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가 2월 25일로 집권 3주년을 맞지만 참으로 ‘우울한 생일’이 될 것으로 보인다. 국내외에서 ‘국정악재’가 연이어 터지면서 바닥민심은 더욱 더 얼어붙고 있다.

물가폭등과 전세대란, 구제역 파문은 이명박 대통령의 근심을 더해준 현안으로 여전히 진행형이다. 조선일보가 최초 보도한 ‘국가정보원 파문’은 ‘아덴만 여명작전’으로 반전의 기회를 마련했던 이명박 정부의 안보 능력에 다시 한 번 의문부호를 던졌다.

북아프리카에 부는 ‘민주화의 바람’도 남의 나라 얘기처럼 볼 수 없는 처지가 됐다. 리비아는 사실상 내전 단계에 접어들었는데 세계에서 손꼽히는 산유국인데다 한국 입장에서는 중동 건설경기를 좌우할 핵심지역이라는 점에서 리비아의 불안한 정세는 한국 경제에 시름을 던져주고 있다.

   
지난 2008년 2월 25일 국회에서 열린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한 이명박 대통령(사진 왼쪽). ©연합뉴스
 
기름값 폭등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주가는 하염없이 떨어지고 있다. 이미 2000선은 무너졌다. 문제는 국정 컨트롤타워 역할을 해야 할 청와대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원세훈 국정원장의 신뢰도가 급추락 한 상황에서도 청와대는 여전히 버티고 있다.

외국 대통령 특사가 청와대를 방문한 사이에 국정원 직원이 몰래 특사의 숙소에 잠입했다 발각된 사건은 적당히 덮는다고 덮어질 사안이 아니다.

홍준표 한나라당 최고위원은 지난 23일 최고중진연석회의에서 “최근 국정원 사태를 보면서 이 나라 최고 정보기관으로서의 국가정보원의 능력과 자질을 의심하게 한다. 천문학적인 예산을 쓰면서도 국제적 웃음거리로 전락했다”고 비판했다.

홍준표 최고위원은 “(국정원 사태에 대해 언론보도를 보면) 국정원장을 보호막 치고 실무책임자에게 책임전가를 하는 청와대 관계자의 말이 참 한심하게 보인다. 한가롭게도 보인다”고 지적했다.

박지원 민주당 원내대표는 24일 고위정책회의에서 “청와대는 ‘국정원의 책임을 물을 필요가 없다. 만약 책임을 물으면 인정하는 꼴이다’라고 하는데 이것이 통용되겠는가. 이미 외신에도 이런 사실이 보도되고 있기 때문에 진정한 대통령의 용기는 잘못을 시인하고 사과하고 그리고 재발하지 않는 것이 국가를 위한 길”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나라망신’을 톡톡히 시킨 국정원의 대대적인 개혁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쏟아지고 있지만 청와대는 원세훈 국정원장 경질 요구에 미동도 하지 않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의 대표적인 측근이라는 점에서, 실세 중의 실세라는 점에서, 그를 경질할 경우 ‘무능한 국정원’ 비판을 인정하는 꼴이라는 점에서 주저하는 모습이다. 문제는 국정원 사태가 단일 사안이 아니라 다른 국정악재들과 맞물려 돌아가고 있다는 점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가장 큰 문제점 중 하나인 ‘잘못된 인사’ 논란을 더욱 도드라지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정운영에서 총체적인 무능을 보여줬다는 비판은 야당의 ‘정권비판용 구호’로 일축하기 어렵다는 게 주목할 대목이다.

시민단체들의 평가는 혹독하다 못해 싸늘하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24일 기자회견에서 “이명박 정부의 지난 3년은 독선, 독주, 독단 등 3독으로 일관하여 민주주의적 기본가치들이 무너졌으며 소수 부자들과 재벌들을 위한 경제 성장정책으로 민생은 더욱 피폐해졌다”고 평가했다.

참여연대는 ‘이명박 정부 집권 3년’과 관련해 24일 논평에서 “지난 3년 정치행정, 민생과 복지, 외교안보와 남북관계 등 전 분야에 걸쳐 대한민국과 한반도의 현실은 참담하다. 인권과 민주주의는 후퇴하고 있으며, 국민들은 가계부채와, 전세대란, 물가폭등에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3년이 ‘행복했다’는 평가는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어렵다. 보수신문까지 이명박 정부의 국정운영에 대해 불안감을 감추지 않고 있다. 동아일보는 2월 24일자 는 사설에서 "국내 정치 측면에서 MB의 성적표는 C학점 수준"이라며 "'공정사회' 구현을 내건 터에 권력형 대형 비리라도 터진다면 국정은 흐트러지고 정권의 위기를 맞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여권은 2007년 대선에서 ‘500만 표 이상의 압승’을 거뒀다는 점에 무게를 싣고 있지만, 선거결과를 정밀하게 들여다보면 평가는 달라진다. 이명박 대통령에게 투표한 유권자는 1149만여 명에 달하지만, 투표에 아예 참가하지 않은 유권자도 1392만여 명에 이른다. 

이명박 대통령을 뽑아준 사람보다 투표장에 가지 않은 유권자가 더 많았다는 얘기다. 이명박 대통령에게 한 표를 행사한 지지자들은 이명박 정부 국정운영에 대해 어떻게 평가할까. 한겨레가 ‘민심의 바로미터’라고 할 수 있는 40대(이명박 후보를 지지했던)들에게 물어본 결과는 청와대를 곤혹스럽게 했다.

한겨레가 이명박 대통령에게 한 표를 행사했던 40대 9명을 불러 ‘심층 좌담회’를 한 결과 절반 이상인 5명은 이명박 대통령 지지를 철회했다. 여전히 지지를 한다고 대답한 1명도 “지지하지만 완전한 지지는 아니다”라면서 유보적인 입장을 전했다.

이명박 대통령을 대선에서 지지했던 이들이 등을 돌리고 있다는 것은 집권 3주년을 맞는 청와대가 곱씹어볼 대목이다. 여권에서는 국정운영지지도가 40%대 수준으로 나오는 여론조사를 강조하면서 ‘훈훈한 민심’을 홍보하려 하지만, 여권 내부에서도 여론조사에 거품이 끼어 있다고 시인하는 상황이다. 중앙일보는 2월 8일자 사설에서 "지지율 50%에 안주해선 안 된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허수가 많다"고 경고한 바 있다.

이명박 정부 집권은 3년의 시간이 흘렀고 2년이 남았지만 벌써 ‘레임덕(권력누수현상)’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레임덕은 없다”면서 호언장담하고 있는 이명박 대통령이지만, 정치전문가들은 이명박 대통령은 레임덕을 피하기 어렵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산적한 국정악재로 인해 민심이 싸늘하게 변하면서 여야의 희비도 엇갈리고 있다. 한나라당은 내년 선거 걱정에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이명박 정부 입장에서 집권 3주년인 2월 25일은 뜻 깊은 날이겠지만, 나라 안팎의 현실을 볼 때 참으로 우울한 생일이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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