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IPTV 상용화, 2009년 방송법 개정, 2010년 종합편성채널 선정으로 방송통신업계가 들끓었다. 이 시기에도 여러 방송통신 전문가는 지상파TV의 디지털 전환을 가장 중요한 일로 꼽았다. 내년 12월 31일까지 완료해야 하는 디지털 전환과 맞물려 지상파방송의 다채널서비스(MMS·Multi-Mode Service)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지난해 12월 20일 KBS 후원으로 열린 ‘시청자 복지 제고를 위한 지상파 다채널 편성 전략 세미나’에서 이영주 한국예술종합학교 예술연구소 책임연구원은 “디지털 시대의 지상파 독과점 구조의 재형성은 또 한 번 공·민영, 유·무료 방송사업자들 간에 수많은 충돌과 경쟁을 야기할 것이 확실하다”고 예고했다. 이 날은 KBS·MBC·SBS·EBS 등 지상파 4사가 무료 MMS를 공동 추진하겠다고 밝힌 지 나흘째, 방송통신위원회가 2011년 지상파 MMS 도입을 검토하겠다고 밝힌 지 사흘째였다. 지상파방송사의 ‘분신술’ 시도에 발칵 뒤집힌 신문사들이 정부에 ‘쌍심지’를 켜던 때로, 그 기세는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용호
 
▷4년 전 MMS 논란 때, 종편은 없었다=2006∼2007년의 MMS 논란이 지상파 대 유료방송업계의 싸움이었다면, 현재는 종합편성채널사업자와 신문업계가 유료방송업계에 가세한 모양새다.

2007년 MMS 논의가 한창일 때 종편은 변수가 아니었다. 당시 한 지상파 관계자는 정두남 한국방송광고공사(KOBACO) 연구원과의 심층 인터뷰에서 “MMS 채널은 그 편성 내용상 기존 (지상파) 채널의 편성과 유사한 성격을 갖게 되어 유료매체의 전문채널과는 경쟁할 수 없을 것이므로 경쟁구도에는 별 영향이 없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게다가 당시는 지상파 디지털 방송의 보급률이 지금처럼 높지 않았다.

MMS가 매체 간 공정경쟁과 균형발전을 해친다는 유료방송업계의 지적에, MMS 찬성 쪽이 내세운 재반론이기도 했다.

화근은 결국 광고수익이다. 양문석 방통위 상임위원은 지난해 9월 미디어오늘과의 인터뷰에서 지상파 MMS를 근거로 종편의 미래를 비관한 바 있다. 양 위원은 MMS가 방통위 1기에서 안되면 2기에서라도 될 것이라고 했는데, 방통위는 그로부터 석 달도 안 돼 대통령 업무보고 내용에 이를 담았다. 게다가 그달 말 종편 사업자는 무려 4개나 선정했다.

2007년 KBS는 MMS로 늘어나는 부가 채널의 운용 비용은 수신료나 광고로 충당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KBS는 지난해 방통위에 제출한 수신료 인상 근거 중 하나로 MMS에 향후 4년간 1130억 원을 들이겠다고 한 것으로 전해지기도 했다. 하지만 방통위는 이를 수용하지 않았다. KBS의 계획대로 수신료 인상액과 용처가 결정되지 않으면 향후 MMS가 도입됐을 시 KBS는 이를 운영할 재원을 어디에서든 마련해야 한다.

결국 제작비나 인건비에 손을 대지 않는다면 광고 추가 수주 밖에 방법이 없다. 민영 미디어렙 (Media Representative)과 달리 MMS 도입으로 인한 각 매체별 광고 수익 증감은 2011년 2월말 현재 구체적인 시뮬레이션 결과가 없는 상황이다.

▷누구를 위한 지상파 MMS 도입인가=문제는 2007년 당시 MMS 도입 찬성 쪽이 ‘동상이몽’을 꾼 것은 아니었나 하는 점이다. 민주언론시민연합 등 언론시민단체들은 서민들의 삶의 질을 높이자며 MMS 즉각 도입의 목소리를 높였지만, 2002년 이후 연간 광고매출이 1000억 원씩 떨어지던 지상파방송사들의 속내는 미묘하게 달랐다.

‘지상파 사양기’, ‘지상파 역차별기’로 당시 상황을 규정하기도 한 지상파방송사들은 2007년 8월 중간광고와 MMS 도입 등을 수신료 인상과 묶어 옛 방송위원회에 요구했었다. 이 때문에 당시 학계 일각에서는 지상파방송사들이 MMS로 늘어난 채널을 ‘상업적 탈출구’로 삼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당시 ‘조건부 찬성’ 입장이었던 강혜란 여성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 소장은 “지상파 방송의 공익성 구현 의지는 막연한 가능성인데 반해, 장기적으로 뉴미디어·신문·지역방송사 등 광고시장에 미칠 파장은 상당히 크다”며 “수용자들의 선택권이 침해되거나 문화다양성이 파괴되는 쏠림현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본다”고 말하기도 했다.

정치적인 지형에서 보자면 2007년 ‘우군’이었던 언론시민단체가 2011년 김인규 사장 체제의 KBS와 김재철 사장 체제의 MBC에 부정적인 것도 지상파 쪽에는 악재다. 하지만 기존의 유료방송업계는 물론 종편사업자에 대한 지적도 만만치 않다.

최근 CJE&M의 출범에서 보듯 지상파와 맞먹는 미디어업계의 ‘공룡’으로 변신하고 있는 유료방송업계가 언제까지 ‘지상파 독과점 심화’ 논리만 붙들고 있을 것이냐는 지적이다. 종편사업권을 따낸 신문사들은 2008년 방송법 개정 이후 지금까지도 줄기차게 채널연번제 등의 ‘특혜’를 요구해 왔다. 이에 비춰볼 때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가 지난해 12월 18일자에 각각 실은 사설 <방송통신위는 ‘지상파 독재’의 첨병으로 나서려는가>, <지상파TV ‘기득권 지키기’ 허용해선 안 돼>, <지상파 정책, 일방적 특혜 아닌 공공성 강화로 가야>는 그 진정성을 의심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결국 규제당국과 사업자 등이 공론의 장을 만들고, 이 안팎에서 시청자들이 현명하게 판단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용어해설-지상파 다채널서비스(MMS·Multi-Mode Service) : 디지털 지상파TV 1개 채널에 할당된 6MHz 범위의 주파수 대역 안에서 HD(고화질)급 TV 채널 1개 외에도 1개 이상의 SD(표준화질)급 TV 채널과 오디오·데이터 채널을 제공하는 서비스이다. 지난 2006년 독일월드컵 때 지상파방송사들이 시범방송을 시작했다. 당시 화질의 질이 떨어지는 열화 논란이 일었지만, 지상파방송사 쪽은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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