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디오 드라마의 종적을 찾아보기가 어려운 요즘 라디오 제작진들은 정치드라마를 거의 유일한 활로로 생각하고 있는 듯 하다. 자가운전자가 늘어나면서 라디오의 주청취자로 등장한 30대이상의 남성은 정치에 관한 관심이 상대적으로 높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각 방송사는 많은 제작비를 들여가면서 정치드라마를 제작 방송하고 있는데 KBS의 <다큐 그때 그 사건>과 MBC의 <격동 30년>이 바로 그런 프로그램들이다.

이 두 프로그램은 공교롭게도 같은 시간대인 11시 40분에 20분간 편성돼 청취자의 선택을 어렵게하고 있다. 두 프로그램이 벌이고 있는 청취율 경쟁도 치열하다.

드라마의 이름이 말해주듯 연대기순으로 사건을 다루고 있는 MBC <격동 30년>이 5공을 전전하고 있는 가운데 주제에 따라 시대를 넘나들고 있는 KBS <그때 그사건>은 10월 2일부터 5공과 6공간의 갈등을 다룬 ‘백담사 769일’을 방송한다.

권력을 물려준 후계자에 대해 가졌던 구정권의 기대와 정권의 확립과 유지를 위해 앞선 정권의 여력을 무력화하려는 새정권의 암투가 전두환, 노태우 두 대통령을 둘러싼 세력들간에 치열하게 전개됐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특히 이들 두 전직 대통령의 충돌에는 1·1인맥과 9·9 인맥이라는 군출신 가신그룹들이 있었다.

<그때 그 사건> ‘백담사 769일’은 이들이 벌이는 밀약과 배신, 그리고 암투에 대한 현대사 발굴 작업이다.

이 드라마의 작가인 고영훈씨는 그동안 각종 기록과 기사등 방대한 자료를 검토해야 했다. 세심한 검토와 증언을 통한 확인작업등을 거쳐 자료의 신뢰성을 꼼꼼히 따져보았다는게 제작진들의 설명이다. <그때 그 사건>은 그 같은 사료를 근거로 두세력간의 갈등을 다루면서 중간중간 관련자들의 증언도 육성으로 들어본다.

논픽션 드라마가 갖는 위험성은 흥미를 끌기위해 사료를 왜곡하거나 지엽말단적인 문제를 과장하지 않느냐 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 연출자인 이상여 프로듀서는 이 프로그램이 역사적 현실을 비켜가지 않고 정면으로 다루는 프로그램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그러한 제작방향은 역사적인 사건을 단죄할만한 제도나 기구가 없는 현실에서 라디오 드라마가 마땅히 그런 역할을 해야한다는 믿음에서 설정되고 있다. 따라서 나름대로의 역사관을 갖고 사건을 분석하고 재해석하는데 주저하지 않겠다는 것이 제작진의 각오이기도 하다. 그렇다고해서 사건의 일면만을 보지는 않겠다고 한다.

사건 자체의 민감함이나 대상인물들이 실존하고 있다는 것을 감안할 때 비켜가야할 대목이 적지 않겠느냐는 주변의 시선에 대해 이 프로그램을 맡고 있는 이상여 프로듀서는 그럴수록 정확하게 기술하려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한마디로 ‘정면돌파’하겠다는 것이다. 이의가 제기된다면 그 또한 기꺼이 받아들이겠다는 입장이다.

5·18 불기소로 검찰의 역할에 대해 많은 국민들이 회의하고 있는 현실에서 KBS 2라디오 <그때 그 사건>이 역사를 어떻게 판단하고 단죄하게 될지 매일 오전 11시 40분부터 20분동안 기대를 가지고 들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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