 비판했다.
뒤늦게나마 국민일보도 27일자 사설에서 “민자당이 선거결과를 두고 마치 국민이 개혁 자체를 거부한 듯이 말하는 것은 수구세력의 아전인수식 해석”이라고 비판하고 나섰다.
반면 세계일보와 중앙일보는 민자당의 개혁 정책 궤도 수정을 적극 지지하는 입장을 표명하고 나섰다. 세계일보는 7월 23일자 사설에서 22일 김영삼대통령이 이홍구총리에게 국민에게 불편을 주는 개혁의 미비점 보완을 지시한 것을 ‘개혁 정책의 수정 또는 보완 요구에 쐐기를 박았던 김대통령의 태도 변화’로 보고 정부가 일부 미비점 보완 방침을 밝힌 데 대해 뒤늦게나마 “환영할 만한 일”로 “정부쪽 입장이 민자당쪽 여론에 밀린 듯 하다”고 진단했다.
여권내에서의 ‘개혁논쟁’에 대한 비난여론을 의식한 정부·여당의 조율과 봉합을 서울신문이 민자당의 ‘개혁 기조는 그대로’라는 측면에 주목했다면 세계일보는 정부측의 ‘보완방침’을 강조하고 나선 것. 동일한 사안에 대한 정반대의 해석인 셈이다.
개혁논쟁에 대해 직접적인 언급을 피해오던 중앙일보도 26일자 ‘개혁조치 보완 필요하다’는 제목의 사설에서 뒤늦게 보완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나섰다. 이 사설에서 중앙일보는 특히 “부동산 실명제가 부동산 거래를 거의 폐쇄시키다시피 위축시켜 땅을 사야 할 사람이나 팔고 싶은 사람 모두를 당황케 하는게 문제”라고 지적하고 “실수요자들에게 토지공급의 길을 넓혀주는 방안을 찾아야 할 것”이라고 제시, 부동산 실명제의 대폭적인 규제완화를 주장했다.
한편 나름대로 분명하게 입장을 밝힌 이들 신문들과 달리 동아일보와 조선일보는 개혁논쟁에 대한 직접적인 입장 표명을 회피, 대조적인 모습을 보였다. 동아일보는 22일자 사설 ‘민자당의 갈길’에서 간단하게 ‘어떤 경우에도 개혁의 후퇴는 곤란하다’고 언급하는 수준에 그쳤으며 조선일보도 이 날자 사설(여권안의 ‘네탓’ 논란)에서 쟁점 내용에 대한 ‘판단’ 없이 시국인식및 대처방안에 대한 여권내의 ‘공방’에만 초점을 맞춰 논쟁의 핵심에서 비켜갔다.
해설기사등에서 민자당과 정부측의 개혁공방을 따라가면서 동아일보가 오락가락하는 대통령의 개혁관련 발언등 정국운영의 혼선(25일자 해설기사’ 개혁보안 시각차 좁혀질까’등)에 강조점을 둔 반면 조선일보는 개혁입법의 ‘보완내용’ 쪽으로 무게중심을 옮겨가는 차이를 보였다(24일자 2면 ‘개혁보완 실무단 곧 구성’, 25일자 2면 ‘토지거래 완화 검토’, 5면 ‘불편 해소 수준 실명제 부분 수정’등).
정부·여당의 개혁공방에 대한 이같은 보도태도는 우리 사회의 변화와 개혁에 대한 각 신문들의 일정한 시각차이를 보여준다. 또 금융실명제및 부동산 실명제등 사회구성원에 따라 이해가 다른 쟁점에 대한 각 신문의 이해관계를 일정하게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읽혀지는 대목이기도 하다.
국민들의 이해와 직결된 사안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언론이 그 흔한 설문조사 하나 없이 여론의 반응을 외면한 것은 이번 개혁공방 보도에서 핵심을 놓친, 가장 큰 허점으로 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