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언론이 주목하는 이집트 민주화 운동은 한국 언론에도 중요한 관심 대상이다. 연일 속보와 관련 보도가 쏟아지고 있다. 이를 전하는 한국 언론이 무심코 사용하는 표현이 있다.  ‘소요사태’라는 표현이다.

최근 일주일 동안 주요 신문 ‘이집트 보도’를 살펴본 결과 경향신문 국민일보 동아일보 문화일보 서울신문 세계일보 조선일보 중앙일보 한국일보 등이 ‘소요사태’라는 표현이 담긴 기사(사설)를 내보냈다. 특정 언론이 아니라 다수 언론이 사용하고 있는 셈이다.

언론이 이 표현을 의도적으로 사용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실제로 같은 날 신문에서도‘이집트 민주화운동’, ‘이집트 반정부시위’, ‘이집트 소요사태’ 등 다양한 표현이 등장한다. 하지만 무심코 사용한다고 문제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이집트 민주화 시위 12일째인 지난 5일 낮 카이로 도심 타흐리르 광장에는 시위대 1만여명이 모여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의 즉각적인 사퇴를 촉구했다. ⓒ연합뉴스
 
언론의 소요사태라는 표현은 심각하고 위험한 접근이기 때문이다. 소요사태는 ‘여러 사람이 모여 폭행이나 협박 또는 파괴를 함으로써 공공질서를 문란하게 하는 행위’를 의미한다. 언론은 소요사태라는 표현을 통해 이집트 시민들의 저항을 폭행이나 파괴행위를 일삼는 행위로 개념규정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가.

한국 언론이 전하는 ‘생각의 틀(프레임)’은 시민들의 판단에 중요한 잣대가 될 수밖에 없다. 도대체 이집트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시민들은 왜 거리로 나왔는지 궁금증이 이어지는 상황이라면 언론은 표현 하나도 신중하게 처리하는 게 마땅하다.

1980년 ‘5월 광주’를 외롭게 한 존재는 바로 한국 언론이다. 광주 시민들은 덜도 말고 더도 말고 사실을 전달해주기를 원했지만, 신군부에 맞선 그들의 저항은 불순분자의 폭동으로 매도됐다. 그 역할을 한국 언론이 담당했다. 한국 언론의 이집트 보도에도 ‘5월 광주’의 언론 시각이 투영돼 있다. ‘소요사태’라는 표현부터 그렇다.

국민일보는 2월 1일자 5면 <도심 곳곳서 약탈·파괴·탈옥…사실상 무정부 상태>라는 기사에서 “반정부 시위가 계속되면서 경제도 사실상 마비됐다. 대부분의 주유소 기름은 바닥났고, 은행 현금지급기도 약탈당하거나 고장났다”고 보도했다.

국민일보가 전한 이 기사는 이집트 시민들의 저항에 대해 ‘왜곡된 인식’을 갖게 할 위험이 있다. 국민일보는 이 기사의 부제목을 <소요사태 7일째 상황>이라고 달았다. ‘5월 광주’를 불순분자 난동으로 묘사했던 한국의 어느 언론을 연상케 하는 기사내용과 제목 아닌가.

물론 한국 언론의 이집트 보도 전체를 폄하할 이유는 없다. 이집트 교민들의 열악한 현실과 한국 외교 당국의 무신경한 태도를 비판한 보도는 의미가 있다. 아랍권의 강국으로 분류되지만 ‘독재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이집트가 변화의 물결을 타고 있다는 점은 자체로 주목할 일이고, 언론 보도도 그랬다.
중앙일보는 2월 7일자 <이집트, 빠르고 안정적인 민주화 기대한다>라는 사설에서 “대통령 일가를 중심으로 한 극단적인 부정부패 등을 배격하는 이집트 국민의 요구는 정당하다”고 평가했다.

중앙이 2월 1일자 3면 <조작 전과 조작 후…사진까지 통제>라는 기사를 통해 이집트 정부의 언론통제 실태를 비판한 기사도 의미 있는 내용이다. 그런 중앙일보도 2월 1일자 사설에서 “이집트 소요 사태가 국제사회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다”면서 ‘소요 사태’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이집트 시민들이 바라는 것은 무엇일까. 80년 5월 광주 시민들이 그랬던 것처럼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사실을 전달해주기를 바라고 있지 않을까.

KBS ‘뉴스 9‘는 2월 7일 <이집트 시위 장기화…‘광장은 캠프촌’>이라는 뉴스에서 “우리는 폭도가 아닙니다. 현 정부 없이도 질서 있는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대내외에 과시하고 싶습니다”라는 시위대의 의견을 전했다.

이집트 언론이 권력에 유착하고 인터넷까지 통제된 상황에서 그곳의 시민들은 외국 언론의 ‘사실 보도’에 기댈 수밖에 없다. 그래서 더욱 섬세하고 신중한 언론 보도가 요구된다. “우리는 폭도가 아닙니다”라는 이집트 시민의 주장은 80년 5월 광주 시민이 절박한 마음으로 외국 언론에 호소했던 바로 그 내용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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