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 194㎝ 몸무게 130㎏, 말 그대로 덩치가 산만한 롯데자이언츠 4번 타자 이대호(28) 선수도 그 분에 대한 얘기를 하면 눈가에 이슬이 맺힌다. 한국야구의 영웅으로 떠오른 지금의 이대호가 있기까지 든든한 마음의 위안을 줬던 그 분, 바로 할머니에 대한 얘기다.

이대호는 3살의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잃었다. 그 어린 이대호를 정성을 다해 키워낸 인물이 바로 할머니다. 부산 수영구 ‘팔도시장’에서 된장을 팔아 이대호의 공부시키고 야구의 꿈을 키우도록 뒷바라지했다.

이대호에게 할머니는 ‘고마움’이라는 단어로만 설명할 수는 없는 존재이다. 연탄 한 장 마음껏 사용하기 어려운 형편이었지만, 이대호는 고생하는 할머니 생각에 마음을 다잡으며 꿈을 키워나갔다.

부산 대동중학교와 경남고등학교에 들어가면서 야구의 눈을 떴고, 주목받는 선수 중 하나로 떠올랐다. 고생하시던 할머니를 호강시켜주고 싶었던 이대호는 1999년 청천벽력과 같은 얘기를 들었다.

   
  ▲ 일간스포츠 2010년 12월 20일자 12면.  
 
손자 얘기만 나오면 웃음을 잃지 않았던 팔도시장 된장 할매, 바로 이대호의 할머니가 돌아가신 것이다. 이대호가 고등학교 2학년 때의 일이다. 너무 놀라고 믿기지 않은 일을 경험한 그는 눈물도 마음속으로 흘릴 수밖에 없었다.

방황하던 그를 바로잡아줬던 존재도 바로 할머니다. 할머니를 호강시켜주겠다는 그 꿈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비록 할머니가 세상에 살아계시지는 않지만, 하늘나라에서 팔도시장 된장 할매의 자랑스러운 손자가 이렇게 잘 하고 있다는 얘기를 전해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2001년 롯데에 입단한 이대호는 폭발적인 힘을 지닌 가능성 있는 신인의 위치에서 잠재력을 터뜨린 무서운 선수, 나아가 롯데를 넘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타자로 성장하게 된다. ‘야구 영웅’ 이만수가 갖고 있던 타격 3관왕을 재연시킨 인물이 바로 이대호다.

   
  ▲ 일간스포츠 1월 21일자 1면.  
 
이대호는 2006년 타격, 타점, 홈런, 장타율 등 타격 4관왕을 달성했다. 타격 3관왕 이상의 성적은 이만수 이후 22년만의 일이었다. 부산은 야구영웅 탄생에 말 그대로 난리가 났다. 부산은 ‘야구’를 빼놓고 설명이 안 되는 도시이다.

부산 사직야구장은 야구팬들에게 꿈의 공간이다. 폭발적인 응원문화와 넘치는 열정을 경험할 수 있는 공간이기에 그렇다. 부산 시민들은 열광하고 환호하고 때로는 좌절하지만 다시 일어서는 원동력을 바로 야구에서 찾고 있다.

부산 시민들은 롯데자이언츠를 좋아하지만 롯데라는 기업 자체보다는 롯데 선수들과 그들과 함께 꿈을 나누는 야구팬들 바로 자신들에게 더 환호하고 열광하는지도 모른다. 한때 롯데는 ‘꼴데’라는 얘기를 듣기도 했다. 성적이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제발 가을에 야구 좀 하자”는 플래카드가 가장 많이 등장한 곳이 바로 부산 사직야구장이다. 이대호가 4관왕을 할 때도 포스트진출이라는 꿈은 달성하지 못했다. 하지만 꿈은 이뤄진다는 말처럼 롯데는 2008년, 2009년, 2010년까지 3년 연속으로 포스트시진 진출에 성공한다.

가뜩이나 열정적인 부산은 말 그대로 열광의 도가니로 바뀌었다. 부산에서 가을의 다른 의미는 ‘야구’였다. 부산 시민들에게 한없는 기쁨을 안겨준 그 중심에 바로 이대호가 있다. 이대호는 2010년 꿈의 기록을 달성하게 된다.

앞으로 대한민국 야구 역사상 다시 나올 수 있을지 의심이 되는 기록이다. 타율, 최다안타, 홈런, 타점, 득점, 출루율, 장타율 등 타격 7관왕을 달성했다. 믿기지 않지만 엄연한 현실이었다.

   
  ▲ 스포츠칸 1월 21일자 1면.  
 
이대호는 한국 최고의 타자로 우뚝 섰다. 그것만이 아니다. 9경기 연속 홈런이라는 세계신기록의 주인공이 한국에서 나왔다. 그가 바로 이대호다. 이대호는 이미 부산 야구팬의 자랑을 넘어 전체 야구팬의 자랑으로 떠올랐다.

이대호가 얼마의 연봉을 받을 것인지는 야구팬 전체의 관심사였다. 구단은 6억 3000만원을, 이대호는 7억 원을 주장했다. 이대호가 보여준 성적과 야구팬들에게 전한 그 감동을 살펴볼 때 더 많은 금액도 가능했지만, 이대호는 현재 최고 프로야구 최고연봉 수준인 7억 원을 희망했다.

롯데구단과 이대호는 팽팽하게 맞섰고, 한국야구위원회(KBO)에 연봉조정신청을 내는 상황에 이르렀다. 선수 개인이 구단과 맞서는 상황은 말처럼 쉬운 게 아니다. 구단과 선수는 엄격한 ‘갑’과 ‘을’의 관계에 놓여 있다. 불이익을 감수하면서 권리를 찾기란 선택부터가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이대호는 그런 선택을 했다. KBO에 연봉조정신청을 냈다. 전무후무한 타격 7관왕, 세계야구에 길이 빛날 9경기 연속 홈런의 주인공이란 상징성도 든든한 버팀목이었지만, 그것보다는 야구선수가 정당한 평가를 받을 수 있는지 그것을 시험하기 위한 선택이었다.

이대호는 2011년 시즌이 끝나면 FA 자격을 얻는다. 이대호는 역대 FA 최대 금액인 60억 원을 넘어서는 엄청난 계약금과 연봉을 기대할 수 있는 특급 선수이다. 그런 이대호가 돈 7000만 원을 더 받고자 엄청난 부담을 감수하고 연봉조정신청을 냈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대호는 어쩌면 자신의 선택을 통해 수많은 프로야구 선수들과 프로야구 선수를 꿈꾸는 야구 꿈나무들의 미래를 대변하고자 했는지도 모른다. 일방적으로 구단 편을 드는 KBO의 선택을 이번만큼은 바꿔 보겠다는, 선수들의 권리를 지켜내겠다는 스포츠맨다운 그 ‘의리’를 지키고자 했는지도 모른다.

이대호는 우직하지만 선 굵은 행동을 하고 의리를 중시하는 전형적인 ‘부산사나이’다. 그 부산사나이의 ‘무모한 도전’에 수많은 야구 선수들과 야구팬들은 숨을 죽였다. 과연 KBO가 누구의 손을 들어줄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KBO는 20일 연봉조정위원회를 열었는데 결과는 롯데 구단의 승리였다. 계란으로 바위치기라는 것을 예감했던 팬들도 짙은 아쉬움을 감추지 않았다. 해도 해도 너무한 KBO의 처사에 실망을 담은 글이 쏟아졌다.

   
  ▲ 스포츠동아 1월 21일자 2면.  
 
이대호는 다시 롯데의 훈련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그의 모습에는 짙은 아쉬움이 담겨 있었다. 롯데 편을 들어준 KBO나 7000만 원 아끼려고 버티기에 나섰던 롯데 구단이 이대호에게 마음의 눈물을 흘리게 할 자격이 있을까. 이 문제는 이대호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수많은 야구 선수들과 야구팬들에게 상처를 준 사건이다.

약자일 수밖에 없는 선수 개인을 상대로 똘똘 뭉친 ‘그들의 담합’이 만들어낸 결과이다. 지난해 한국사회의 주요 열쇳말 중 하나였던 ‘공정사회’를 생각해볼 때 지금 KBO와 롯데구단이 보여주고 있는 것은 공정사회의 모습인가. 아니면 영원히 ‘갑’일 수밖에 없는 힘 있는 이들이 약자인 ‘을’에게 참담한 마음의 상처를 안겨준 행동인가.

롯데 구단은 7000만 원을 얻었지만,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더 큰 것을 잃었다. KBO는 다시 한번 야구팬들에게 냉소와 조롱의 대상으로 전락했다. KBO는 자신들은 공정했다고 주장한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얘기다. 공정사회는 말이 아닌 실천이다. 왜 자꾸 입으로만 외치는가.

부산 팔도시장 된장 할매의 그 손자가 어려운 환경에도 좌절하지 않고 꿈을 키워 훗날 자신은 물론 전체 야구선수의 ‘작은 권리’를 지켜내는 상징적인 존재로 우뚝 서는 그 장면을 기대했던 이들은 KBO의 이번 선택에 따라 그 ‘감동의 기회’를 잃고 말았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