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승운목사 사건에 대한 신문보도는 사실 확인을 앞질러가는 추정 보도가 많아 ‘장님 코끼리 만지기식’ 보도였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오보도 적지 않았다. 신문마다 ‘납치범’의 숫자나 ‘납치’ 상황을 비롯해 ‘납치다’ ‘단정은 이르다’까지 각기 다른 보도가 나와 독자들의 판단을 어렵게 했다.

신문들은 7월 26일부터 외무부 대변인 발표를 인용하거나 특파원 보도를 통해 안목사 사건을 일제히 다루기 시작했다. 7월 25일 외무부 대변인은 이번 안목사사건이 ‘본인 의지에 반해 유인된 것’이지만 ‘북한의 납치로 판단하기에는 이르다’는 신중한 자세를 취했다. 그러나 신문들은 정부의 공식입장에 아랑곳없이 안목사사건을 ‘북한의 납치’로 단정, 보도하기 시작했다.

납치 및 납북을 단정적으로 보도한 신문들은 그 근거로 목격자의 증언을 들고 있다. 그러나 북경 주재 특파원들이 파악한 목격자 증언도 각기 달라 그 신뢰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한 북경주재 특파원은 “목격자들마다 증언이 각기 달라 정황 파악이 쉽지 않았다”고 털어놓았다. 안목사와 ‘납치범들’이 택시에 동승하는 현장을 목격한 사람들의 증언이 각기 달랐다는 것이다.

현장 목격자 가운데 비교적 정확히 현장 상황을 증언한 두명의 여인중 한 명은 “안목사가 그들과 몇마디 대화를 나눈 뒤 순순히 차에 탔다”고 말한 반면 다른 한명은 “안목사가 약간의 승강이를 벌이다 차에 강제로 태워졌다”고 증언했다는 것.

납북 사실을 확인해준 황병태 주중 대사의 발언도 이들 목격자의 증언에 근거한 것으로 알려졌다. 황대사는 26일 일부 신문의 확인요청에 대해 “납북이 확실해 보인다”고 말했다.
그러나 다음날 기자 간담회 자리에서는 그같은 판단이 이미 기자들도 확인한 목격자 증언에 따른 것으로 “목격자들의 증언이 서로 다르다”고 시인하고 “아직 뭐라 단정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결국 목격자들의 증언에서 확인되는 사실은 ‘안목사가 두명의 사람과 말을 나누다가 택시에 동승, 타고 갔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목격자들의 엇갈린 정황 설명에도 불구하고 대다수 언론들이 ‘납치’ ‘납북’이라고 단정한 것은 ‘예단’이 앞선 추정이라는 비판을 면키 어렵다.

신문들은 또 현지 목격자, 중국 공안관계자, 정부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납치범이 2명(동아)에서 3명(중앙), 6명(조선)까지 있다고 보도한 것도 역시 마찬가지다.
‘납치범’이 2명이라고 한 것은 안목사와 대화를 나눈 사람들만을 ‘납치범’으로 본 반면 3명이라고 한 것은 ‘조직적인 납치’라고 생각할 때 ‘운전자도 역시 한패’일 것이라는 추정에 기초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6명이라고 보도한 것은 “안목사를 태운 택시가 떠난 후 곧이어 또다른 차량이 그뒤를 따라갔으며 그안에는 3명이 타고 있었다”는 목격자 증언을 기초로 “이들도 역시 ‘납치범 일행’일 것”이라는 정보기관 관계자의 전언에 기초한 보도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납치범’의 신분이 신문마다 ‘북한으로부터 청부받은 자’(동아), ‘북한의 특수요원’(중앙), ‘남한요인 납치조’(조선)등으로 제각각인 것도 ‘납치에 의한 납북’이라는 단정에 따른 추정보도의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중국 당국이 이 사건과 관련, 7월 27일 현재까지 밝힌 것은 “조선말을 쓰는 사람 1명을 연행 수사중”이라는 것이 전부다.

이번 안목사 사건의 진상은 밝혀져야 한다. 먼저 본인 의사에 반하는 ‘납치―납북’인가의 여부가 분명히 가려져야 한다. 본인의 자유의사가 아닌 남북 어느 쪽으로의 ‘납치’나 ‘유인’은 남북분단체제가 빚어낼 수 있는 대표적인 반인권 사례이기 때문이다.

언론은 남북 당국 모두에게 귀순자나 망명자의 자유의사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장치를 만들도록 권고하고 요구할 필요가 있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언론은 이런 사안일수록 확인된 사실에 입각해 정확히 보도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지적을 겸허히 수용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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