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주협회가 80억원의 기금을 조성, ABC협회에 전달한 것은 앞으로 우리나라에도 본격적인 신문부수공개 시대가 열린다는 것을 뜻한다고 볼 수 있다. 그동안 재원이 없어 신문사 본사나 지국, 보급소에 대한 실질적인 부수검증을 못해왔기 때문에 이제 안정적인 기금 마련에 따라 실사를 위한 기초공사는 어느정도 갖춘 셈이다.

따라서 문제는 신문사의 태도에 달려있다. 신문사가 얼마나 성실하게 ABC협회의 부수공사에 응해 주느냐가 ABC의 성패를 좌우하는 요인으로 남게 된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신문사들은 부수실사가 이뤄질 경우 그동안 부풀려왔던 거품부수가 공개돼 신문판매 및 광고수주에 막대한 영향을 미칠 것을 우려, ABC실시에 반발 내지 노골적인 반대입장을 견지해왔다.

실제로 대부분의 신문사들은 지난 2월 ABC협회 이사회에서 지국 유가부수가 아닌 본사 유가부수로 유료부수를 인정하자는 결정을 끌어낸데 이어 6월 공사제도위원회에선 신문구독료의 20%만 수금해도 정상적인 부수로 인정하는 안을 통과시켰다.

이로인해 7천원인 신문 월구독료중 1천4백원만 받아도 신문 1부를 유가로 인정하는 모순이 생기게 됐다. 이는 신문 1천부중 4백부만 유가로 판매하고 6백부를 무가지로 뿌려도 결과적으론 1천부 모두 유가부수로 인정되는 것이어서 사실상 ABC실시의 의미를 쇠퇴시켜 버린다.

ABC협회가 내년 4월까지 신문사에 대한 부수실사를 하고 6월경에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지만 이같은 상황하에선 객관적인 유료부수 검증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분석도 같은 맥락에서 출발하고 있다.

광고주협회가 80억원의 기금을 출연한 지금까지도 ABC의 주체라고 할 수 있는 신문사들이 기금조성에 미온적인데서도 문제의 일단을 읽어볼 수 있다. 공식적으로는 밝히지 않았지만 20억원의 기금출연 의사를 전달하고 있음에도 불구, 아직 논의조차 제대로 되지 않고 있는 실정인 것이다.

이에 따라 광고주협회나 광고단체협회 등 직접이해 관련 단체들은 큰 기대를 걸고 있지 않은 눈치다. 내년 8월부터 이자수익이 발생해 본격적인 실사의 조건이 갖춰지더라도 정작 당사자인 신문사가 빼놓을 것은 다 빼놓은 상태여서 별로 기대할 것이 없다는 것이다.

광고단체협회 관계자는 현재 상태로선 신문사가 부수조작을 하더라도 합법적인 조작의 길을 열어놨기 때문에 광고주나 대행사들에겐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서 이런식이라면 ABC협회에 대한 회비 납부거부도 고려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일부 광고단체에선 일단 시작이 중요하다는 반응을 보이면서도 우려의 시선을 거두지 못하고 있기도 하다. 어쨌건 ABC의 정착은 신문사간 과당경쟁 완화와 신뢰증진이라는 측면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라는 점에서 신문사의 전향적인 참여가 절실히 요구된다.

80억원의 기금이 조성됐지만 주체인 신문사가 한발을 빼고 어정쩡하게 서있는 상황에선 될일도 안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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