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를 30년간 지배한 독재자가 18일 동안의 민주화 운동에 밀려났다. 외신이 전하는 현지의 분위기는 감동적이다.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이 하야하고 권력을 군에 이양한다는 성명의 방송 발표는 30초가 걸렸다. 이집트 부통령이 육성으로 읽어 내려간 대통령 하야 성명이 방송되자 카이로 중심부에 모여 있던 백여 만 명의 시위군중은 승리의 환호성을 지르는가 하면 무릎 꿇고 기도하면서 눈물을 흘렸다. 시위 군중들은 이집트 기를 흔들면서 주변의 군인들을 포옹했다.

이날 발표된 성명에 따라 이집트의 헌정이 중단되고 군 장성들로 구성된 위원회에게 전권이 위임되었다. 그러나 군 장성들은 무바라크의 장기 집권의 배후 지지 세력의 역할을 해왔다는 점 등에서 향후 이집트 군이 민주화 추진에 얼마나 긍정적 태도를 취할지에 대해서는 전망이 불투명하다. 특히 이집트 군은 독재자 무바라크 대통령이 미국의 중동 정책에 협조하는 대가로 매년 10억 달러 수준의 원조를 미국으로부터 받아왔으며, 향후 이집트 민주화 조치에 주요 역할을 하게 될 후세인 탄타위 국방장관(75세)은 무바라크 대통령의 심복으로 정치 개혁에 반대하는 입장을 취해왔다.

향후 이집트 군은 부정선거로 지탄받는 지난 총선에서 선출된 의회의 해산 문제, 30년 된 국가 비상사태의 해제 시기, 민간인이 주도하는 임시 정부 구성 등에 대한 조치를 취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그 시기, 방법 등은 아직 제시되지 않은 상태다.

무라바크 대통령은 전날 계속 집권의사를 밝힌 뒤 하루 만에 권좌에서 물러난 뒤 홍해의 휴양지로 피신했다. 그는 3백여 명의 시민이 사망하고 5천 여 명이 부상하는 사상 초유의 대규모 반정부 시위에도 불구하고 권력의 끈을 놓지 않으려 안간힘을 썼지만 민중의 거대한 민주화 요구 앞에 도망자 신세가 되고 말았다.

무바라크 대통령은 지난 1일 차기 대선에 불출마하겠다는 성명을 발표한 데 이어 10일 자신의 권력 일부를 오마르 술레이만 부통령에게 이양하겠다는 양보안을 내놓았으나 즉각적인 사퇴 요구는 거부, 시민들을 분노하게 했다. 그의 사임이 발표된 날 카이로의 타흐리르 광장에는 사상 최대인 100 만 명에 가까운 인파가 운집했고, 제2의 도시인 알렉산드리아에도 10만 명이 넘는 시민이 가두행진을 벌였다(연합뉴스 12일).

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이 민주화 시위에 무릎을 꿇고 퇴진한 것은 튀니지 '재스민 혁명'이 성공한 뒤 벌어진 대 사건이다. 이는 다른 북 아프리카와 중동 지역 국가에서의 민주화 운동에 심대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추정된다. 바레인 국왕은 이집트 사태 발생이후 모든 가구에 3천 달러를 지급하도록 명령했는데 이는 바레인의 시민운동가들이 인터넷을 통해 정치 사회 경제적 개혁을 촉구하는 저항 운동을 시작하자고 주장한 뒤 취해졌다(AFP 통신 12일).

전문가들은 리비아와 요르단, 예멘에서 튀니지, 이집트와 비슷한 양상의 시민혁명이 일어날 수 있을 것으로 관측한다. 이 국가들은 소수 지배층이 석유 자원으로 생기는 이윤을 독과점하고 다수의 민중은 권력층의 부정부패 속에 빈곤과 실업에 시달리는 공통점을 안고 있다. 이들 지역에서 정치 개혁과 함께 국민에게 건전한 일자리를 제공하는 경제 개혁이 급속히 진행되지 않는 한 시민혁명의 물결이 계속 번져나갈 것이란 전망이 제기되고 있다(연합뉴스 12일).

세계 금융시장은 무바라크 퇴진으로 사태가 진정될 기미를 보인다는 뉴스를 환영했고 스위스는 70조에 달하는 무바라크 자산을 동결하는 조치를 취했다. 이집트 사태 전개에 대해 북아프리카와 중동 지역 지도자들은 소극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미국 등 서방국가는 대부분 독재국가인 이 지역이 정치적으로 불안해 질 경우 안전한 석유 공급 등에 차질이 생기지 않을까 두려워하고 있다.

미국은 특히 이집트의 정치적 안정을 위한 민주적 이양조치를 촉구했는데 이는 이집트가 수웨즈 운하의 안정적 가동과 이슬람 과격 세력에 대한 저항세력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이집트에서 이란과 같은 반미 성향의 무슬림 정권이 들어서는 것을 두려워해 무바라크의 퇴진과 관련해 그의 즉각 사임을 주장하다가 그가 임기를 채울 것을 언급하는 등 오락가락하는 태도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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