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삼 정부의 초기 개혁이 한창일 때 오인환 공보처장관은 개혁 관련 언론 보도에 대해 ‘총론 찬성 각론 반대’라는 표현을 통해 우회적으로 언론을 비판한 바 있다. 사실 오장관은 ‘겉으론 찬성 속으론 반대’라는 말을 하고 싶었을 것이라는 게 우리의 생각이었다.

금융실명제 실시 결정 직후 상당수의 언론이 ‘금융대란, 중소기업 도산 속출’ 등의 예단 기사를 과장되게 보도하던 모습을 지켜본 경험이 있는 우리는 최근 ‘보완’이라는 미명하에 개혁의 핵심을 후퇴시키거나 무력화시키려는 민자당 일각의 움직임을 언론이 어떻게 취급할 것인지 주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대부분의 신문들은 정치권의 입장을 빌려 마치 개혁이 상당수의 국민들에게 ‘불편’을 줄 것이라는 검증되지 않은 주장을 여과없이 보도했다. 최근 우리 언론이 주요 사안에 대해 기동성있는 여론 조사를 하던 모습이 이 대목에서는 보이지 않았다.

보완이건 후퇴건 개혁에 문제제기를 던지는 원초적 논거인 국민들의 불편을 객관적으로 검증하기 위한 노력이 없는 상태의 언론 보도는 각사의 입장을 보다 선명하게 보여주는 계기가 되었다.
우리는 이른바 ‘유력지’의 대열에 올라 있는 몇몇 신문의 보도 태도에서 나타난 문제점 두가지를 지적하고자 한다.

그 하나는 중앙일보의 경우다. 중앙은 비교적 자기 입장을 분명히 보이면서 보완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지주의 논리’라는 비판을 받고 있는 수구파들의 부동산 실명제 후퇴 움직임에 대해 중앙은 실수요자들의 거래 불편을 들고 나오면서 대폭적인 규제 완화를 주장하고 있다. 실수요자 중심의 토지 거래가 투기성 토지 거래로 인해 입는 폐해가 지적되지 않고 오히려 전도된 논리를 앞세운 이같은 주장에서 우리는 실질적인 개혁 후퇴를 조장하는 언론의 모습을 본다.

두번째는 동아와 조선의 경우다. 이들은 ‘침묵’에 가까운 태도를 보이고 있다. 때론 큰목소리보다는 침묵을 통해서 자신들의 입장을 드러내는 경우가 있다. 이들 두 신문은 쟁점 내용에 대한 판단과 입장을 감춰둔 채 논쟁의 핵심에서 벗어난 모습을 보여주었다.

사회적 주요 이슈에 대한 영향력 있는 언론의 이같은 태도는 책임있는 자세라 볼 수 없으며 기회주의적 행태라는 비판을 받을 소지도 적지 않다. 특히 조선의 경우 자신들의 주장은 접어두고 논쟁의 한쪽 당사자 입장만을 비교적 충실히 전달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줄기는 바뀌지 않으며 국민들의 불편을 덜어주기 위한 약간의 보완이 있을 것이라는 전제 아래 금융종합과세에 포함되지 않는 새로운 금융상품을 만들겠다는 주장을 별다른 문제제기 없이 보도하는 자세는 형평성을 현저히 잃은 경우라고 하겠다.

본지의 최근 조사에 따르면 절반에 이르는 국민은 우리 언론이 개혁에 그다지 우호적이지 않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파적 입장을 떠나 이 사회의 진정한 개혁을 위해 견인차 역할을 마다않는 언론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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